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가자 난민촌 이틀 연속 공습…전문가 "하마스 궤멸 아닌 '양산'될 것"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대 규모 난민촌 자발리아를 이틀 연속 공습한 가운데 유엔(UN)이 해당 공격이 전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군사 작전에만 치중하고 가자지구 통치 공백에 대해선 고려하지 않는 현재 이스라엘의 방식으로는 하마스를 궤멸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주민들과의 분리도 실패해 제거한 조직원보다 더 큰 규모의 새 조직원을 양산할 수 있다는 전문가 지적이 나왔다.
미국 CNN 방송은 1일(이하 현지시각) 이스라엘군이 가자지구 북부 자발리아 난민촌 인근 팔루자 지역에서 발생한 폭발이 자국군 공습에 의한 것임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전날 인구 밀집 지역인 자발리아에 대한 공습으로 아랍 국가를 비롯한 각국의 비난이 쇄도했지만 아랑곳하지 않고 이틀 연속 이 지역을 폭격한 것이다.
이 지역 인구 밀도는 서울의 5배가 넘는다. 이스라엘군은 하마스 지휘·통제 기관을 겨냥했고 "공습으로 하마스 테러리스트들이 제거됐다"고 밝혔다.
이스라엘군은 비난을 의식한 듯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피해는 하마스 지하 땅굴 붕괴 탓이며 하마스가 민간인을 "인간 방패"로 사용하고 있는 증거라고 주장했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1일 언론 브리핑에서 "공습으로 민간인 난민촌 내 건물이 붕괴했다"고 인정하면서도 "난민촌 지하 테러 터널(하마스 땅굴)을 포함한 지하 군사 시설이 무너지며 추가 붕괴를 낳았다"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이어 그는 "이는 사람을 죽이는 테러리스트들이 민간인을 어떻게 인간 방패로 사용하는지 다시 한 번 보여주는 것"이라며 "우리는 그들(민간인)에게 안전을 위해 대피하라고 촉구한 바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밤사이 지상군이 자발리아의 "학교, 의료 센터, 관공서와 가까운 민간 건물"에서도 전투를 벌였으며 하마스가 민간 시설 내에 은신처를 두고 있다고 거듭 설명했다.
이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는 성명을 통해 "이스라엘의 자발리아 난민촌 공습으로 인한 민간인 사상자 수와 파괴 규모는 전쟁 범죄에 해당할 수 있는 불균형적 공격"이라며 "심각한 우려"를 표명했다. 같은 날 호세프 보렐 유럽연합(EU) 외교·안보 고위대표도 소셜미디어(SNS)를 통해 "이스라엘의 자발리아 난민촌 폭격에 따른 많은 사상자 수에 경악했다"며 인도주의적 필요를 위한 전투 일시 중지를 촉구했다.
전날 볼리비아가 이스라엘과 단교를 선언하고 칠레와 콜롬비아가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를 불러들인 데 이어 1일 요르단도 가자지구 공격에 항의하며 이스라엘 주재 자국 대사를 불러들였다. <로이터>는 이란 국영 언론을 인용해 이날 아야톨라 알리 하메네이 이란 최고 지도자가 가자지구 폭격을 비난하고 무슬림 국가들에게 이스라엘에 석유 및 식량 수출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고 보도했다.
<로이터> 통신은 2일 하마스 쪽이 이틀 간의 자발리아 공습으로 인한 사망자를 적어도 195명으로 추산했다고 보도했다. 120명은 실종 상태고 부상자는 777명에 이른다.
가자지구 보건부 집계에 따르면 지난달 7일 하마스의 이스라엘 남부 습격 이후 이어진 이스라엘의 보복 공격으로 인한 가자지구 총 사망자 수는 1일까지 8805명, 부상자는 2만 2240명에 달했다. 해당 기간 요르단강 서안에서도 128명이 숨지고 2274명이 다쳤다.
