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준모 칼럼] 예산 과제 산적, 이제 국회의 시간

2023. 11. 2. 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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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준모 연세대 교수·경제학

국회가 예산안을 심의 중이다. 민생을 위해 돈을 더 풀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정부에서 예산 받아 사업하는 사람이 예산 삭감을 좋아할 리 없다. 마을의 도로 건설 계획이 무산되면 마을 민심이 흔들린다. 그렇다고 물가가 상승하는데 돈을 풀면 오히려 국민의 고통은 심해진다. 포퓰리즘으로 근심 많은 나라로 전락한 아르헨티나에서 페론주의가 인기를 잃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의 경험으로 예산으로 표를 사는 행위도 힘을 잃었다.

재정지출의 재원은 국민의 땀과 희생이다. 국회는 국민의 대표로서 예산안이 국민에게 희생보다 더 큰 혜택을 되돌려 주는지를 따져야 한다. 혈세로 조달된 돈을 마구 풀어서 경제가 좋아진다면 사회주의 경제가 몰락하지 않았을 것이다. 유럽의 PIGS(포르투갈, 이탈리아, 그리스, 스페인)가 재정위기를 경험하지 않았을 것이고, 남미의 몰락도 없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국가채무는 50% 수준으로 이러한 국가들의 전철을 밟게 될지 모른다. 지금은 레이건(Ronald Wilson Reagan) 대통령이 미국 제40대 대통령 취임 연설에서 강조한 '경제 침체의 중요한 원인이 정부'라는 주장을 다시 한번 새겨야 할 때다.

우리나라의 국민부담률과 국가채무 수준에서 국민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이 이미 1차 저지선을 넘었기 때문에, 세수 증가로 이자도 갚기 어려워졌다. 의무지출이 빠르게 증가하는 상황에서 세수 부족으로 정부가 균형재정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고령 인구 증가와 고금리, 그리고 경제성장률 저하로 국민총생산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빠르게 증가한다. 문재인 정부가 재정위기의 방아쇠를 당겼고, 우리나라는 민심으로 포장된 재정위기로 가는 길을 걷고 있다.

2023년 9월 15~64세 생산연령인구 수는 전년 동월에 비해 28만1000명 줄었다. 생산연령인구뿐만 아니라 총인구도 감소하면서 경제성장률이 떨어지고 국세 수입의 증가세도 둔화할 것이다. 반면 의무지출은 급증하여 지출 구조조정을 하지 않으면 재정건전성을 달성하는 것이 불가능해진다. 정부와 국회, 그리고 국민이 함께 3대 개혁을 통해 생산성을 올리고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제고해야 한다.

이번 예산안은 건전성을 유지하면서도 민생을 돌보는 예산으로 평가된다. 보건, 복지, 고용 분야의 재정지출은 2023년 대비 16조9000억원 증가하여 전체 예산 증가액의 92.9%를 차지한다. 재정건전성을 위해 다른 분야의 지출은 최대한 억제했다. 이와 같은 재정지출의 추세는 2023년부터 2027년까지 5년간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동 기간의 분야별 재정지출의 평균 비중을 문재인 정부(2017-2022년)의 평균 비중과 비교할 때 보건·복지·고용 분야의 비중이 2.1%p 더 높고, 교육 및 환경, 외교 통일, 그리고 일반 지방행정 비중도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산업 중소기업 에너지 분야의 비중은 상대적으로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윤석열 정부가 문재인 정부보다 재정 건전화의 의지를 갖고 민생 중심의 재정지출을 강화한 것으로 보인다.

예산이 삭감된 분야는 민생이 아니라 연구개발 분야다. 1980년대 중반 이후 대한민국의 연구개발은 공공주도가 아닌 민간주도로 바뀌었다. 민간 주도 기술이 다양한 분야에서 경제성장을 견인했다. 지난 5년간 정부 주도 연구개발의 비효율성이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았다. 전 분야에서 재정지출의 효율성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경고음이 들린다.

교육 분야의 감소율도 높았지만, 지자체들이 그동안 여유자금을 축적한 기금을 활용하여 감당할 수 있다. 향후 교육 분야의 비중은 문재인 정부의 비중보다 평균 0.2%p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부에서 요구하는 마을상품권과 같은 이전지출 예산은 차제에 지자체에서도 전부 삭감하고 경제 활성화를 위한 효과적인 정책을 추진해야 한다.

이번 예산안은 선거에도 불구하고 재정건전성을 개선하기 위한 노력이 돋보인 예산이다. 여야가 공정한 선거와 미래의 재정위기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합심하여 효과적이고 공정한 예산을 만들기 바란다. 이제 국회의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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