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창] 국민은 바보가 아니다
셋이서 어떤 결정을 내릴 때는 둘이 하자는 쪽을 따라가는 게 상식이다. 두 사람의 의견을 무시하고 혼자서 옳다고 우기면 ‘왕따’ 내지 ‘손절’이다.
지난주 한국갤럽이 발표한 여론조사에서 윤석열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은 33%에 머물렀다. 그 전주 조사보다 3%포인트 오르긴 했지만 여전히 30%대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부정적인 평가는 58%로 집계됐다. 집권 초반을 제외하면 지난 1년6개월 동안 지지율은 50%는커녕 40%도 넘지 못했다. 두 명은 잘 못했다고 손가락질하는데 한 사람만 박수치고 있는 모양새다.
정권이 바뀌면 잘될 것이란 막연한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그리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윤석열 정부는 신뢰를 주지 못했고, 여론은 등을 돌렸다. 찬찬히 한번 돌아보자.
불통과 독선 이미지는 그의 임기를 관통해온 열쇳말이다. ‘이념’이 가장 중요하다며 이를 ‘국정철학’의 바탕으로 깔았고 ‘자유민주주의’ 대 ‘공산전체주의’의 대결이란 갈라치기를 통해 사회적 갈등을 증폭시켰다.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집단 또는 반대하는 목소리에는 ‘카르텔’이란 굴레를 씌워 공적(公敵)으로 돌렸다. 검찰과 법무부, 감사원, 경찰, 방송통신위원회 등은 이런 카르텔을 깨부수기 위한 전위부대로 동원됐다. 아마도 거기엔 집권 초 “지지율에 연연하지 않겠다”는 윤 대통령의 자신감이 한몫했을 터다. 당선 전 귀에 못이 박히도록 외친 공정과 상식 역시 실종된 지 오래다.
언론과의 소통은 여전히 요원하다. 스스로 청한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은 6개월 만에 없어졌고, 공식 기자회견은 단 한 차례도 연 적이 없다. 매주 화요일 국무회의에서 풀어놓는 장광설이 사실상 대통령 메시지의 전부라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여당에서는 비판적 언론에 ‘가짜뉴스’ 프레임을 씌워 “사형에 처해야 할 만큼의 국가 반역죄” “폐간을 고민해야 한다”는 등의 극언을 쏟아낸다. MB 정권 홍보수석이던 이동관을 방송통신위원장으로 앉혀 ‘언론 장악’에 시동을 건 것은 일찌감치 예고된 수순이다.
앞뒤가 맞지 않는 정책 추진과 발언으로 엇박자를 낸 것도 한두 번이 아니다. ‘만 5세 초등학교 입학’ 졸속 추진이 대표적인 예다.
지난해 박순애 당시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이 입학연령을 단계적으로 만 5세로 하향하겠다고 보고하자 윤 대통령은 “초중고 12학년제를 유지하되 취학연령을 1년 앞당기는 방안도 신속히 강구하기 바란다”고 지시했다. 하지만 학부모, 교육단체 사이에서 반발 움직임이 거세지면서 없었던 일이 됐고, 박 장관은 결국 사퇴했다.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몇달 남기지 않은 지난 6월에는 ‘킬러문항 배제’를 지시해 수험생들을 혼란에 빠뜨렸다.
이뿐만 아니다. 고용노동부가 내놓은 ‘주 최대 69시간 노동’은 거센 논란 속에 윤 대통령이 보완을 지시하는 혼선을 빚었다. 이후 근로시간 개편안의 핵심은 나오지 않은 채 지지멸렬한 상태다. 국민의힘은 내년 총선을 겨냥해 경기 김포시를 서울로 편입시키는 방안을 제시하더니 며칠 후에는 지방분권과 균형발전에 초점을 맞춘 ‘지방시대 종합계획’을 발표했다. 서로 상충할 수밖에 없는 방안이 함께 나온 꼴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국민 10명 중 6명이 ‘김포의 서울 편입’에 대해 반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상황에 따라 이 또한 유야무야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정말 어느 장단에 춤을 춰야 할지 종잡을 수 없다.
지난달 서울 강서구청장 보궐선거 여당 참패 이후 대통령이 바뀌고 있다는 평가들이 조금씩 나온다. 취임 후 처음으로 “저와 내각에서 반성하겠다”고 하더니 “국민 소통, 현장 소통, 당정 소통을 더 강화해달라” “이념 논쟁을 멈추고 민생에만 집중해야 한다”며 잔뜩 몸을 낮췄다. 이런 모습이 낯설지만 그래도 국민은 대통령의 변화를 기대하고 있다.
<논어> ‘위정편’을 보면 “나와 다른 생각에 대해 공격한다면 손해가 될 뿐이다(攻乎異端 斯害也已)”라는 말이 있다. 윤 대통령이 강조하는 것처럼 발로 현장을 뛰며 소통을 실천하려면 반대 의견을 품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자세가 우선돼야 한다. 생각이 다르다고 배척하지 말고, 정부에 대한 비판을 정책 실현에 꼭 필요한 약이 되도록 활용하는 게 중요하다. ‘이런 모습이 얼마나 가겠느냐’는 회의적인 시선을 거두기 위해서라도 대통령 먼저 변해야 한다. 총선이 159일 앞으로 다가왔다. 국민은 지켜보고 있다.
조홍민 사회에디터 dury129@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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