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지영의 춤과 함께] 지금 알고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무대에서 내려오는 숙명
40대 중반 되니 아쉬움이
발레는 어떤 방법으로 배우는지 무척 궁금했는데 학생들이 바를 잡고 기본동작으로 이루어진 발레클래스로 시작하는 것을 보고 무척 신기했었다. 발레는 같은 동작을 반복하고 새로운 것을 배우는 과정의 반복으로 내 예상과는 다르게 제대로 된 춤을 추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는 힘든 여정이었다.
대부분 발레라고 하면 튜튜라는 화려한 의상과 토슈즈를 신고 무대 중앙에서 발끝으로 서서 점프를 하며 춤을 추는 것을 떠올린다. 무대 위에서 완벽한 공연을 하기 위해 무용수는 하루도 빠지지 않고 발레클래스라는 것을 하는데, 이것은 발레를 시작하는 학생들은 물론 수십년을 무대에 선 프로무용수도 반드시 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것으로 발레마스터 선생님 한 분이 반주자 한 분과 함께 1시간30분 정도 수업을 하는것이다.
나도 발레를 시작한 1988년부터 지금까지 매일 하루를 발레클래스로 시작한다. 학생들에겐 글을 쓰기 위해 글자를 배우는 과정 같은 것이고, 무용수에겐 하루를 시작하는 아침밥처럼 중요한 것으로 발레단 대부분이 클래스로 오디션을 볼 정도로 무용수를 판단하는 기준점이 된다.
프로발레단의 스케줄은 오전 10시나 11시부터 1시간 반 정도의 클래스를 하고 이후 공연작품 리허설을 하거나 공연을 하는 스케줄이 대부분이다.
공연 당일에도 1시간 반 정도 하는데 상황에 따라 강도가 강하거나 약한 경우는 있지만 무대에서 완벽한 기량을 선보이기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 시작은 바(Barre)라는 몸을 지탱할 수 있는 철봉 같은 것을 잡고 발끝부터 천천히 몸을 깨워 나가며 한 손으로 바를 잡고 다리를 들어올리거나 다른 기본적인 동작을 하고 빨라지는 카운터에 흩어져 있던 몸 안의 세포를 하나로 모은다. 그런 다음 바를 잡지 않고 센터라고 하는 연습실 중앙에서 몸을 컨트롤하며 동작을 한다. 이렇게 한시간 반의 클래스가 끝나고 나서 몸이 풀리면 본격적인 작품을 할 수 있는 것이다.
사실 프로무용수 시절 힘든 리허설이 끝난 후, 밤늦게까지 공연을 한 다음 날 아침 피곤한 몸으로 클래스를 한다는 것이 종종 곤욕이기도 해서 농담 삼아 발레단을 관두면 발레클래스부터 끊을 것이라고 한 적도 있었다.
발레단 퇴단 후 공연 제의가 들어오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무대에서 춤을 춘다. 무대 위에서 공연은 항상 설레지만 문제는 클래스를 혼자 해야 하는 것인데, 다소 불성실한 학생이었던 나에겐 힘든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스스로 하는 시간이 늘어나고 단순한 반복이 아닌 제대로 된 클래스를 하게 되자 200프로의 집중력을 뽑아냈다.
몸이 움직이는 시간은 프로무용수일 때보다 현저히 줄었지만 집중력과 몰입은 배로 올라가면서 춤을 연구하게 되었고 예전에 깨닫지 못했던 것, 선생님의 충고들을 생각하면서 클래스가 좋아지기 시작했다.
클래스를 즐기게 되자 학생들을 가르치는 데도 많은 도움이 되었고, 춤을 대하는 자세가 변화된 나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지금 알고 있는 걸 그때도 알았더라면'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하는 잠언 구절이 요즘 많이 떠오른다.
프로무용수 시절 클래스를 좀 더 즐기고 이해했다면 춤을 더 즐겁게 추지 않았을까. 춤에 대한 스트레스보다 즐거움으로 췄다면 더 아름다운 춤을 추지 않았을까.
러시아의 발레 거장 유리 그리가로비치 선생님은 '다른 예술에 비해 수명이 짧은 발레의 가장 슬픈 점은 춤이 무엇인지 알게 될 때쯤 무대에서 내려오게 된다는 것'이라는 말을 하셨다. 20대에는 머리로는 이해를 했지만 마음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았다.
40대 중반인 지금 그 말은 마음속 깊이 와닿을 뿐 아니라 춤은 나 자신이라는 생각에 평생 춤을 추고 싶은 무용수로서 많은 생각이 든다. 예술은 평생 동안 고뇌하며 나의 부족함을 채워나가는 여정이라고 한다. 아직도 부족함 많은 내가 무대에서 춤을 출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하며… 아직은 춤을 잘 몰라도 될 것 같다.
김지영 경희대 무용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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