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갑수의 일생의 일상] 인간과 무관하게 존재하는 광대한 세계
최근 내 마음의 생태계를 살펴본다. 우리 공동체의 심부름꾼을 뽑는 선거에서 ㄱ이 이길 것으로 여겼는데, ㄴ이 되는 바람에 시무룩해진 적이 있었다. 이럴 수가, 견딜 수 없는 마음에 외부의 그 어떤 사정에도 돌처럼 묵묵한 마음을 갖는다는 장자의 한 구절을 노장 전공의 친구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이날 내 긴급한 현안은 꼭지를 따질 못했다.
그 후 그 경지는커녕 그 문장도 만나지 못했다. 누군가 ‘적득이기(適得而幾, 깨침이 적중하면 거의 도에 가깝다)’를 일러 주었지만 마음의 마개가 자꾸 헛돌았다. 시간은 얄궂게 흘러 ㄷ은 탈락하고, ㄹ과 ㅁ이 맞붙고, ㅂ은 뻔뻔하고, 난데없는 ㅅ이 튀어나오고, ㅇ은 모르겠고. 그 어지러운 와중에서 뜻밖의 길이 보였다.
그래도 이 세상으로 휘어져 나왔는데 상대성이론은 알고 가야 하지 않을까,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이런저런 책을 보다가 아인슈타인이 평생 몰두하여 노닌 곳은 ‘인간들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광대한 세계’라는 구절에 밑줄을 쳤다. 그곳은 지금 내 눈앞에도 현현하는 장소. 당장 이 순간 빤히 보이는 공간. 그리고 내처 손등을 간질이는 햇빛을 재료로 공부하다가 나 태어나기 5년 전에 훌쩍 저 세상으로 거처를 옮긴 아인슈타인(1879~1955)의 감탄스러운 일생을 좇아보았다.
현대물리학에서 상대성이론과 함께 양대 축을 이루는 양자역학을 도무지 받아들일 수 없었던 아인슈타인의 말년은 조금 쓸쓸했다. 대세에 밀려 뒷방 신세의 처지라 해도 될 만큼. 하지만 그는 이런 어록을 남긴 분이다. “나는 안락과 행복을 도달해야 할 목표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소유, 외양과 호사 등의 것들은 나에게 언제나 경멸스러운 것으로 느껴졌다.” 일찍이 저 밝음 뒤의 캄캄함을 알아버린 과학자는 어쩌면 장자와 일면 통하는 구석이 있지 않을까.
‘인간들과는 무관하게 존재하는 광대한 세계.’ 궁리 끝에 도달한 이곳은 곧 ‘적득이기’를 대체하는 영역이 아닌가. 반짝이는 저 구절을 ‘인무존광(人無存廣)’의 네 글자로 줄이니, 많은 것을 가리는 투명한 빛의 피륙인 듯했다. 귓가에 왕왕거리는 교묘한 언설, 입술만 발달한 ‘낯빤대기’ 따위를 덮는 데 아주 유용한 보자기이더라는 심경의 한 토막.
이갑수 궁리출판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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