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 재난"... 고시원·반지하 취약계층, 기후위기 더 큰 타격

이연우 기자 2023. 11. 2.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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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산인권센터,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 공동주관
'기후위기와 주거권 토론회'…수원지역 실태조사

#1. 추위를 막아주지 못하는 집

“이모님(활동지원사)은 춥다고 전기장판 사용하는데 저는 (감각이 없어서) 화상 입으니까 전기장판을 쓸 수가 없어요. 여름에도 차 타고 가다가 엉덩이 따뜻하게 하는 것이 켜져 있었는지 몰라서 화상 입은 적이 있거든요. 당시에 한 달 이상 입원하고 피부 이식 수술하고 그랬어요. 감각이 없으니까….” 장애인 가구 A씨

#2. 숨 막히는 미세먼지

“우리 같은 피해가 있으면 미세먼지 상황에서 숨 쉬는 것도 안 좋아요. 진짜 되게 많이 안 좋아요. 숨소리가 나빠 병원을 가면 선생님은 ‘심각할 정도는 아니’라고 하는데 밤새도록 잠을 못 자요. 옆자리에서 들어보면 그냥 사람 숨 소리가 아니에요. 확 넘어가는 소리…. 그러니까 옆에서 듣는 사람은 그냥 그 자체로도 불안한 거지.” 가습기 살균제 피해가족 B씨

2일 수원특례시 행궁동어울림센터에서 열린 ‘기후위기와 주거권 토론회: 수원지역 실태조사를 중심으로’에서 진경아 다산인권센터 상임활동가가 기후위기 시대 속 인권의 중요성에 대해 발표하고 있다. 이연우기자

똑같은 경험이어도 저마다 처한 환경에 따라 받아들이는 정도가 다르다.

이는 기후위기에도 적용되는데, 폭염·한파·미세먼지 등 격변하고 있는 기후 환경이 거주형태에 따라 경제·건강·심리·안전 등 편차를 일으키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산인권센터와 경기도공익활동지원센터는 지난 4월부터 현재까지 약 7개월간에 걸쳐 기후위기 상황 속 주거를 중심으로 인권 문제를 살펴봤다.

이에 대한 결과는 2일 수원특례시 행궁동어울림센터에서 열린 ‘기후위기와 주거권 토론회: 수원지역 실태조사를 중심으로’에서 발표됐다.

■ 아파트는 자가, 단독주택은 월세

우리 삶에 기후위기가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작된 이번 ‘기후위기와 주거권’ 실태조사는 수원시의 주거 현황부터 짚고 시작한다.

국토교통부와 통계청, 수원시 등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수원시는 전체 주택유형 중 ‘아파트’가 57.0%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뒤이어 ‘단독주택’ 22.3%, ‘다세대주택’ 10.8%, ‘주택 이외 거처’(7.0%), ‘연립주택’(1.7%) 순이다.

이는 전국 평균에 비해 아파트(52.4%)는 많고 단독주택(29.0%)은 적은 수준으로 풀이된다. 경기도 내에서 비교하면 아파트(58.7%)는 적고 단독주택(20.2%)은 많은 편이다.

구체적으로 수원시 내 권역별로 분석하면 아파트는 ‘영통구’가 68.6%로 가장 높은 점유율을 나타냈고, 연립 및 다세대는 ‘장안구’가 31.3%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했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경기일보DB

전반적으로 아파트에 사는 사람은 ‘자가’ 형태로, 단독주택에 사는 사람은 ‘월세’ 형태로 분석됐다.

수원시 주택유형별 점유형태를 보면 아파트에 거주하는 가구는 10명 중 7명이 ‘자가’(73.3%)였다. ‘전세’(14.7%)와 ‘보증금 있는 월세’(9.6%) 구성비를 합쳐도 2배 이상 많은 수준이다.

반면 연립·다세대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는 10명 중 5명이 ‘자가’(53.9%)여서 아파트보다는 적었다. 연립·다세대주택의 ‘전세’는 25.6%, ‘보증금 있는 월세’는 17.3%였다.

