갑자기 서울로 뽑혀간 영주 터줏대감 ‘300년 된 소나무’
기존 위치에 창고 설립 요청
영주시, 이식 조건으로 허가
조경업체, 서울 반출 통보
시 사업중지 명령에도 강행
시 “편법 절차…법적 대응”
“이만큼 큰 소나무를 밤에 몰래 그냥 확 뽑아갔니더. 10억원도 넘게 팔렸다 카데예.”
지난 1일 경북 영주시 순흥면 바느레골. 마을 주민 김모씨(50대)에게 ‘6억 소나무(반송)’가 있던 곳이 어디인지 묻자 그는 커다란 구덩이를 가리키며 말했다. 소나무가 있어야 할 자리에 생긴 구덩이는 성인 5명이 들어갈 만큼 컸다. 소나무 뿌리가 얼마나 굵었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사라진 소나무의 수령은 약 300년. 뒤틀린 나뭇가지로 오랜 세월을 버텨낸 덕에 그 모습이 아름다워 주민들은 물론 전국의 사진작가들이 출사를 올 정도였다. 사과밭과 고추밭 등이 즐비한 농로 사이에서 우뚝 솟아있어 마을 주민들의 그늘이 되어준 존재다.
사라진 소나무는 ‘6억 소나무’로 불렸다. 수년 전 소나무를 구경하러 온 한 사람이 6억원에 사기로 하고 굴착기로 캐내려 했는데, 갑자기 소나무 이파리가 시들해지면서 고사하려고 하자 구매를 포기하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김씨는 “마을 사람들은 그때 소나무가 고향을 떠나기 싫어 시름시름 앓았다고 생각한다”며 “바느레골 보호수가 사라진 셈이니 허망하고 씁쓸한 마음”이라고 말했다.
영주시 등에 따르면 소나무는 지난달 27일 서울로 반출됐다. 조경업체가 소나무 소유주인 A 문중 대표로부터 소나무를 사들인 후 반출 작업을 벌이자 마을 주민들이 막아서며 대치한 지 사흘 만이다.
지난 4월 A 문중 땅을 빌려 농사를 짓던 한 농민은 농업용 창고를 짓겠다는 산지전용신고를 영주시에 접수했다. 영주시는 소나무보전계획을 요구했고, 기존 위치에서 50m 떨어진 곳에 옮겨 심겠다는 계획서를 받은 후 신고를 수리했다.
하지만 지난 10월4일 조경업체는 소나무 반출을 위해 필요한 소나무재선충 확인증을 영주시에 제출하면서 소나무를 서울로 옮기겠다고 알려왔다. 이에 영주시는 10차례가 넘는 사업중지 명령과 산지전용신고 취소통지를 했지만, 조경업체는 이를 무시하고 소나무를 서울로 반출했다.
영주시 관계자는 “A 문중이 허가를 통해서는 수목 반출이 어려울 것으로 보고 편법적인 산림전용신고로 산지관리법 규제를 피해가려고 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며 “영주시 특별사법경찰이 관련자를 조사한 뒤 검찰에 넘길 예정”이라고 말했다.
조경업체 측은 지난 8월 영주시로부터 발급받은 생산확인표에 나무를 옮길 곳이 서울로 명시돼 있어 문제가 없다고 주장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표에는 수요처가 서울 서초구 신원동으로 표기돼 있다. 영주시 관계자는 “생산확인표는 소나무 생산지를 확인하는 것으로 시에선 재선충병 감염 여부만 확인하는 정도”라면서 “수요처는 재선충 감염 경로를 확인하기 위해 기재하는 것이며, 해당 부서는 산지전용허가를 다루는 부서도 아니다”라고 말했다.
김현수 기자 khs@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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