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 주민 밀어내는 이스라엘…최종 목표는 강제 이주? [미드나잇 이슈]

김희원 2023. 11. 2. 2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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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출된 정보부 문건엔 “가자 주민 이주 바람직”
“남부→이집트로 이동시킨 뒤 돌아오지 못하게”
난민 수용 거부 이집트…외국인·중상자에 개방
“미국 이용해 난민 이동 추진…제2나크바 될라”

팔레스타인인을 가자지구에서 완전히 추방하려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계획이 드러났다. 이스라엘 정부는 “가상의 개념 보고서일 뿐”이라고 일축했으나, 현재까지는 해당 계획대로 전쟁이 진행되고 있다. 일각에선 가자 주민이 전쟁을 피해 외국으로 피란할 경우 가자로 다시 돌아갈 수 없을지 모른다는 우려도 나온다.

◆“가자 주민을 이집트로…” 드러난 속내

이스라엘 좌익 성향 독립언론 ‘+972매거진’은 이스라엘 정보부 비공개 문건을 입수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보도했다. ‘가자지구에서 모든 팔레스타인인을 추방하라-이스라엘 정부 장관 권고’라는 제목의 기사다. 

매거진에 따르면 10페이지로 작성된 이 문서는 13일 작성됐으며 이스라엘 정보부 로고가 찍혀 있었다.

문서는 이 전쟁에서 팔레스타인 주민 미래에 세 가지 선택이 있다며 그중 ‘가자 주민들을 시나이반도로 이주시키는 것’이 장기적으로 볼 때 이스라엘에 가장 바람직하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를 위한 행동 계획을 구체적, 단계적으로 제시했다.
1일(현지시각) 이스라엘 전차와 장갑차들이 가자지구로 이동하고 있다. 이스라엘 지상군이 최근 며칠 동안 가자지구에서 하마스 시설 300여 곳을 타격하는 등 강도 높은 작전을 수행하고 있다. AP뉴시스
첫째로 공습이 가자지구 북부에 집중되는 동안 가자지구 인구가 남쪽으로 대피할 수 있도록 조처를 해야 한다는 것, 둘째는 가자지구에 대한 지상 침공을 통해 가자지구 전체를 북쪽부터 남쪽까지 점령하고 하마스 지하 벙커를 완전히 파괴한다는 것이다.

이 문서는 이스라엘이 가자지구를 점령한 뒤엔 팔레스타인 민간인들을 이집트 영토로 이동하게 하며 ‘돌아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아야 한다’고 권고했다. 또 “민간인들이 라파로 대피할 수 있도록 남쪽으로의 이동 경로를 열어둬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문서는 ‘여론전’의 중요성도 강조했다. 가자지구 주민 추방이 국제사회 지지를 얻으려면 “주민들이 이주해야 민간인 사상자 수가 적다”고 강조하는 방향으로 캠페인을 벌여야 한다는 것이다.

문서는 아울러 이집트가 팔레스타인 주민들을 받아들이도록 미국이 압력을 가해야 하며, 그리스와 스페인을 비롯한 다른 유럽 국가들과 캐나다도 팔레스타인 난민 흡수와 정착을 도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팔레스타인인 이주는 이스라엘 정보부만의 허황한 계획은 아니다. 이스라엘 우익 성향 싱크탱크인 미스가브 국가안보 및 시온주의 전략 연구소도 지난 17일 가자 주민 강제 이주를 옹호하는 보고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보고서에서 “하마스의 침공은 가자지구 전체를 추방할 드문 기회다. 이를 활용해야 한다”며 “이집트 카이로 인근에 빈 아파트가 많다. 이집트 정부에 50억∼80억달러를 제공하고 가자 주민들을 이주시키자”고 주장했다.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문제를 다루는 미국 언론 몬도바이스는 “팔레스타인인 강제 이주 주장은 이스라엘 정치권과 우파 단체에서 지속해 왔으나, 10월 7일 하마스의 공습 이후 중도나 좌파 시민들 사이에서도 가자지구를 완전히 점령해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졌다”고 전했다.

