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세기, 기록의 기억] (95)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
11월3일은 학생의날이다. 1929년 11월3일 광주 학생들이 일본 제국주의 식민통치에 항거하여 대규모 시위를 벌인 날을 기려 광복 후 학생의날로 지정됐다. 그러나 박정희는 학생들이 모이는 집회를 두려워하여 학생의날을 폐지했다. 그러다가 1984년 학생의날이 부활했는데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전두환의 유화책이었다. 전두환 시절, 학생의날 기념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가담)한 학생들에게 주어지는 건 기념품이 아니라 구속영장이었다. 학생의날에 시위대가 외친 구호는 ‘광주학생운동 계승하여 전두환 정권 타도하자!’였다. 독재정권 타도를 위해 계승하려던 광주학생운동 정신은 무엇일까?
3·1 만세운동 이후 6·10 만세운동에 놀란 일제는 조선인 학생들의 독서모임까지 금지했다. 일제의 악랄한 탄압으로 ‘독립’이란 말조차 꺼내지 못했던 그때, 광주 학생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섰다. ‘분연히’는 앞날이 창창한 학생들이 자신들이 누릴 수 있는 기득권을 포기하고 구속을 각오한 행위였다.
발단이 된 것은 일본인 학생들이 조선인 학생들의 댕기머리를 잡아당겨 희롱하고 광주고보(현 광주제일고) 학생을 칼로 찌른 사건이었다. 응어리진 분노가 터졌다. 광주고보생들이 교문을 박차고 나왔다. ‘식민지 노예교육 철폐’를 외치는 광주고보생들 목소리에 광주의 여러 학교 학생뿐 아니라 어른들까지 동조하면서 함성은 ‘조선독립만세’로 커져나갔다.
가두시위로 수많은 학생이 체포, 퇴학, 수배, 고문, 구속을 당했지만 학생들은 굴하지 않고 시험 답안지 백지동맹, 동맹휴학 등으로 맞섰다. 해방 위해 광주 거리를 내달렸던 학생들의 심장박동은 커다란 북소리가 되어 이듬해 3월까지 전국 325개교가 궐기하는 항일투쟁으로 요동쳤다.
1954년에 건립된 광주학생독립운동 기념탑에는 ‘분노에 찬 학생’ ‘책을 든 채 시위에 참여한 학생’을 형상화한 청동 부조와 함께 “우리는 피 끓는 학생이다. 오직 바른 길만이 우리의 생명이다”라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오랜 세월에 부조상이 부식되어 그 모습이 또렷하진 않지만 잊지 않고 참배하는 학생들 덕분에 기념탑은 언제나 젊다. 특히 광주제일고 야구부는 전국대회 참가를 위해 서울로 상경하기 전, 이 탑 앞에서 선배들의 항일정신을 이어받아 정정당당히 최선을 다하겠다는 각오를 다진다. 광주제일고, 괜히 명문이 아니다.
김형진 셀수스협동조합 이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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