가자지구 사상자가 천문학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데다 난민촌 공습까지 벌어지자 이스라엘을 강력히 지지해 온 미국 정부도 점차 곤경에 처하고 있는 모양새다. <로이터>를 보면 1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미네소타주 미니애폴리스에서 열린 기금 모금 행사 연설 중 자신을 랍비(유대교 율법학자)라고 밝힌 성난 시민과 맞닥뜨렸다.
자신의 이름을 제시카 로젠버그라고 밝힌 시민은 바이든 대통령의 연설을 끊고 "랍비로서, 당신이 당장 휴전을 촉구하길 바란다"고 주장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에 "일시 중지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일시 중지로 포로(인질을 의미) 구출을 위한 시간을 벌 수 있다"고 답했다. 이는 휴전에 반대하고 더 짧고 규모가 작으며 비공식적인 형태의 일시 중지를 옹호하는 백악관의 기존 입장과 다르지 않다.
전날 우크라이나 및 이스라엘 지원 예산안에 대한 심의의 일환으로 열린 미 상원 청문회 회의장엔 휴전 및 가자지구에서 민간인 학살 중단 요구를 외치는 손에 붉은 페인트를 칠한 한 무리의 방청객들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날 청문회엔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과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가자지구 지상전이 예상됐던 전면 침공에서 점진적 형태로 바뀌고 가자지구로 반입되는 구호 트럭 물량도 늘고 있는 것과 함께, 보도에 따르면 미 당국이 이스라엘에 책임이 있다고 본 지난 주말 가자지구 통신 두절이 복구된 것은 이스라엘이 민간인 보호를 점차 강조하고 있는 바이든 대통령의 입장을 어느 정도 반영할 뜻을 나타낸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유엔 인도주의업무조정국(OCHA)에 따르면 1일 오전 3시부터 11시 14분까지 가자지구의 통신이 지난 주말에 이어 또 두절됐고 무엇보다 미국이 거듭 언급한 전투 일시 중지가 이뤄지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이 미국의 권고를 완전히 따르진 않는다는 것을 시사한다.
1일 미 국무부는 언론 브리핑에서 3일 이스라엘을 다시 방문할 예정인 블링컨 장관이 민간인 사상자 최소화 및 인도적 지원 제공에 관한 논의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매튜 밀러 국무부 대변인은 브리핑에서 이스라엘 정부에 "국제인도주의법과 전쟁법 준수에 대해 매우 직접적으로 이야기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외국 국적자들의 가자지구 탈출은 계속됐다. 1일 가자지구에서 이집트로 향하는 라파 검문소를 통해 400명 가량의 외국 국적자 및 부상자 일부가 가자지구를 빠져 나간 가운데 <뉴욕타임스>(NYT)를 보면 2일 가자지구 국경 당국은 통과가 허용된 외국 국적자 600명의 명단을 추가로 발표했다. 해당 명단엔 한국, 미국, 멕시코, 헝가리, 스위스, 이탈리아 등 다양한 국적자들이 포함됐다.
<AFP> 통신은 이스마일 카이라트 이집트 외교부 차관이 2일 외국 외교관들과 만나 "60개국 이상" 국적의 "7000명 가량"의 외국인 및 외국 국적자들의 가자지구 대피에 도움을 줄 예정이라고 밝혔다고 보도했다.
다만 카타르 알자지라 방송에 따르면 외국 국적자 대피가 시작된 1일 가자지구 통신이 두절되며 많은 외국 국적자들이 탈출이 가능하다는 소식을 듣지 못했고 곳곳에 이스라엘 공습이 쏟아지며 라파 검문소로 갈 안전한 방법도 스스로 알아내야 했다고 한다.
"군사 작전에 정치 과정 병행 돼야 하마스와 주민 분리 가능…가자지구 미래 나중 아닌 지금 터 닦아야"
이스라엘이 3주 넘게 가자지구에 거센 공습을 가하고 있지만 하마스 퇴치 뒤 가자지구의 통치 공백에 대해선 제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가운데, 지금과 같은 방식은 하마스를 궤멸시키지 못할 뿐 아니라 주민들과의 분리도 실패해 새 조직원을 양산하는 꼴이라는 전문가 지적이 나온다. 정치적 과정이 군사 작전과 동시에 진행 돼야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와 분리돼 다른 대안을 선택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이다.