이와 함께 단독주택에 거주하는 가구는 10명 중 2명만이 ‘자가’(21.2%)였다. 여타 주택유형에 비해 ‘전세’(33.9%)와 ‘보증금 있는 월세’(39.6%)가 상대적으로 많았다는 점이 눈에 띄는 점이다.

■ 市 733억원 투입…인권센터 “주거취약계층 지원 늘려야”

수원시의 주거취약계층은 총 119만964명(2021년 기준)이다.

65세 이상 노인이 전체의 12.4%(14만7천122명)로 집계되며 가장 많았다. 독거노인 가구(6.0%), 장애인(3.7%), 5세 미만 아동(3.3%) 역시 고령자 못지 않게 많았다.

이 외에도 기초연금수급자 7.7%(9만1천228명), 등록외국인 3.3%(3만4천94명), 국민기초생활수급자 2.4%(2만8천443명) 등이 주거취약계층에 포함된다.

수원시는 주거취약계층을 돕기 위해 2023년도 예산(수원도시재단 예산 제외)으로 도시개발국 447억원, 복지여성국 171억원, 도시정책실 62억원 등 전체 7개 실국의 56개 사업, 733억원을 투입했다.

이 안에는 ‘노숙인 임시주거 지원’, ‘저장장애 의심가구 (환경개선 실비보상비) 지원’, ‘가정용 저녹스보일러 보급사업’, ‘빈집 정비사업’ 등이 담겨 있다.

다산인권센터 측은 “청년 월세 한시 특별지원이 26억원 편성된 것과 대비해 주거취약계층 주거상향 지원사업은 1억4천만원 수준이고, 비정상거처 이사비 지원 1억2천800만원, 노숙인 임시주거 지원 5천200만원 등 주거취약계층에 대한 예산 및 사업 확대가 더욱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어 “수원시주거복지종합계획에는 주거복지 전담부서인 ‘주거정책과’를 신설한다는 내용이 있으나 실제로는 추진되지 않았고, 실태조사 추진도 미흡했다”면서 “시 차원에서 기후위기 적응과 대응을 위한 조직과 사업체계를 (세부적으로) 구성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기사와 관련 없는 자료 사진. 경기일보DB

■ 심층면접조사서 30명 의견 취합, 결국 ‘돈’이 문제

이번 실태조사에선 수원지역 시민 30명(남성 10명여성 20명)에 대한 심층면접조사도 이뤄졌다. 연령대는 50대와 70대가 각 7명으로 가장 많았으며, 다음으로 40대와 60대가 각 5명, 30대 4명, 20대 2명 등이다.

아파트, 단독주택, 반지하, 고시원 등에 거주하는 ▲농민가구 ▲차상위가구 ▲만성질환자 ▲장애인가구 ▲독거노인가구 ▲이주민가구 ▲온열질환경험자 ▲청소년동거가구 ▲조손가구 ▲신혼부부가구 ▲한부모가구 ▲여성1인가구 등이 함께 했다.

참여자들은 자가 9명, 전세 1명, 보증금 있는 월세 13명, 보증금 없는 월세 1명, 무상 1명, 공공임대 5명 등으로, 국민기초생활보장 생계급여·의료급여·교육급여 등 ‘공적부조 대상자’는 14명이다.

기후위기 전문가 등이 진행한 심층면접조사에서는 ‘날씨와 계절 변화에 민감한 우울증’, ‘갈 길 먼 최저주거기준’, ‘금가고 비새는 낡고 오래된 집’, ‘숨통만 틔우는 에너지 바우처’, ‘집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장애인’, ‘집 밖에 나서길 주저하게 하는 돈’ 등에 대한 각종 고충이 오갔다.

차상위·다자녀·한부모가정에 해당하는 한 반지하 거주민은 “(반)지하에 살다보니 세 아이들이 모두 병원을 달고 다니다시피 한다. 그 중 한 명은 체조선수인데 감기도 자주 걸리고 호흡기가 안 좋아져 힘든 상황”이라며 “특히 겨울에는 추워서 아예 환기조차 못 지킨다고 봐야 한다”고 전했다.

