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나 입혀라’ 분노 부른 티셔츠... 기아차 노조 간부, 뒷돈 1억 챙겼다

곽래건 기자 2023. 11. 2. 21: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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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노총 금속노조 산하 기아차 노조가 노조원용 단체 티셔츠를 구매하는 과정에서 비리가 있었다는 의혹이 사실로 확인됐다. 노조 간부가 업체와 업체와 짜고 입찰을 조작했고, 억대의 현금을 리베이트로 챙겼다. 간부가 빼돌린 돈은 결국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에서 나온 것이라, 기아차 노조는 회계에 실제로 문제가 있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2일 경찰에 따르면 경기 광명경찰서는 단체 티셔츠 구입 과정에서 납품 업체로부터 1억4300만원을 받은 혐의로 기아차 노조 간부 A씨를 전날 구속했다. 기아차 노조는 작년 9월 조합원들에게 나눠줄 단체 티셔츠 2만8200벌을 구입했다. 티셔츠 실제 가격은 1장당 1만300원이었지만, A씨는 업체와 짜고 이를 1장당 1만5400원인 것처럼 꾸몄다. 이를 통해 약 2억9000만원인 납품 가격을 4억3400여만원으로 부풀리고, 차액 약 1억4300만원을 업체로부터 챙겼다고 경찰은 보고 있다.

기아차 노조가 1장당 약 1만6000원을 주고 샀다고 주장한 단체 티셔츠. 조합원들이 찢거나 항의 문구를 써 놨다. /조선일보DB

기아차 노조의 단체 티셔츠는 경찰 수사 전부터 조합원들 사이에서 논란이 됐다. 노조 집행부가 파업 등에 쓰기 위해 만들어놓은 ‘쟁의 기금’으로 티셔츠를 샀기 때문이다. ‘기금 취지와 맞지도 않는데, 4억원이 넘는 거금을 들여 굳이 단체 티셔츠를 사야했냐’는 비판이 나왔다. 노조의 쟁의 기금은 조합원들이 낸 조합비를 모아 만든다.

티셔츠가 배포되자 조합원들은 ‘품질이 너무 조악하다’며 집단 반발했다. 일부 조합원은 “쓰레기를 돈 주고 사왔냐” “이게 1만6000원짜리냐” “개나 입혀라”라고 티셔츠에 글씨를 써 항의했다. 가위나 칼로 티셔츠를 찢은 조합원까지 있었다. 재질도 면보다 싼 나일론 86%, 폴리우레탄 14% 합성이었고, 제조사 라벨도 잘려 있어 논란이 더 커졌다. 이 논란과 관련해 일부 노조 대의원들까지 나서 ‘집행부가 돈을 유용한 것 아니냐’ ‘관련 자료 일체를 공개하라’고 요구했지만, 집행부는 ‘문제가 없다’며 양 측이 정면 충돌하기도 했다. ‘노조 회계와 사업 내역이 불투명하다’며 외부 회계 감사를 받아야한다는 요구도 나왔다.

경찰 조사 결과 공개 입찰 자체가 가짜였다. A씨는 미리 어느 업체에 납품하게 할지를 정한 뒤 두 업체가 공개 입찰에 참여하도록 했다. 한 업체에 더 높은 가격을 쓰도록 했고, 상대적으로 더 낮은 가격을 쓴 업체가 선정되도록 입찰을 조작했다. 선정된 업체는 평소 기아차 공장에 작업복을 납품하던 업체였다. 이 업체는 가짜로 꾸며진 입찰가와 실제 가격과의 차액 1억4300만원을 다른 노조원 등의 계좌로 입금했고, 이 돈은 이후 현금으로 인출돼 고스란히 A씨에게 전달됐다. 경찰은 업체와 A씨가 추적을 피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계좌를 빌린 것으로 보고 있다.

경찰은 납품 업체, 납품 업체 대표와 관계자, A씨에게 계좌를 빌려준 노조원 등 11명도 입찰 방해와 금융실명법 위반 등의 혐의로 입건한 상태다. 경찰 관계자는 “노조의 기금 운영이 예상보다 투명하지 않아 놀랐다”며 “수사를 마무리하는 대로 사건을 검찰에 송치할 계획”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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