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IEW POINT] '시장發 긴축'에 무릎 꿇은 연준 … 美장기금리가 통화정책 바꿔
2일 새벽(한국시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기준금리를 동결한 날 미국 10년물 국채금리는 0.2%포인트나 급락했다. 결과만 보면 연준의 금리 동결이 시장금리 하락을 이끈 것처럼 보인다. 연준이 단기금리를 정하고, 단기금리가 장기금리를 이끄는 것이 전통적인 통화정책 경로다. 하지만 이날 상황은 반대로 진행됐다. 연준의 기준금리 결정이 발표되기 전부터 미국 국채금리가 급락했다. 미국 재무부가 장기 국채 발행 물량을 줄이겠다고 발표한 것이 금리 하락의 도화선이 됐다. 국채 발행 물량을 줄이면 시장에서 국채 공급이 줄어들고, 이는 국채 가격 상승(금리 하락)으로 이어진다. 역설적이지만 시장은 이날 연준 통화정책에는 관심이 없었다. 99% 참여자가 '동결'을 예상했다. 반면 시장은 '국채 수요와 공급'에 훨씬 더 민감하게 반응했다. "중앙은행에 맞서지 말라"는 격언이 무색할 만큼 연준 영향력이 시장에서 소외된 순간이었다. 이런 모습은 향후 금융시장 움직임과 관련해 몇 가지 시사점을 던진다.
먼저 연준이 기준금리를 선제적으로 올리기 어려워졌다. 통화정책 경로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연준은 기준금리를 7월 말부터 현재까지 석 달간 연 5.25~5.5%를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같은 기간 미국 국채금리는 연 3.9%에서 5%가 넘는 수준까지 급등했다. 2일 연 4.7%대로 하락했지만 여전히 7월보다는 0.76%포인트나 높다. 시장이 연준 금리정책과 무관하게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면이다.
연준은 장기금리가 급등하는 상황에서 기준금리를 올려 금리 상승을 부추길 수 없고, 기준금리를 내려 시장 흐름에 역행할 수도 없는 딜레마에 부딪혔다. 이 점이 연준이 금리를 동결한 가장 큰 이유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이날 "장기채금리 상승에 주의를 기울이고 있다"며 "(금리 상승은) 지난여름 이후 금융 여건을 긴축하는 데 기여해왔다"고 말했다. 연준이 움직이지 않아도 시장금리가 올라 긴축 효과를 거두는데 굳이 나설 필요가 없다는 얘기다. 그렇다고 앞으로도 연준이 손놓고 있을 수는 없다. 연준은 장기금리 움직임을 살펴보고 단기금리를 조절하는 방식으로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통화정책 경로가 장기금리 움직임이 단기금리에 영향을 미치는 방식으로 역전된 것이다. 장기금리가 여전히 높은 수준에서는 연준의 선제적 긴축정책이 사실상 종결됐다고 보는 이유다.
미국 시장금리 전망은 연준의 정책금리 전망보다 훨씬 복잡하다. 경제뿐만 아니라 정치와 지정학적 요인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우선 미국 경기 흐름은 탄탄하다. 실업률은 3%대로 고용 역시 호조세다. 이럴 땐 시장금리가 내려가기 어렵다. 다만 4분기 이후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는 갈수록 커지고 있다. 경기 침체가 가시화하면 미국 시장금리는 하락세로 반전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장기금리의 하락 추세를 확인하면 연준은 금리 인하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이르면 내년 상반기, 늦어도 내년 중에는 발생할 일이다.
경기보다 예측하기 어려운 변수는 자금 시장의 수요와 공급이다. 미국 재무부에 따르면 중국, 일본, 영국 등 주요국의 미국 국채 보유량은 2023년 8월 기준 3조7395억달러로 1년 전(3조8769억달러)보다 1374억달러 줄었다. 반면 미국 국가부채가 급증하면서 이를 메우기 위한 국채 발행 물량은 늘 것으로 예상된다. 우크라이나와 이스라엘 전쟁 지원용 국채 발행까지 더해지면 국채 공급은 더 늘어난다. 정치적 요인도 변수다. 국제사회에서 미국 리더십이 약해질수록 미국 국채는 애물단지로 전락할 가능성이 크다. 내년 미국 대통령선거 결과에 따라 큰 폭의 정책 변화도 예상된다. 그만큼 예측이 어렵고 각종 돌발 변수에 금리가 출렁일 수 있다.
미국 금리는 미국만의 일이 아니다. 미국 국채에 연동돼 주식은 물론이고 금, 비트코인, 원자재 등 수많은 자산 가격이 출렁이고 각국 금리도 큰 영향을 받는다. 지난 7월 이후 미국 국채금리가 급등하는 동안 독일, 영국 등 유럽뿐만 아니라 한국, 일본 등 아시아 국가 국채금리도 동반 상승했다. 시장금리를 통제해온 일본은 급기야 국채금리 상승을 용인하는 정책을 내놨다. 한국도 올해 기준금리는 계속 동결했지만 10년물 국채금리는 최근 6개월간 0.9%포인트가량 올랐다. 미국 시장금리 움직임이 세계 각국 통화정책을 무력화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에서 불어닥치는 '시장발 긴축' 충격은 신흥국일수록 더 크다. 아르헨티나는 기준금리를 연 133%까지 끌어올려 미국발 긴축 충격을 막으려 안간힘을 쓰고 있다. 튀르키예도 기준금리를 연 35%까지 끌어올렸다. 한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노영우 국제경제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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