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줄잇는 물가폭탄, 빗나간 물가예측
정부 당초 "10월에 잡힌다" 장담
공공요금·소비재 줄줄이 인상대기
10월쯤이면 물가가 잡힐 것이라는 정부의 큰소리와는 달리 물가가 다시 뛰고 있다. 지난 8월 이후 3개월 연속 3%대 상승률을 기록했다. 중동 전쟁 등으로 국제 유가 불안이 이어지는 가운데 전기요금 등 공공요금과 소비재 가격 인상이 줄줄이 대기하고 있어 연말까지 물가안정 전망은 어둡다.
전문가들은 정부와 한국은행(한은)이 물가 안정과 경기 부양 사이에서 정책 갈피를 못잡으면서 외부요인 탓만 한채 물가 안정을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탓이라고 지적했다.통계청은 2일 지난달 소비자물가지수가 전년 동월 대비 3.8% 상승한 113.37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지난 7월 2.3%로 일시 안정세를 보이던 소비자물가는 유가와 신선식품 가격 상승, 가정용품 및 가사 서비스, 음식 및 숙박 등 생활물가 상승으로 8월(3.4%)과 9월(3.7%)에 이어 3개월 연속 3%대를 기록했다.
채소류(5.3%)를 비롯한 농산물이 이상저온으로 13.5% 뛰면서 2021년 5월(14.9%) 이후 29개월 만에 가장 높은 상승률을 기록했다. 농산물의 물가상승률에 대한 기여도는 0.61%포인트(p)였다. 농산물 가격이 전체 물가를 0.61%p가량 끌어올렸다는 뜻이다.
신선 어류·채소·과실 등 기상조건이나 계절에 따라 가격변동이 큰 품목으로 구성된 신선식품지수는 12.1% 올랐다. 지난해 9월(12.8%) 이후 13개월 만에 가장 높은 수준이다.이 가운데 신선과실지수는 26.2% 뛰어 2011년 1월(31.9%) 이후 12년 9개월 만에 가장 오름폭이 컸다. 자주 구매하는 품목 위주로 구성돼 체감물가에 가까운 생활물가지수는 4.6% 상승했다.
석유류는 1년 전과 비교하면 1.3% 하락했다. 다만 전년동월비 하락 폭이 7월 -25.9%, 8월 -11.0%, 9월 -4.9% 등으로 줄어들면서 오히려 물가 상승 폭을 키우는 요인으로 작용했다. 중동 전쟁 등으로 석유류 가격은 전월과 비교하면 1.4% 올랐다.
당초 정부는 10월부터 물가가 안정세에 접어들 것으로 예측했다. 추경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달 5일 기자간담회에서 "10월과 11월에 3% 초반대로 안정된 뒤, 연말로 가면서 3% 내외로 안정될 것으로 예상한다"며 "근원물가도 10~11월에 2%대로 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물가의 기조적 흐름을 보여주는 근원물가(농산물 및 석유류 제외 지수)는 10월 3.6% 상승을 기록하면서 전월(3.8%) 대비 0.2%포인트 하락하는데 그쳤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방식의 근원물가인 식료품 및 에너지 제외 지수도 3.2%로, 추 부총리가 기대한 2%대에 진입하지 못했다.
한은은 이날 김웅 부총재보 주재로 물가상황점검회의를 열고 "최근 유가·농산물 가격 상승 등을 감안할 때 향후 물가 흐름은 지난 8월 전망 경로를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며 예측이 엇나갔다는 점을 인정했다. 추 부총리는 이날 물가안정관계장관 회의에서 "정부는 각별한 경각심을 갖고 모든 부처가 물가 안정을 정책의 최우선 순위에 두는 범부처 특별물가안정체계를 즉시 가동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연말까지 남은 두달 공공요금과 각종 소비재 가격 인상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어 물가 안정에 어려움을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한국전력의 누적 적자가 47조원에 달하며 전기요금 추가인상이 불가피한 상황이고, 소주 업계 1위인 하이트진로는 9일부터 소주 출고가를 병당 1247원으로 81원 올릴 예정이다. 9개월 만에 햄버거 가격을 약 5% 올린 맥도날드를 시작으로 외식업계도 연쇄적으로 가격을 올릴 가능성이 높다.
신세돈 숙명여대 교수(경제학)는 "유가가 물가에 영향을 미친 측면이 있지만, 근본적으로 기준금리가 물가를 잡기에 충분한 수준이 아니라는 게 문제"라며 "유가 탓만 하고 금리를 올리지 않는다면 한은이 목표 물가 2%를 달성할 생각이 없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상현기자 hyun@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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