◆이집트 국경 열리면 제2 ‘나크바’ 될 수도

+972매거진은 이스라엘 정보부 관계자를 통해 팔레스타인인 이주 계획 문서가 실제 정보부에서 작성된 문서라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 정부도 31일 해당 문서 존재를 인정했다. 그러면서 정식 수립 계획이 아닌 “가상의 개념 보고서일 뿐”이라고 설명했다.
1일(현지시간)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남부에서 사람들이 이집트로 통하는 라파 국경을 통과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이날 가자지구 내 외국 여권 소지자와 부상자 500여명의 이동을 위해 라파 국경 검문소가 개방됐다. AFP연합뉴스
하지만 같은 날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가 유럽 정상들에게 ‘이집트가 가자지구 난민을 수용하도록 압력을 넣어 달라고 설득했다’는 파이낸셜타임스(FT) 보도가 나오면서 이스라엘 정부의 강제 이주 계획이 실제 실행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 나온다.

현재까지 전황은 유출된 정보부 비공개 문서 내용과 같이 흘러가고 있다.

이스라엘군은 가자 주민들에게 남쪽으로 피란할 것을 촉구한 뒤 북부를 중심으로 공습하고 있다. 27일부터는 지상군을 투입해 작전을 수행하며 점차 남하 중이다. 동시에 이집트에는 “라파 국경을 열고 난민을 수용하라”고 촉구하면서, 미국과 국제사회에 동참을 호소하고 있다.

타임스오브이스라엘(TOI)은 정보부 문서와 관련해 “결국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를 이집트의 문제로 떠넘기고 싶어한다는 이집트 국민의 오랜 두려움을 심화시켰다”고 꼬집었다.

이집트는 가자지구 난민을 일시 수용하는 방안조차 거부하고 있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문제를 이집트에 전가하기 위해 이 전쟁을 이용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압둘파타흐 엘시시 이집트 대통령은 최근 “팔레스타인 문제를 군사적 수단이나 팔레스타인 주민의 강제 이주를 통해 청산하려는 시도를 거부하며, 이는 역내 국가들의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1일(현지시간)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이 이스라엘군(IDF)의 공습으로 파괴된 모습. IDF는 이날 이틀 연속으로 가자시티 북쪽 자발리아 난민촌을 공습했다. AP연합뉴스=막사 테크놀로지 제공
다만 이집트는 미국 등 국제사회의 호소에 따라 가자지구 내 외국인과 중상자에 한해 국경을 열기로 했다. 1일 300여명이 가자 남부 라파 국경을 통해 이집트 시나이로 이동했다. 전쟁 고통을 겪는 가자 주민들에게 ‘희망 문’이 열렸다는 긍정적인 해석이 지배적이지만, 이를 팔레스타인인 이주 계획의 ‘시작’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중동프로그램 온라인 저널 ‘사다’의 부편집장인 조나단 애들러는 31일 칼럼에서 “이집트가 가자 난민을 수용하는 대가로 미국이 경제적 인센티브를 제시했다는 보도가 나왔다”면서 “막대한 부채 위기를 안고 있는 이집트가 부채 탕감을 선택할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1948년 나크바(이스라엘 건국으로 75만 팔레스타인인이 추방당한 사건) 때도 아랍권 국가와 유엔팔레스타인난민기구(UNRWA)가 팔레스타인 난민 강제 이주 계획을 반대한다고 했지만, 이면에선 외국 자본이 이집트 정부를 지원하는 대신 시나이반도에 가자 주민을 재정착시키는 계획이 진행됐었다는 것이다.

애들러는 현재 상황에 대해 “이스라엘이 미국의 지원을 받아 가자 주민의 대규모 이주를 추진하고 있다”고 진단하며 “무엇이 가자 주민 제2의 나크바를 막을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고 덧붙였다.

김희원 기자 azahoit@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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