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광장] 리더의 애민, 민본, 경외
이순신과 진린, 공직에선 갑 아닌 '을' 자세로
'위민'(爲民)을 넘어 '경외'(敬畏)가 필요한 때
지난달 말 한 대학에서 '다시 보는 인간 이순신'이라는 주제의 학술심포지엄이 열려 관심있게 자료를 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 발제자로 영화 '명량' '한산' '노량'의 감독으로 유명한 김한민 영화감독을 비롯한 4명의 이순신 전문가가 참여해 장군의 성정부터 애민 정신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한 바 있다.
시대를 초월한 불멸의 리더로 우리는 단연 이순신을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위대한 리더에게는 뛰어난 소통 능력이 있기 마련이다. 이순신 역시 사람의 의견에 귀 기울일 줄 알았으며, 마음을 하나로 만드는 데 힘썼다. 이순신이 정읍 현감에서 전라좌수사에 오를 때 주변 수하들에게 요구한 것이 바로 당파, 파벌을 금지하는 서약서였다. 함께 힘을 합쳐 위기를 타개해야 할 구성원들이 서로 이간질해 내부 결속을 위협하는 일이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문서에 수결할 때조차 '일심(一心)', 즉 '한마음' '하나의 마음'이라고 곧잘 적은 것도 이를 증명한다.
사람의 마음을 하나로 묶는 데는 이순신의 소통 방식도 한몫했다. 장군은 여러 사람의 의견을 경청하고 격의 없이 논의했다. 류성룡은 「징비록」에서 "이순신이 한산도에 있을 때 '운주당'이라는 집을 짓고 밤낮으로 그곳에 거처하면서 여러 장수들과 군사 일을 논했는데, 졸병이라도 말하려는 자가 있으면 언제든 그것을 허락했다. 또 전투에 나설 때마다 부하 장수들을 불러 계책을 묻고 작전 계획을 짠 뒤 출정했기 때문에 패하는 일이 없었다"라고 전한다. 전투가 없을 때는 수시로 술과 음식을 차려 부하들과 함께 즐기며 위로하고 공을 치하했다.
이순신이 애민 정신을 가진 목민관임을 잘 보여주는 일화는 많다. 왜란 중 크고 작은 해전에서 적선을 격파해 몰아붙일 때 왜적들이 육지로 달아나면, 그 해안가에 반드시 배를 한 두 척 남겨 뒀다고 한다. 적선을 모조리 부수면 상륙한 왜군이 육지에 있는 우리 백성을 해칠 것을 우려해 적들이 타고 달아날 수 있는 여분의 배를 부러 남겨 놨던 것이다. 장군의 이런 모습에선 경외스럽기까지 하다.
때론 공직에 있으면서도 갑이 아닌 당당한 을의 자세로 '나라와 국민을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한다'는 민본과 애민 정신을 볼 수 있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 왜란 때 조선에 파병 온 명나라 제독 진린을 만나러 갈 때 조정대신들은 강직한 이순신을 걱정했다. 하지만 이순신은 을의 입장에서 한껏 자신을 낮춰 진린을 대접했다. 수백리 뱃길을 마중나갔고, 사냥 접대를 했으며, 50개의 적군 목을 선물로 내주기도 했다. 진린은 이순신의 인격에 감동, 자신의 부하들에게 이순신의 명령에 복종토록 지시했다.
이순신은 을의 입장이라고 주눅 들지 않았고 전략적으로 접근해 진린과 협상을 했다. 인간은 교만하면 허점을 보이기 마련이다. 흉포함으로 유명했던 진린이 고압적이면 고개를 더 숙여 갑을 더 교만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오죽하면 진린의 사후 그의 손자 진영소는 감국수위사를 지내다가 청에 의해 명나라가 멸망하자 벼슬에서 물러나 남경으로부터 배를 타고 조선으로 와서 남해군 장승포에 표착했다가 조부인 진린이 공을 세웠던 강진 고금도로 옮겨 살았을 정도다. 그 후 다시 해남현 내해리로 이거해 정착했다. 오늘날 광동 진씨의 뿌리가 된 배경이다.
리더로서 이순신의 강점과 역량은 일일이 나열하기 어려울 정도다. 특히 이순신의 애민과 민본 정신은 수백여년을 흐르는 동안에도 해석의 차이가 없을 정도다. 어느 한 학자는 이순신의 백성을 대하는 태도와 정신의 핵심은 '위민(爲民)이 아닌 경외(敬畏)'였다고 단언했다. 지도자의 핵심 덕목은 '백성을 위하는 것'(위민)에서 나아가 '공경하고 두려워하는 것'(경외)이란 해석이다. 오늘날 정치인, 공직자, 지도자가 '위민'을 넘어 '경외'의 마음을 지녔던 이순신을 제대로 본 받을 만한 도량은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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