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 소리나던 희소질환 치료제 건강보험 적용 문턱 낮췄더니…환자도 의사도 제약사도 웃었다
최초 신약 바이오젠 ‘스핀라자’ 건보 적용 기준 확대
노바티스 ‘졸겐스마’·로슈 ‘에브리스디’ 급여 신설로 뒤쫓아
태어난 지 16개월 됐을 무렵 걷기 시작한 아이의 걸음걸이가 이상했다. 병원에서 아이는 만 2세에 ‘척수성 근위축증(SMA)’ 진단을 받았다. 점점 전신 근육이 약화하는 병인데, 일단 발병하게 되면 속수무책인 무서운 병이다. 쓸 수 있는 약도 없었다. 아이는 8세부터 혼자서 걷기가 어려워지면서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다. 하지만 16세가 됐을 때 치료 신약 ‘스핀라자’를 쓸 수 있게 됐다.
미국 바이오기업 바이오젠이 지난 2016년 12월 세계 최초로 출시한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 ‘스핀라자’에 대한 국내 건강보험 급여 인정 기준이 10월부터 확대됐다. 바이오젠코리아는 2일 기자간담회를 열어 스핀라자의 급여 적용 확대가 의사와 환자, 제약사에 주는 의미를 소개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유전성 질환인 척수성 근위축증은 운동 신경 유전자(SMN1)가 작동하지 못해 몸을 가누지 못하는 희소 질환으로, 장애 정도에 따라 음식을 삼키거나 숨쉬기도 어려워 치료받지 않으면 사망에 이르게 된다. SMN 단백질 결핍으로 운동신경이 사라지는 게 주원인이다.
바이오젠이 개발한 스핀라자는 척수강 내 주사요법으로 질환의 근본 원인인 중추신경계에 직접 투여하는 치료제다. 지난해 전세계에서 약 18억달러(약 2조4100억원)가 팔렸다.
하지만 지금까지는 이 약을 누구나 쉽게 쓰지는 못했다. 이 치료제는 보통 4개월에 한 번씩 투여하는데, 1회 투여 약값이 약 9236만원에 이르기 때문이다.
국내에서도 지난 2019년 건강보험 급여 적용이 이뤄지기는 했지만 지난 9월 말까지만 해도 만 3세 전에 증상 발현을 입증해야만 보험 급여를 적용받을 수 있었다. 이런 문턱 때문에 급여 적용을 받지 못하는 환자들의 불만이 컸다. 현장의 의사들 사이에서도 이런 조건 때문에 환자 치료에 한계를 느껴왔다.
이번 스핀라자 급여 기준 확대는 ‘만 3세 이하 연령 요건’을 삭제한 것이 핵심이다. 만 3세 이후에 증상이 발현된 환자들도 급여 적용을 받아 스핀라자 치료를 시작할 수 있게 됐다. 높은 약값의 벽이 낮아진 것이다. 진료비 본인부담이 높은 희귀(희소)·중증 난치질환에 환자 본인 부담을 덜어주는 산정특례제도와 본인부담액 상한제를 적용해, 환자 본인이 내는 1년 부담금은 소득 기준에 따라 약 87만~780만원이 된다.
박형준 강남 세브란스병원 신경과 교수는 이날 “스핀라자 등 신약이 나오기 전에는 임상 현장에서 진단을 내려도 쓸 수 있는 치료제가 없었는데, 신약이 개발된 이후 근본적인 약물 치료가 가능해지면서 영유아 환자들이 정상적인 발달 지표를 달성하거나, 이전에 하지 못했던 동작을 수행할 수 있게 되는 등 운동 기능이 개선되는 치료 사례가 다수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박 교수는 “16세부터 스핀라자를 투여해 현재 16차까지 투여받은 환자 상태를 분석한 결과 임상 지표상 1차 16점에서 16차 시점에 28점으로 향상됐다”고 말했다. 이는 환자가 약물 치료를 통해 스스로 앉거나 기어가는 것, 무릎을 꿇는 등의 동작을 할 수 있게 된 수준이다. 그는 “뛰거나 계단을 오르는 수준까지는 도달하지 못하지만, 환자 입장에서는 약물 치료로 삶의 질이 바뀌기 때문에 의미가 큰 변화”라고 했다.
박 교수는 “스핀라자 급여 적용을 받지 못한 환자들이 재활 치료 등 보조적 치료에만 의존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급여 기준 확대로 근본적인 약물 치료를 함께 받을 수 있게 돼 운동 기능과 삶의 질 개선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약사 입장에서도 건보 적용 확대는 의미가 크다. 치료제의 가치를 그만큼 인정받기 때문이다. 치료제 처방이 늘면 매출과 직결되기 때문에 건보 적용은 제약사 입장에선 주요 과제로 여겨진다.
최정남 바이오젠 코리아 의학부 상무는 “스핀라자는 최초의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로, 희귀질환 분야에서는 매우 드물게 8년 이상 축적된 최장기 임상연구 데이터와 임상 근거를 보유하고 있다”면서 “이번 급여기준 확대로 새로운 지평을 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최근 글로벌 제약사들이 앞다퉈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제를 내놓으면서 치료 패러다임과 의약품 시장 지형 변화도 예상된다. 국내에서는 바이오젠 ‘스핀라자’에 이어 노바티스 ‘졸겐스마’, 로슈의 ‘에브리스디’가 급여권에 앞다퉈 진입하면서 본격적으로 경쟁하기 시작했다.
바이오젠에 이어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된 노바티스의 졸겐스마는 척수성 근위축증 치료에서 최초의 유전자 치료제다. 이는 평생 1회 정맥 투여로 병 진행을 막을 수 있게 개발됐다. 건강보험 적용을 받지 않을 경우 1회 투약하면 약가는 20억원에 달하는데, 작년 9월부터 건강보험 적용을 받게 되면서 환자부담금이 최대 약 600만원 수준으로 낮아졌다. 지난달 급여가 신설된 로슈의 ‘에브리스디’는 연령과 체중에 따른 권장 맞춤 용량을 1일 1회 복용하는 먹는 신약이다. 건강보험을 적용하지 않을 경우 약가는 3억원대로 알려졌다.
☞척수성 근위축증(SMA)
척수와 뇌하수체의 운동 뉴런이 소실되면서 근육 위축과 약화를 일으키는 질환이다. 생존운동신경세포(SMN) 단백질이 부족해 척수 내 앞뿔세포가 퇴행하면서 발생한다. 증상 발현 시기에 따라 1~4형 4가지로 유형을 구분한다. 생후 18개월 이후 증상이 나타나는 3형은 만 3세 이전에 발병하면 3a형, 만 3세 이후에 발병하면 3b형으로 구분한다. 3b형 환자도 3a형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지날수록 운동기능을 잃게 되며 보행장애나 근육 약화를 겪을 수 있다. 지난 9월 말까지는 상대적으로 3b형의 경우 발병 시기가 늦고 약물 치료의 임상 유용성이 불확실하다는 이유로 건강보험 적용 대상에서 제외돼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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