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은 전염병처럼 퍼진다

한겨레 2023. 11. 2. 1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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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이스라엘-하마스 전쟁]

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하마스와 이스라엘 간 교전이 계속되는 가운데 30일(현지시간) 가자지구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파괴된 집을 떠나고 있다. 하마스 궤멸을 목표로 지상 작전에 돌입한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핵심 자원이 집중된 가자시티를 에워싸고 압박 강도를 높이고 있다. 가자지구/AP 연합뉴스

[세상읽기] 김종대 | 연세대 통일연구원 객원교수

10월7일 하마스의 기습 공격 뒤, 가자지구에서 1만명 넘는 팔레스타인인을 숨지게 한 이스라엘의 공습에도 불구하고 하마스의 정치-군사적 지도력은 여전히 건재하다. 이스라엘의 지난 3주간 공습 기간에도 알카셈(알깟삼), 사라야 알쿠드스, 아부 알리 무스타파 등으로 알려진 여단급 무장 조직들은 이스라엘 영토를 향해 매일 로켓 포탄을 쏘고 있다. 10월27일부터 가자시티 인근에 진입한 이스라엘 전차와 장갑차를 표적으로 이들 여단은 합동작전도 진행하고 있다. 최고사령관이 사망했어도 여전히 제병합동 지휘통제 체계가 유지된다는 뜻이다.

하마스는 자신들이 억류한 이스라엘 인질들 동영상을 공개하는 심리전도 수행하고 있고, 러시아에서 이란과 헤즈볼라 지도자들을 만나 공조하는 외교전도 병행한다. 하마스는 단순한 무장단체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이며 국제적 네트워크이고 저항의 문화다. 레바논에는 하마스와 헤즈볼라의 군사적 행동을 조정하는 합동군사기구도 운영되고 있다.

하마스의 저항은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에 불길한 전망을 드리운다. 가자지구에서 하마스의 지도부를 참수하고 하마스와 팔레스타인 주민을 분리하려는 이스라엘의 전략이 먹혀들지 않는다는 거다. 설령 이스라엘군이 가자시티에 진입하여 하마스 전사들을 소탕했다 하더라도 하마스는 궤멸되지 않는다. 게다가 가자시티의 미로와 같은 좁다란 골목길에서는 이스라엘군의 최첨단 무기도 소용이 없다. 2016년 미군이 이슬람국가(ISIS)가 점령한 이라크 모술을 탈환하는 데도 9개월이 소요되었다. 이스라엘이 가자시티에서 그 당시와 비슷한 전쟁을 하려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이 요구될 것이다. 오히려 이스라엘이 전략적 딜레마에 봉착할 수도 있다.

이스라엘의 요아브 갈란트 국방장관은 베냐민 네타냐후 총리에게 전쟁이 길어질수록 비용이 커지고 인질이 위험해진다며 지금 바로 가자시티에 진입하여 전쟁을 끝장내자고 압박한다. 그러나 그것은 하마스가 바라는 바다. 전쟁이 시작되던 지난달 7일, 하마스는 날개 4개 달린 상업용 드론인 쿼드콥터에 위성내비게이션 시스템에 의해 유도되는 직접 공격 탄약과 비디오카메라와 무선 링크가 장착된 배회 탄약을 결합하는 능력을 보여주었다. 공개된 영상에는 쿼드콥터가 투하한 탄약이 이스라엘 주력 전차인 메르카바 탱크를 파괴하고 가자 국경을 따라 있는 장벽의 보초 탑 꼭대기에 설치된 원격조종 무기를 파괴하고 통신 기지국을 타격하는 장면이 나온다. 드론이 이스라엘군의 신경망을 파괴하는 동안 지상과 바다, 하늘로부터 하마스 전사들이 이스라엘 영토로 진입했다.

이런 기발함은 하마스가 지난해 우크라이나 민병대가 키이우 북부에서 러시아 기갑전력을 제압했던 전술을 체계적으로 학습하고 발전시켰다는 증거다. 앞으로 가자시티에서 전개될 비대칭 전쟁, 즉 민간 자산을 활용한 하마스의 조직적 저항을 과소평가하면 이스라엘은 큰 낭패를 겪게 된다.

나쁜 건 빨리 배운다고 살인의 기술은 빠르게 학습되고 전파된다. 이스라엘은 우크라이나에서 러시아군이 보인 잔혹성을 그대로 답습한다. 비인도적 살상 무기인 백린탄까지 투하하는 등 러시아군은 댐과 병원, 발전소, 주거지를 무차별로 폭격했다. 이스라엘은 전쟁 발발 사흘 뒤부터 155㎜ 포에 백린탄을 발사하는 등 지난해 러시아군이 보인 모습을 압축적으로 재현했다. 극한의 공포로 저항 의지를 말살하려는 의도다. 가자지구에서 화재로 아동과 노약자가 사망하는 현상은 우크라이나 전쟁을 2배속으로 재현하는 것처럼 느껴질 정도다. 유럽과 중동에서의 두 전쟁은 상대방의 굴복이나 항복이 아니라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극단적 비극성도 닮았다. 어쩌면 전쟁은 전염병과 비슷한 양상으로 퍼질 것이다.

앞으로 집단의 원초적 적대감 고조, 적은 비용으로 큰 충격 강요, 위기를 관리하고 통제할 거버넌스 마비라는 세가지 조건이 충족되는 곳에서 전쟁이 일어날 가능성이 크다. 팔레스타인 자치정부 통치력이 약화하는 요르단강 서안, 가자지구, 내전이 벌어지고 있는 예멘, 무장단체가 난립하는 시리아나 이라크, 유럽의 발트 삼국 등이 그 후보지다. 세계를 배회하는 전쟁의 신은 적개심으로 지혜가 녹슬어 버린 인간 본성의 나약함을 파고들 것이다. 남북 간 합의된 9·19 군사합의를 무력화하고 굳이 이스라엘을 닮아가겠다는 윤석열 정부가 북한에 대한 적개심으로 눈이 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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