차상위·장애인가구인 다른 참여자는 ‘사라지지 않는 벌레’에 지친 케이스였는데, “바퀴벌레가 많아도 너무 많아서 이사 가고 싶다”면서 “방역하는데 연 20만원이 드는데 그 돈을 들여서 해도 방법이 없다. 외부에서 여기 오는 사람들은 거의 망해서 오는 사람들인데, 짐이 많아서 들어갈 틈도 없고 바퀴벌레가 살기 좋은 환경이 만들어지기 때문”이라고 토로했다.

2일 수원특례시 행궁동어울림센터에서 열린 ‘기후위기와 주거권 토론회: 수원지역 실태조사를 중심으로’에서 고호 수원특례시 도시재생과장이 시의 주거 정책을 설명하고 있다. 이연우기자

■ “기후변화 대응하는 주택정책 방향 세워야”

결국 가속화 하고 있는 기후위기 탓에 취약계층의 삶이 팍팍해졌다는 의미인데, 사회복지서비스마저 가까이 하기엔 먼 모양새다.

실태조사 참여자들은 주거권 향상을 위해 필요한 정책으로 ‘공공임대주택 확대’(19명·65.5%)를 가장 많이 꼽았다. 기초생활수급권자가 아닌 경우, 개인이 부담할 수 있는 주거비가 적기 때문에 대부분 노후주택이나 반지하 등 열악한 주거에 거처하고 있어서다.

특히 공공임대주택을 신청해도 기다려야 하는 기간이 너무 길어 그 사이 ‘월세 부담’ 등으로 결국 지역 자체를 떠나야 하는 사례, 혹은 공급 지역이 학교나 직장 등 기존 생활권과 너무 멀어 이사를 포기하는 사례 등도 있다.

이들이 1차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대상은 가족 또는 친척(17명·56.7%), 주민센터나 시청 등 공공기관(4명·13.3%), 친구(3명·10%), 직장동료 등 관계자(3명·10%) 등이다. 기후위기 시대 주거권 보장을 위해 사회가 함께 고민해야 하는 이유다.

김현정 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수원시 지역 안전도 진단은 양호한 편이지만 구(舊)도심 주거환경 및 인프라는 열악해 지역간 불균형과 재난 관련 시설 노후화, 인구고령화 가속, 기후변화 취약계층 증가 등에 대한 우려가 크다”면서 “사회전반적인 재난안전 정책 강화 및 예방에 대한 지역사회와 공동체의 요구가 커지고 있다. 앞서 경기도에 기후위기 속 탄소중립 정책이 통합관리돼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는데 수원시에도 이에 대한 의견을 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주택정책 방향은 크게 ‘감축’, ‘적응’, ‘정의’ 등으로 나뉜다. 주택 건설·개량·유지관리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감축하고, 주택의 내후성을 높이는 건축기준을 마련하며, 적정하고 부담 가능한 저렴주택 공급이 필요하다는 의미”라며 “수원시의 경우 장기공공임대주택의 재고율 향상을 위한 계획을 수립할 필요가 있다. 또 도심 내 기존주택을 매입해 탄소중립 공공임대주택으로 전환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부연했다.

끝으로 이번 실태조사에 함께한 정은주 기후위기와 주거권 시민조사단은 “상황을 살펴보며 좀 더 구체적이고 세부적인 정부, 지자체의 정책과 지원이 필요함을 확인했다”면서 “조금 더 안전한 사회로, 내 이웃과 우리 시민이 함께 웃는 수원시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한편 이호 더 이음 공동대표의 사회로 진행된 기후위기와 주거권 토론회에는 ▲고호 수원특례시 도시재생과장 ▲김현정 경기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 ▲이원호 한국도시연구소 책임연구원 ▲사정희 수원특례시의회 복지안전위원회 의원이 패널로 참여했다.

이연우 기자 27yw@kyeonggi.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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