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사스 레인저스, 62년 무관의 한 풀었다
1961년 동서 냉전으로 독일 베를린에 큰 장벽이 세워졌다. 그해 미국 프로야구에선 텍사스 레인저스가 워싱턴 세너터스란 이름으로 메이저리그에 뛰어들었다. 세너터스는 1972년 텍사스주 알링턴으로 근거지를 옮기고 레인저스로 이름을 바꿨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졌지만, 레인저스엔 우승 기회가 오지 않았다. 1962년 같은 텍사스주 도시 휴스턴에서 창단한 애스트로스가 2017년 처음 정상에 올랐지만 레인저스는 부러운 눈으로 바라볼 뿐이었다. 레인저스는 2021년 102패(60승), 2022년 94패(68승)를 기록했다. 이 기간 레인저스(196패)보다 더 많이 진 팀은 피츠버그 파이어리츠(201패),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198패)뿐. 크리스 영 레인저스 단장이 “이젠 지는 게 신물 난다”고 말할 정도였다.
그리고 11월. 올가을 레인저스는 꿈을 꾸듯 정상에 섰다. 2일 애리조나주 피닉스 체이스필드에서 열린 월드시리즈(7전4선승제) 5차전 원정경기에서 다이아몬드백스(D백스)를 5대0으로 완파하며 시리즈 전적 4승1패로 창단 후 62년 만에 감격을 맛봤다.
레인저스는 1차전에서 3-5로 뒤지다 9회말 코리 시거(29)의 동점 투런 홈런과 연장 11회말 아돌리스 가르시아(30)가 끝내기 홈런으로 기사회생한 기세를 시리즈 내내 이어갔다. 이날 5차전에서도 상대 선발 잭 갤런(28)에게 6회까지 노히트노런으로 꽁꽁 묶였다. 하지만 7회초 선두 타자 시거가 좌전 안타로 노히트노런을 깼다. 평범한 3루 땅볼이 될 수 있었던 공이 D백스 내야수들이 수비 위치 변경(시프트)으로 3루를 비워놓았던 덕에 안타로 둔갑했다. 이어 신인 에번 카터(21)가 2루타, 미치 가버(32)가 중전 안타를 날려 선취점을 뽑았다. 레인저스는 이번 포스트시즌에서 선취점을 낸 경기(11승)를 다 이겼다. 레인저스는 9회초 4점을 보태 승부를 매조지했다. 레인저스 선발 네이선 이발디(33)는 6이닝 무실점으로 승리 투수가 됐다. 5피안타 5볼넷을 내주면서 5회까지 매회 주자를 득점권에 내보냈지만, 노련한 투구로 위기를 헤쳐나갔다. 올 포스트시즌에서 5승 무패 평균자책점 2.95. 에이스 노릇을 완벽하게 해냈다.
월드시리즈 MVP는 레인저스 유격수 시거에게 돌아갔다. 2020년 LA다저스 시절 월드시리즈 MVP에 이어 두번 째 수상이다. 월드시리즈 5경기 타율 0.286(21타수 6안타) 3홈런 6타점 6득점으로 활약했다. 지금까지 월드시리즈 MVP를 두 번 받은 선수는 샌디 쿠팩스, 밥 깁슨, 레지 잭슨 3명뿐이었다.
이날 승리로 레인저스는 이번 포스트시즌 원정 경기 전승(11연승)을 달렸다. 전날 신기록(10연승)을 자체 경신했다. 정규 시즌 100패(이상)를 기록했던 팀이 2년 만에 월드시리즈 정상에 오른 건 1914년 보스턴 브레이브스(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1969년 뉴욕 메츠에 이어 세 번째. 2019년 은퇴를 선언했다 올해 레인저스 지휘봉을 잡고 돌아온 브루스 보치(65) 감독은 부임 첫해 레인저스 숙원을 풀어줬다. 그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2010, 2012, 2014년 세 차례 우승으로 이끈 명장. 자이언츠 시절에도 56년 만에 팀 우승 가뭄을 해결한 바 있다. 2010년 본인 첫 월드시리즈 우승 때 상대 팀은 레인저스였다.
레인저스는 올 시즌을 앞두고 거액(5년 1억8500만달러)에 계약한 에이스 제이콥 디그롬(35)이 6경기 만에 팔꿈치 수술로 이탈하고, 그 공백을 메우기 위해 시즌 중반 데려온 리그 최고 연봉(4333만달러) 투수 맥스 셔저(39)마저 등 부상으로 정규 시즌 막판 이탈하고, 포스트시즌에선 3경기에서 1패 평균자책점 6.52로 극도로 부진하던 불운을 이겨내고 우승을 일궜다.
이번 월드시리즈는 한국 메이저리거가 거쳐간 팀 간 대결이기도 했다. 레인저스에선 박찬호(2002~2005)와 추신수(2014~2020)가 뛰었고, D백스는 김병현(1999~2003)이 마무리로 활약했던 팀이다. D백스는 2001년 이후 22년 만에 우승을 노렸으나 한발 모자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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