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흘 동안 전청조 기사 4천개… "언론과 기자의 가치 판단 없었다"

박재령 기자 2023. 11. 2. 1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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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일 동안 4000개 이상… 54개 매체 기준 총 1338건
세계일보 142건, 파이낸셜뉴스 113건, 해럴드경제 104건
성전환, 성관계 자극적 소재 네이버 메인에 배치한 언론들
"주장 단순 전달에 과도한 정보 그대로 노출 적절한 태도인가"

[미디어오늘 박재령 기자]

그야말로 '폭탄'이다. 전 펜싱 국가대표 남현희씨와 재벌 3세로 알려진 전청조씨에 대한 이야기가 세상을 뒤덮고 있다. 연일 국내 언론의 '단독'이 쏟아지는 상황. 언론은 전청조씨에 대한 기사를 얼마나 썼을까.

▲ 네이버에 '전청조'를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400페이지까지 검색이 되지 않았다.

미디어오늘이 2일 네이버에서 '전청조'를 키워드로 검색한 결과, 지난 23일 여성조선의 단독 인터뷰 이후 언론은 11일 동안 네이버 기준 4000개가 넘는 기사를 쏟아냈다.

특정 매체가 전청조 보도를 이끌었다. 뉴스 빅데이터 분석시스템 '빅카인즈'에서 54개 매체를 대상으로 검색해보면 총 1338건의 기사가 나오는데 그 중 세계일보(142건), 파이낸셜뉴스(113건), 해럴드경제(104건), 등 온라인 대응에 힘을 주는 매체의 비중이 높다. 경향신문은 2건, 한겨레는 10건, 동아일보는 24건을 작성했다.

▲ 중앙일보는 지난달 24일 상위 5개 기사 중 3개가 전청조 기사였다.

성전환, 성관계, 사기전과 등 자극적인 소재에 이목이 쏠렸다. 전청조 기사는 독자 유입이 가장 많은 네이버 언론사 구독 페이지 메인에 걸렸고 자연스럽게 언론의 랭킹 순위권에 올랐다. 지난달 25일, 27일, 29일 네이버 기준 조선일보에서 전청조 기사가 가장 많이 읽혔다. 매일경제는 25일부터 28일까지 나흘 연속 전청조 기사가 1등을 차지했고 중앙일보는 지난달 24일 상위 5개 기사 중 3개가 전청조 기사였다. 대부분의 다른 일간지·경제지도 상황이 크게 다르지 않았다.

▲ 지난달 30일 남현희씨가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그간의 과정을 털어놓았다.

1위를 기록한 기사의 제목들은 모두 사생활과 맞닿은 자극적 내용이다. 특히 남현희씨가 지난달 30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그간의 과정을 털어놓자 양상이 심해졌다. <남현희 눈물 “고환이식 수술 전청조 말 믿었다…무지해서 죄송”>(중앙일보), <남현희 “성관계 시 분명 남자… 고환 이식 주장 믿었다”>(매일경제), <남현희 “전청조, 시한부라고 거짓말… 고환 이식 수술 얘기 믿었다”>(세계일보) 등의 기사가 나왔다.

다른 사회 이슈는 어떨까. 국민연금도 중요한 현안 중 하나다. 지난달 27일 정부가 발표한 국민연금 개혁안에 특정 수치가 담기지 않아 '맹탕'이라는 비판을 받자 윤석열 대통령이 정면 반박하기도 했다. 하지만 기사 수는 전청조 기사 절반에 불과하다. 네이버 기준, 지난달 23일부터 2일까지 '국민연금'을 키워드로 한 기사는 약 2300개였다. 54개 매체를 대상으로 한 '빅카인즈'에선 620건의 기사가 나왔다.

김언경 뭉클 미디어인권연구소 소장은 미디어오늘과 통화에서 “한국 사회 단면을 보여주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트래픽을 위해 언론은 (가십성) 기사를 양산하고 시민들은 그걸 클릭할 수밖에 없는 악순환”이라며 “정작 관심 가져야 할 사회 문제로부턴 멀어진다. 방송보다 포털, 유튜브 등 모바일로 접할 수 있는 매체에서 심각한 느낌”이라고 말했다.

▲ 지난달 30일 채널A에 출연한 전청조. 채널A 유튜브 갈무리.

언론 입장에서 남현희씨와 전청조씨는 매력적인 소재다. 이야기가 진실공방처럼 흘러가면서 양측이 스스로 자극적인 소재를 던진다. 이런 상황에서도 '무엇을', '어떻게' 보도할지 언론이 저널리즘적 고민을 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김언경 소장은 “사건의 발단인 여성조선 인터뷰부터 기사들이 양쪽이 하는 말들을 그대로 전하고 있다. 유튜버의 말까지 그대로 인용되는 상황”이라며 “기자가 할 수 있는 건 객관적으로 검증해보려는 노력이다. 하지만 기자의 고민이 들어간 기사가 거의 없다. 수많은 기사를 보면서 해당 기자는 어떤 생각을 하면서 기사를 썼을지 전혀 알 수 없었다. 정말 묻고 싶은 지점”이라고 말했다.

김 소장은 “임신테스트기나 성관계 등 자극적인 소재를 본인이 먼저 드러냈기 때문에 고민 없이 받아쓰기 쉽다. 개인 입장에선 불안정한 상태에서 사생활처럼 불필요하게 과도한 정보를 노출할 수 있지만 그걸 그대로 쓰는 게 적절한 태도인지 고민해볼 필요가 있다”며 “이전 미투 국면에서도 많은 여성들이 본인이 성폭행 당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과도한 정보를 노출했다. 성폭력 보도 가이드라인에선 그런 부분들을 어떻게 보도할 것인지 기자가 판단해야 한다고 명시한다”고 말했다.

신문윤리실천요강 3조 4항에 따르면, 성범죄, 폭력 등 기타 위법적이거나 비윤리적 행위를 보도할 때 음란하거나 잔인한 내용을 포함하는 등 선정적으로 보도해서는 안 되며 또한 저속하게 표현해서는 안 된다. 인터넷신문윤리강령 역시 2조 언론의 책임에서 '인터넷신문은 사회의 공적기구로서 보도의 사실성, 정확성, 균형성을 추구하고 선정보도를 지양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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