로버트 페이프 미 시카고대 정치학과 교수는 1일 CNN 기고에서 "하마스를 물리치려는 이스라엘의 전략은 유효할 가능성이 낮다. 이미 이스라엘은 죽인 테러리스트보다 더 많은 테러리스트를 양산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다"고 밝혔다.
테러 조직 퇴치를 위해선 지역 주민들과 테러리스트를 분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군사적 조치와 지역 주민들에게 통치권을 돌려주는 정치적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지 않는 한 이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현재 이스라엘은 하마스 궤멸 뒤 가자지구의 미래에 대해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페이프 교수는 정치적 과정이 병행되지 않은 군사 작전이 현 세대의 테러리스트를 "더 큰 규모의 새로운 세대의 테러리스트로 대체할 뿐"이라며 "이스라엘이 현재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정치적 결과에 대한 생각이 거의 없이 군사적으로 1~2달 만에 테러리스트를 소탕하려는 노력은 죽인 것보다 더 많은 테러리스트를 양산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테러리스트를 대중으로부터 분리하는 원칙은 간단해 보이지만 실제 달성은 매우 어렵다"며 이스라엘과 미국이 그간 벌여온 작전을 예로 들었다. 1982년 6월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해방기구(PLO)를 분쇄하기 위해 레바논 남부를 침공해 단기적으론 성과를 얻었지만 곧바로 이에 대항해 헤즈볼라가 창설됐고 이스라엘이 1985년 레바논 남부에서 군을 물린 뒤 계속 성장해 지금에 이르게 됐다는 것이다.
가자지구의 경우도 이스라엘이 1990년대 초반부터 2005년까지 군사적 점령을 유지하며 많은 테러리스트를 죽였지만 주민들의 반발만 샀고 결국 이듬해 곧바로 하마스가 이 지역을 장악했다.
2003년 이라크를 침공한 미국의 경우 6주 만에 승기를 잡았지만 이후 이라크에서 대규모 내전이 발생했고 혼란이 지속되며 결국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 단체 이슬람국가(ISIS) 등장으로 이어졌다.
그는 "가자지구에서 이런 비극적 패턴이 이미 벌어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는 하마스와 지역 주민이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결속이 강화되는 것을 목격하고 있으며 하마스 모집도 늘어날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페이프 교수는 반면 ISIS 퇴치 작전은 초기부터 군사 작전과 정치적 작전이 결합돼 변화를 가져 왔다고 짚었다. 무슬림 지상군이 이라크와 시리아에서 몇 년에 걸쳐 군사적 압력을 가하는 동시에 테러리스트를 퇴치한 지역은 주민들이 효과적으로 통치할 수 있도록 하는 정치적 과정을 병행함으로써 테러리스트가 재생산되는 것을 막았다는 것이다.
그는 "테러리스트에게 지속적 피해를 입히는 유일한 방법은 수 년에 걸친 장기 작전을 통해 확인된 테러리스트에 대해 선별적 공격을 가하고 테러리스트와 지역 주민들 사이를 멀어지게 하는 정치적 작전을 병행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하마스를 주민들로부터 분리하는 유일한 길은 정치적으로만 가능하다"며 "나중이 아니라 지금 팔레스타인 국가로 향한 길을 닦는 정치적 과정을 시작하고 팔레스타인인들이 하마스를 대체할 수 있는 실행 가능한 정치적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이를 통해 시간이 지남에 따라 하마스와 주민들을 점점 더 분리시킬 수 있다"며 결국 "누가 가자지구를 이끌어야 하는지 결정하는 것은 팔레스타인인들"이라고 강조했다.
[김효진 기자(hjkim@pressi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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