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빗나간 물가예측] 경기·물가 다놓친 秋경제팀… "2%대 물가, 2025년에나 가능"
물가 3%·성장률 0%대 이어져
한은 '단순 물가 전망기관' 전락
"스태그 상태, 기준금리 올려야"
가을쯤이면 물가가 안정될 것이란 정부와 한국은행(한은)의 전망이 '한여름밤의 꿈'이 됐다. 한때 안정세를 되찾는 듯 싶던 소비자물가는 다시 뜀박질이다. 경제 성장은 미국에도 크게 뒤진 0%대 성장률을 이어가고 있다. 그런데도 정부와 한은은 국제 유가 안정과 반도체 수출 회복 등 외부적 요인의 호전에만 목을 매달고 있는 형국이다.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상품의 공급을 늘리는 한편으로 기준금리 인상·통화량 감축과 재정지출 축소 등 수요를 억제하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이런 긴축 정책은 불가피하게 경기를 희생시키게 된다. 추경호 경제팀이 '물가'와 '성장'이라는 두마리 토끼를 한꺼번에 잡으려고 우왕좌왕하면서 어느 하나도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2%대 물가 2025년에나 가능"
한은은 2일 "최근 유가·농산물 가격 상승 등을 감안할 때 향후 물가 흐름은 지난 8월 전망 경로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앞으로 물가가 당초 예상보다 더 높을 것이란 '고백'이다. 이창용 총재 역시 전날 '한은·대한상공회의소 공동개최 세미나'에서 "국제 유가를 배럴당 84달러 정도로 보고 있는데, 90달러 이상 오르면 예측이 달라질 것"이라고 말했다.
10월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같은 달보다 3.8% 올랐다. 지난 8월 3.4%, 9월 3.7%에 이어 더 높아졌다. 작년 7월 6.3%를 정점으로 올해 7월 2.3%까지 내려온 물가 상승률이 3개월 연속으로 3%대에 머문 셈이다. 문제는 이같은 물가 상승이 기획재정부나 한은이 강조하는 것처럼 단순히 유가에 의한 것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유가가 오른 탓도 있지만 농수산물은 물론 공공요금, 공산품, 식료품, 자가주거비, 의류 및 신발, 음식 및 숙박 등 안오른 품목이 없을 정도다.
한은은 '주요국 디스인플레이션 현황 및 평가' 보고서에서 "우리나라는 최근 수요와 노동시장의 압박이 완화되고 있으나 비용상승 압력의 파급 영향은 지속되고 있다"며 물가 2%대 안정은 2025년 상반기에나 가능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은은 이 보고서에서 "근원상품 물가의 오름세가 더디게 둔화되고 있다"며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 전쟁 등으로 물가가 안정을 되찾는 속도는 예상보다 더딜 것"으로 전망했다.
◇미국보다도 낮은 0%대 저성장
물가가 고공행진 하는 가운데 성장은 바닥을 기고 있다. 3분기 한국 경제는 전분기 대비 0.6% 성장에 그쳤다.우리보다 경제 규모가 13배쯤 큰 미국(1.2%)의 절반 수준이다. 1분기 0.3%, 2분기 0.6%에 이어 3분기에도 0%대 성장이다.
기간을 최근 2년간으로 늘려봐도 우리 경제 성적표는 41개 주요국 가운데 25위로 하위 수준이다. 국제통화기금(IMF) 세계경제전망(WEO)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해 2.6%에 이어 올해 1.4%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는 한국은행과 정부의 성장률 전망치와 같은 수치다. 한국의 최근 2년간 합산 성장률은 4.1%였다. IMF가 분류하는 41개 선진경제권 가운데 25위에 해당하는 수치다. 41개국 평균(5.9%)보다 낮은 수준이다.
한 나라가 물가안정을 유지하면서 달성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성장능력인 잠재성장률은 2012년 3.8%를 기록한 이후 12년 연속 추락 중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우리나라의 올해 잠재성장률을 1.9%, 내년에는 1.7%로 추정했다. 내년 1.7%는 미국(1.9%)보다도 낮은 수치다.
OECD의 2001년 이후 24년간 추정치 통계에서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G7(주요 7개국) 회원국을 밑도는 경우는 처음이다.
◇정부·한은, 물가와 성장 사이에서 '우왕좌왕'
윤석열 정부 들어 추 경제팀은 '물가'와 '경기(성장)' 사이에서 곡예를 타는 듯한 정책을 펼쳐왔다. 한때 경기부양을 최우선 목표로 하는가 했더니 최근엔 방점이 물가 안정에 찍히고 있다. 경기를 활성화하는 가운데 물가도 안정시키면 좋겠지만 그런 '마법의 정책 조합'은 쉽지 않다. 필립스곡선이 얘기하는 것처럼 물가와 성장 사이에는 트레이드 오프(trade-off·상충) 관계에 있기 때문이다.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경기 후퇴를 각오해야 한다는 뜻이다.
물가를 안정시키려면 정부 차원에서 재정 지출의 축소, 중앙은행 차원에서 기준금리 인상과 통화량 감축의 정책을 펼쳐야 한다. 하지만 정부 지출은 문재인 정부보다는 줄였다고는 하나 여전히 많다. 재정 적자는 지난해 역대 최대인 117조원(관리재정수지 기준)으로 불었다. 관리재정수지는 총수입에서 총지출을 뺀 통합재정수지에서 사회보장성기금수지를 제외한 것이다. 올해와 내년에도 천문학적 재정 적자가 예고돼 있다.
한은도 통화정책을 어정쩡하게 유지하면서 단순 물가 전망기관 수준으로 격하되고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는 1일(현지시간) 기준금리를 연 5.25~5.50%로 동결했다. 두차례 연속 동결하긴 했지만 22년만에 최고치다. 이렇게 연준은 물가 안정을 위해 공격적인 인상을 단행했지만 한은은 기준금리를 3.50%로 11개월째 유지하고 있다. 한미 간 기준금리 차는 상단기준 2.00%포인트(p)에 이른다. 오는 30일 열리는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에서도 금리가 동결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한은은 금리를 미국보다 낮게 유지하면서 통화량을 줄이는 정책도 취하지 않았다. 2020년말 3070조8300억원에 달했던 광의통화(M2) 평균잔액은 지난 8월 3829조6000억원으로, 2년8개월만에 무려 758조7700억원(24.7%)이 늘었다. 2020~2022년 3년 동안 실질 국내총생산(GDP) 증가율 7.0%보다 3배 이상 높은 것이다. GDP 증가율보다 통화량이 늘어났다는 것은 통화가치가 떨어졌다는, 즉 화폐로 표시되는 물가를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2400명 가까운 임직원에 평균 연봉이 1억원(2022년 기준)이 넘는 거대 조직이 설립 최대 목표인 물가 안정을 허술히 한다는 비판을 듣지 않을 수 없는 대목이다.
한은은 게다가 우리 경제의 잠재 뇌관으로 꼽히는 가계부채도 적절하게 관리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그런데도 이창용 총재는 "우리 경제의 최대 현안은 구조조정을 통한 생산성 향상"이라며 마치 한은은 아무런 책임이 없다는 식의 소리를 하고 있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경제학)는 "지금 한국 경제는 물가 상승속 경기침체인 스태그플래이션 상태"라며 "금리를 더 올려 물가를 확실히 잡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현철·이미선기자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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