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럼] 실내악 르네상스를 위하여
올 가을은 지난 코로나19 때문에 미루어졌던 내한 공연이 물밀듯이 개최되어 클래식 애호가들을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이런 공연의 홍수 속에서도 '실내악 축제'란 타이틀로 자주 열리곤 하는 우리나라 실내악 문화에 관해 얘기해 보고자 합니다.
실내악이나 앙상블이라고 하면 우선 떠오르는 단어가 '피아노 트리오(피아노 3중주)'나 '스트링 콰르텟(현악 4중주)' 연주가 있습니다. 거기에 한두 가지 악기가 더해진 5중주나 6중주도 있지요. 최근 10년 내 우리나라의 실내악단들을 살펴보면 ARD 콩쿠르와 모차르트 콩쿠르 현악 4중주 부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었던 노부스 콰르텟과 파리 국립고등음악원 출신들이 만든 트리오 제이드가 먼저 떠오릅니다. 사실 노부스 콰르텟이나 트리오 제이드는 실내악 불모의 한국 공연계를 떨쳐낸 뛰어난 재능과 실력에, 감각적 트렌드까지 갖춘 실내악단입니다.
그 이후 2015년 하이든 실내악 콩쿠르에서 우승한 아벨 콰르텟이 등장했고, 뒤이어 2018년 위그모어홀 주최의 현악 4중주 콩쿠르에서 네 명의 여전사로 구성된 에스메 콰르텟이 혜성과 같이 나타나 우승하며 우리나라 실내악계 분위기를 고조시켰습니다. ARD 콩쿠르 2위와 파크하우스 어워드를 수상한 룩스 트리오 역시 샛별처럼 빛났지요. 이들은 유럽무대에서 활약하다가 남자단원(첼리스트 채훈선)의 갑작스런 군 입대로 휴지기를 가져야 했습니다.
최근에는 프라하의 봄 콩쿠르와 모차르트 콩쿠르에서 수상한 아르떼 콰르텟, 미국 피쉬오프 실내악 콩쿠르와 멜버른 실내악 콩쿠르에 입상한 리수스 콰르텟이 주목을 끌고 있습니다. 이밖에도 국내외에서 몇 팀이 꾸준히 연습하고 활동하고 있으며, 연주회 때마다 뜻 맞는 연주자끼리 모여 연습하는 실내악단도 꽤 많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제가 여기서 말하고 싶은 것은 '전문' 실내악단의 부재입니다. 위에 언급한 피아노 3중주단이나 현악 4중주단에도 이미 멤버가 한두 명씩 바뀌었거나 거의 활동이 뜸한 단체들이 생겨나고 있습니다. 저는 그럴 때마다 '왜 그럴까?' 하는 의문을 품게 되었죠. 외국의 유명한 실내악단-보로딘 콰르텟, 벨체아 콰르텟, 알반 베르크 콰르텟, 보자르 트리오 등은 수십 년에 걸쳐 명맥을 유지해 오는데, 우리나라는 왜 10년을 채 넘기지 못할까 하고요.
첫 번째 이유는 아마 우리나라의 실내악단들 경우 자체 연주만으론 생계 유지가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앙상블 팀원 중에서 한 명이 오케스트라 악장이 되거나, 솔리스트, 교수직 등으로 이전하면, 팀원을 충원하더라도 서서히 팀워크가 무너져가는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로 국제적 수준의 유명 실내악 콩쿠르는 6개월 전에 연주 영상을 미리 제출해야하는데, 예선이 통과되더라도 그 이후 팀원이 바뀌면 초청이 취소된다고 합니다.
그래서 저는 실내악단에 몸담고 있는 음악가들을 만나면 매번 이렇게 말합니다. 매번 연습하고 난 후에 팀원끼리 서로를 평가하라고요. 멤버들끼리 잘 한 점은 칭찬하고, 잘못된 점은 솔직히 지적해야 미운 정, 고운 정이 쌓여서 오래 팀을 지속할 수 있다고 말이죠.
두 번째로는 실내악 축제 운영의 문제점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는 현재 수많은 실내악 축제가 열리고 있는데요, 문제는 그런 실내악 공연에 전문 피아노 3중주단이 현악 4중주단을 초청하기보다는, 그냥 아는 솔리스트들을 엮어 운영한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들은 국제적 수준의 유명 콩쿠르에서 수상한 경력을 갖춘데다, 인기도 있는 연주자일 경우가 많지요. 그러나 아무리 유능하다 해도 실내악 축제 때 갑자기 만나 서로 음악을 맞춰보는 시간이 극히 짧다 보니 좋은 하모니를 이루어 내기는 어려울 수밖에 없지 않을까요.
얼마 전에 저는 실내악 축제를 주관하는 한 감독을 만나 전문화된 피아노 3중주단이나 현악 4중주단을 적극 초청하라고 부탁한 적이 있습니다. 그 축제도 여느 축제와 다름없이 유명 솔리스트들이 모여 만든 앙상블이 대부분이었거든요. 더불어 저는 5중주나 6중주도 해외 축제처럼 기존의 현악 4중주단에 1~2명을 추가해서 연주하는 게 실내악 축제 본연의 모습이 아니냐고도 말했습니다.
클래식 음악에 입문할 때, 보통은 피아노나 바이올린처럼 한 악기의 작품과 연주에 집중하다가 나중에 웅대한 스케일의 오케스트라 연주를 감상하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렇게 작은 것으로부터 매력을 발견하여 큰 세계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보면, 클래식 음악의 꽃은 단연 실내악이라 할 수 있는 것이죠.
아직은 일부 피아니스트와 세계 유명 오케스트라의 내한 공연 때만 북적이는 우리 공연계. 향후 실내악과 앙상블의 르네상스를 위해 음악계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각 음악대학의 '실내악 전공'을 신설하고 실내악 축제부터 기획의 방향을 바꿔 나가야 하는 게 아닐까요? 클래식 음악 애호가들께도 실내악 공연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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