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적]제사 간소화
스웨덴 언론인 카트리네 마르살은 책 <잠깐 애덤 스미스씨, 저녁은 누가 차려줬어요>에서 해묵은 경제이론을 논쟁의 장으로 끌고 나온다. ‘보이지 않는 손’을 설파한 애덤 스미스는 <국부론>에서 경제학에 대한 정의를 내렸다. “우리가 저녁을 먹을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주인이나 양조장 주인, 빵집 주인의 자비심 덕분이 아니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려는 그들의 욕구 때문이다.” 그런데 마르살은 천만의 말씀이란다. 그가 ‘잊은 게 한 가지 있다’는 것이다. 푸줏간·양조장·빵집 주인을 일터에 내보내기 위한 여성들의 ‘노동’을 간과했다는 얘기다. 혼자 산 스미스가 빵집 등 주인의 도움 없이 어떻게 저녁을 먹을 수 있었겠느냐는 반격이다.
멀리 갈 것 없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이 수년 전 우리 사회에도 신드롬을 일으켰다. 가부장적 문화 속에서 ‘내 이야기’로 공감하는 여성들이 많았던 것이다. 현실의 수많은 ‘김지영’들도 명절엔 제사 준비를 하느라 쉴 틈이 없다. 그러다 보니 제사가 ‘가족 불화’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누구는 돈을 안 내서, 누구는 음식 준비에 오지 않아서…. 제사가 가족 간의 갈등을 야기하다 보니 점차 제사를 지내는 전통이 사라지고 있다. 최근 성균관의례정립위원회 설문조사에서도 제사를 계속 이어갈 의향이 있는 이들은 10명 중 4명 남짓이라는 결과가 나왔다.
성균관도 그것을 의식한 것인지, 제사 음식을 대폭 간소화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위원회는 2일 기자회견을 열고 ‘전통 제례 보존 및 현대화 권고안’을 발표했다. 그간 여성이 주로 맡아왔던 제사 음식 준비에 관해서는 “고인을 추모하는 가족 모두가 함께 준비하는 것이 좋다”고 밝혔다. 축문은 한글로 써도 되고, 초저녁에 제사를 지내도 된다고 권했다.
어쨌든 먹지도 않는 음식을 바리바리 차리지는 않아도 된다는 것인데, 그런다고 문제가 해결될지는 모르겠다. 사실 제사 간소화에는 여성들의 경제 활동이 늘어난 연유도 있다. 제사가 중요하다면, 부디 온 가족이 함께 준비하는 제사가 되길 바란다. 그래야 일할 여성들이 줄어들자, 선심 쓰듯 제사를 간소화하자는 것 아니냔 의심을 거둘 수 있다. 이미 제사는 마음과 가족 화합이 으뜸이고, 형식은 그다음인 가정이 늘고 있다.
이명희 논설위원 minsu@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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