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과 옛 신문광고] 환갑의 '박카스'와 강신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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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 동아제약 본사에서 조촐한 행사가 열렸다.
'국민 피로 해소제'로 불릴 만한 '박카스' 발매 60주년 기념식이었다.
박카스로 동아제약을 크게 키워 업계 정상에 올려놓은 강 회장은 사실상의 창업주다.
첫 신문광고에는 작업복에 모자를 쓴 근로자가 박카스를 마시는 장면이 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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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제약의 출발은 193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경북 상주가 고향인 창업주 강중희 회장이 서울 종로구 중학동에 '강중희 상점'을 세워 의약품과 위생재료 도매업으로 창업한 것이 시초다. 1949년 동아제약으로 사명을 바꿨고 1951년 용두동에 현대식 공장을 신축, 페니실린과 스트렙토마이신 등의 항생제를 생산했다.
그 무렵 창업주의 아들 강신호 회장은 독일에서 유학 중이었다. 1959년 귀국해 동아제약에 입사한 강 회장은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당시 국민들의 피로를 빨리 풀 수 있는 영양제에 관심을 갖고 개발을 주도했다. 2년 만에 제품 개발에 성공한 강 회장은 유학 시절 독일 함부르크 시청 지하홀에서 본 술과 추수의 신 바쿠스(Bacchus)에서 영감을 얻어 박카스라고 이름을 지었다. 함부르크 시청 바쿠스상은 현재 동아제약 당진공장의 로비에 같은 모습으로 전시돼 있다.
'박카스의 아버지'로 불리는 강신호 동아쏘시오홀딩스 명예회장은 박카스의 환갑 두 달 후인 지난달 3일 96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1955년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강 회장은 1958년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박카스로 동아제약을 크게 키워 업계 정상에 올려놓은 강 회장은 사실상의 창업주다.
동아제약은 '3M', 즉 대량생산(Mass Production)·대량광고(Mass Communication)·대량판매(Mass Sale) 전략을 썼다. 박카스는 특히 광고에 엄청난 비용을 쏟아붓는 마케팅 전략을 썼고 효과를 톡톡히 봤다. 신문, 잡지, 옥외광고 등 모든 매체를 동원했고 1960년대에 인기를 끌던 TV 외화 '전투(Combat)'에 독점광고를 내기도 했다. 첫 신문광고에는 작업복에 모자를 쓴 근로자가 박카스를 마시는 장면이 실렸다. 이후에도 줄곧 땀 흘려 일하는 한국인을 모델로 삼았다(조선일보 1963년 12월 21일자·사진).
박카스 판매량은 폭발적으로 늘어났다. 1965년 980만병에서 3년 후인 1968년에는 7006만병까지 증가했다. 편의점에서도 살 수 있는 박카스의 현재 연간 판매량은 5억병에 이른다. 국민 1인당 1년에 10병을 마시는 셈이다. 지난해 매출은 2497억원으로 동아제약 단일 제품으로는 처음으로 2000억원을 넘어섰다. 이는 국내 매출액이며 베트남, 캄보디아 등 동남아에서도 캔 박카스를 판매해 1000억원의 매출을 올리고 있다.
tonio66@fnnews.com 손성진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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