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춘추] 돈쭐의 미학
한 피자 가게에서 생활고를 겪는 고객에게 무료로 피자를 제공한 사건이 우연히 언론에 알려지자, 다음 날 피자 주문이 폭발적으로 늘어났던 일이 있었다. 미담에 감동한 네티즌들이 뜻을 모아 선한 행동을 보여준 사장님께 '돈쭐(돈+혼쭐)'을 내준 셈이다. 보상을 기대하고 선행을 베푼 것은 아니었겠지만, 결과적으로 사장님께 큰 보상이 되었다. 소식을 전해 들은 우리 모두의 기분까지 유쾌해지는 경험이었다. 돈쭐의 미학이다.
자영업이 어렵다. 오랜 경기 침체에 금리마저 치솟았다. 원·부자재 가격과 임대료도 가파르게 올랐다. 자영업이 인건비 장사라는데 월말에 정산해 보면 내 몸값은 마이너스이다. 경직된 노동시장에서 재취업의 기회가 제한된 50대 치킨집 사장님에게는 가계의 위기이고, 경제 전체에서 자영업의 비율이 유독 높은 우리나라의 국가적 위기다. 위기 상황에서 미덕을 베푸는 것은 사치이다. 사장님의 선의만으로는 미담이 계속될 수 없다. 그래서 돈쭐은 미담의 동력이 된다.
ESG라는 미담을 고민하는 기업들에도 돈쭐의 미학이 절실하다. 코로나19 이후 ESG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였으나, 기업들에 ESG는 여전히 조준이 어려운 움직이는 과녁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고금리와 불황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우면서, ESG에 대한 회의론이 슬슬 고개를 들고 있다. 전 세계가 기후위기는 물론, 생물다양성, 노동, 인권의 문제까지 지속가능 사회의 전망을 뜨겁게 논의하는 중인데도, 우리는 2025년으로 예정했던 지속가능성 정보공시 의무화를 2026년 이후로 연기하면서 속도 조절에 들어갔다. ESG로 들끓었던 몇 년간의 열기가 무색할 만큼 사회적 동력이 약해지고 있는 것이다.
동력의 상실은 ESG 활동이 재무적 성과를 창출하지 못하는 한 필연적인 전개다. 수익 창출을 목적으로 하는 영리기업에서, 재무적 성과를 견인하지 못하는 활동의 우선순위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귀결이다. 기업 탓만 할 수는 없다. 시장이 무심했다. ESG에 더 관심을 갖고, 더 요구하고, 더 잘하라고 돈쭐을 내주며 격려했어야 했다. 제품과 서비스 시장에서 소비자들이 열광하고, 노동시장에서 직원들이 열광하며, 자본시장에서 투자자들이 열광해야 비로소 기업이 ESG 활동에 자원을 쓸 수 있다. ESG 우수 기업에서 매출액이 증가하고 생산성이 제고되며 자본 조달이 용이해지는 유쾌한 돈쭐의 미학이 확산되어야 한다. 지속가능 사회의 전망에서 기업의 역할이 필수적이라고 믿는다면 시장이 ESG를 체계적으로 측정, 평가하고 적극적으로 자원 배분에 이용해야 한다. 탄소 규제를 준수하는 정도에 힘이 부쳐서 ESG를 얄팍하게 소비하면 지속가능 사회의 전망을 크게 확장하기 어렵다. 사회적 가치를 보다 적극적으로 창조해내는 기업들에 크게 돈쭐을 내주어야 한다. 그래야 기업이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동시에 창출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상상할 수 있게 된다.
돈쭐의 미학은 여기에 그치지 않는다. 돈쭐은 일차적으로 선한 가게에 대한 금전적 보상이지만, 이를 통하여 미담이 지속되고 확산되기를 바라는 공동체적 의지이기도 하다. 미담으로 가득 찬 세계를 집단적으로 상상하는 것은 그 자체로 희열이 있다. 시장은 미담에 함께 열광함으로써 사회의 전망을 세운다. 공감하고 연대하는 사회는 지속가능하다.
[이우종 서울대학교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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