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있는 커피…"내가 잘 키웠으니 믿고 마시세요"

2023. 11. 2. 1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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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나 빈티지 같은 수식어로 설명할 수 없는 곳이었다.

본래 이불 가게였던 공간에 한약 장과 주워 온 자개 상을 둔 것이 전부였고, 그 이름의 유래가 된 영화 '나초 리브레' 대사를 따라 "커피에 대한 열정과 거지 같은 재능"으로 만든 일종의 커피 공방이자 카페였다.

그리고 그 봉투는 연남동 카페의 한약 장 위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들과 마주했다.

그 뒤에도 커피 리브레가 공간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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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간의 감각
서울 연남동 동진시장 커피 리브레
원두 봉투에 원산지 농부 얼굴 넣고
로스터·바리스타의 열정 전시되는 곳
레트로 한약장 위에서 커피 한잔
깊은 향기가 끝없는 사색을 부르네
커피 리브레 제공


레트로나 빈티지 같은 수식어로 설명할 수 없는 곳이었다. 본래 이불 가게였던 공간에 한약 장과 주워 온 자개 상을 둔 것이 전부였고, 그 이름의 유래가 된 영화 ‘나초 리브레’ 대사를 따라 “커피에 대한 열정과 거지 같은 재능”으로 만든 일종의 커피 공방이자 카페였다.

당시 서울 연남동 동진시장에 있는 커피 리브레의 월세는 30만원에 불과했다. 스페셜티 커피 문화를 퍼뜨린 해외 유수 카페가 그렇듯 이곳 또한 커피를 좋아하는 이들이 교류하는 공간이자 새로운 커피 문화를 전파하는, 아주 낮은 문턱을 가진 곳이었다. 그러니 이 원두가 상위 몇 %라든지, 얼마나 높은 가격에 거래된 커피라든지 따위의 수식어는 중요치 않았다. 오히려 거래의 투명성과 추적 가능성에 집중했다. 어떤 농부가 어떤 자연환경에서 어떻게 커피를 재배했는지, 그들과 어떻게 관계를 맺어 이 커피를 들여왔는지 보여주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커피 리브레의 ‘얼굴 있는 커피(Coffee with Face)’를 내세운 일종의 프로젝트나 다름없었다. 커피를 생산하고 가공한 사람들의 얼굴을 드러내고자 하는 국내 최초의 시도였다. 커피 봉투 위에는 서필훈 커피 리브레 대표가 직접 산지에서 마주한 이들의 얼굴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봉투는 연남동 카페의 한약 장 위에서 커피를 마시는 이들과 마주했다. 그렇게 그곳은 농부와 로스터, 바리스타의 노력이 전시되는 공간으로 자리 잡았다.

동진시장 철거 명분은 시민들의 안전과 도시재생을 통한 환경 개선이었다. 커피 리브레가 문을 열었을 당시 동진시장 주변 상점들의 간판은 소박했다. 도로와 건물의 경계 또한 분명해 마치 가게들이 복잡한 골목 사이에 숨어있는 듯했다. 하지만 상권 확장으로 연남동이 개발되기 시작하면서 주변 건물들은 대체로 개·증축에 나섰다. 덤덤했던 나무 간판은 네온사인으로, 정겹던 옛날 집의 외벽은 유리로 대체됐다. 조용한 주택가 골목이 부동산 투자 명소가 된 건 한순간이었다.

그리하여 커피 리브레 연남점은 다시 한 블록 떨어진 골목 뒤로 자리를 옮겼다. 그 뒤에도 커피 리브레가 공간을 대하는 태도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기존에 있던 주택의 모습을 그대로 살리고 화려한 장식이나 특별한 콘셉트를 주장하지 않은 채 자연스럽게 커피를 내세운다.

커피를 한약 장 위에 두는 방식도 그대로다. 깔끔하게 마감된 벽에는 ‘나초 리브레’ 가면에서 영감을 얻은 커피 리브레 로고와 몇 개의 회화 작품이 걸려 있다. 회화 작품은 박은하 작가의 ‘조용한 침묵’과 이전 매장에도 걸려 있던 서민정 작가의 ‘커피, 사회적 관계들의 총체’ 시리즈다. 커피와 그것을 다루는 사람들의 관계에 대해 조용한 질문을 던지기도 한다.

자연스럽게 커피를 드러낸다는 점에서 동진시장의 첫 매장과 지금 공간은 맥락을 같이한다. 달라진 게 있다면 커피 리브레가 도화선이 돼 퍼져나간 스페셜티 커피 문화다. 더 넓어진 공간에서 커피 리브레는 직원과 손님의 동선을 한층 세밀하게 계산했다. 이전 공간과의 이질감이 거의 없다. 하지만 이 편안한 변화를 위해 누군가는 타인의 불편함을 예측하고 이를 다듬기 위해 부단히 노력했을 것이다. 우리 삶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함께하는 이들의 행복도 커져야 하는 게 진리라면, 커피 리브레는 커피 농부와 이를 소비하는 이의 ‘행복 총량’을 키우는 데 기여했다고 믿는다. 지금의 공간에서도 변함없이 빛나기를 바라본다.

조원진 커피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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