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고독한 거인의 속삭임”.. 존재했으나, 사라진 이들을 기억하기 위한 연대의 송가(頌歌)
“인간과 비인간 존재 간의 관계에 대한 탐구”
15일까지 제주시 관덕로 ‘아트스페이스 빈공간’
# 단순히 시각적인 공감이나 스펙터클((spectacle)한 새로움을 기대했다면, ‘존재’를 향한 직설적인 물음이 다소 부담스러울 수 있는 공간입니다. 거대하면서도 침묵하는 세계, 인간과 비인간 혹은 연결과 단절에 대한 비선형적인 서사가 철학적으로 체류하면서 서로가 서로를 조명하고 불협화음으로 울려 퍼집니다. 인간의 관심사에서 변방으로 밀려난 삶에 시선을 두고 귀를 기울여보길 권합니다. ‘생물학, 지질학, 환경 운동, 발효 탐구, 토목 공학 등 다양한 각자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의 목소리를 듣고’ 쉽게 사라지고 잊혀지는 존재들에 대한 ‘애정과 연대’를 요청합니다.
지난 1일 시작한 박한나 작가의 프로젝트 전시 ‘코끼리는 여기에만 있다’입니다. 15일까지 제주시 관덕로의 ‘아트스페이스 빈공간’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이번 전시에는 모두 5편의 영상을 3대 모니터를 통해 각각 1, 2, 2편씩 선보이고 있습니다.
생물다양성과 관련된 여러 전문가들의 의견을 취합한 리서치는 실험적인 영상 ‘코끼리는 여기에만 있다’(싱글채널 비디오, 20:08, 2023)로 풀어냈습니다. 인류의 일상 그리고 생존이 ‘비인간’과 어떻게 엮일 수 있는지 실마리에 대한 탐구입니다. 이학준 외 9명의 인터뷰와 글은 ‘숲이 사라져서 당신에게 발생하는 손해가 무엇입니까?’(25.7×18.2cm, 2023) 소책자로 함께 소개합니다.
또 칠레, 싱가포르, 대만, 그리고 제주에 거주하는 영상 제작자들과 연대하는 그룹 ‘Pigeon Collective’(Hanna Park·Ju-hye Lee·Yi·Ying Huang·Yen Ee Choo·Yen Ee Choo)의 4편의 옴니버스 영상 ‘Pigeon Collective 2.0’(26:04. 2023)을 만날 수 있습니다. 2021년 구성한 이 그룹은 2023년 2월부터 8월까지 자연 그리고 서식지란 무엇인지,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연결되고 또 단절되는지 이야기하면서 각자 느낀 바를 영상으로 표현했습니다. ‘Pigeon Collective’(Hanna Park)-‘Holding each other in the darkness’(싱글채널 비디오, 07:42, 2023), ‘Pigeon Collective’(Ju-hye Lee)-‘I can’t exist without you’(싱글채널 비디오, 7:10, 2023), ‘Pigeon Collective’(Yi Ying Huang)-‘Nature which exists’(싱글채널 비디오, 05:48, 2023), ‘Pigeon Collective’(Yen Ee Choo)-‘Here is where we live now’(싱글채널 비디오, 6:04, 2023)입니다. 개개 영상들은 ‘느슨한’ 연대를 이루며, 다른 공간이지만 같은 시대를 조명하는 공시적 구도를 형성합니다.
이처럼 자연과 서식지 그리고 인간과 인간이 아닌 것에 대한 내러티브들의 상호작용을 통한 반추는, 지리적인 다양성에도 불구하고 생태적인 연대를 위한 교집합으로 엮이면서 공존의 본질을 지향합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면서 만난 공룡·지질 연구자와 대화를 통해 대상으로서 ‘존재’에 대한 감각을 환기시킨 작가는 “일상이라는 반복적 감각으로 인해 배경이 되고, 그 가치가 자주 삭제되는 존재들에 대한 애정과 연대가 필요하진 않을까?”라면서 “(코끼리는 여전히 제주에서 보기 어려운 존재이지만) 지구적 시선으로 다시 보자면, 그의 말을 인용하자면, 코끼리는 여기(지구)에만 있다”고 정리합니다.
전시는 제주문화예술재단의 ‘2023년 E로운 제주 예술 프로젝트’ 선정사업입니다.
전시기간 오전 11시부터 오후 6시까지 관람 가능하며 사전 예약제입니다. 월요일은 휴관입니다.
보다 자세한 내용은 아트스페이스 빈공간 인스타그램을 참고하면 됩니다.
서울 태생의 작가는 국제영어교육도시에서 생계 노동을 하며 만난 파헤쳐진 곶자왈 풍경을 통해 생태 보전과 개발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제주로 이주했습니다. 개발에 대한 거부감과 매력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적정거리’(2018), 생산과 소비의 시간을 늦춰줄 생태계 분해자로서 예술을 꿈꾸는 ‘분해자 decomposer’(2022), 자연을 자원이나 배경으로만 소비하는 것에 물음표를 던진 ‘그저 배경 화면은 아니랍니다’(2023) 등 개인전을 개최했고 다큐멘터리 ‘보말, 노루, 비자나무, 사람’(2022)과 SF실험영상 ‘유령의 풍경’(2023)을 제작 상영했습니다. 현재 기후위기와 생물다양성 감소라는 현실 속에 한 개인이 어떻게 생활적-예술적 실천으로 살아갈 수 있을지, 자신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JIBS 제주방송 김지훈(jhkim@jibs.co.kr) 기자
Copyright © JIBS.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