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아나 매각 큰산 넘었지만, 이래서 합병 취지 살리겠나 [사설]

2023. 11. 2. 1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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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을 끌어온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합병이 큰 산을 넘었다. 아시아나항공은 2일 이사회를 열고 진통 끝에 '화물 사업 매각'을 골자로 한 '대한항공의 시정조치안'을 가결했다. 대한항공이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에 제출할 이 시정조치안에는 유럽 4개 노선(파리·프랑크푸르트·로마·바르셀로나)을 국내 저비용항공사에 양도하는 방안도 포함돼 있다. 이사회 결정으로 가장 깐깐한 EC의 장애물을 넘은 만큼 지지부진했던 두 항공사의 합병에 속도가 붙을 것으로 보인다. 아시아나항공에 3조6000억원을 투입한 KDB산업은행 등 채권단도 한숨을 돌리게 됐다. 하지만 아직 불확실성이 여전하고 갈 길도 멀다. EC의 최종 승인을 얻기 위해 화물사업 매각을 성사시켜야 하는 데다 미국과 일본 경쟁당국의 심사도 남아 있다. 양국이 더 무리한 요구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시아나항공 노조의 반발을 잠재워야 하는 것도 숙제다.

무엇보다도 걱정스러운 것은 합병 과정에서 해외 경쟁당국의 승인을 따내기 위해 알짜 사업을 매각하고 노선·슬롯(이착륙 권리) 반납에 나서면서 '글로벌 메가 항공사' 탄생이라는 합병 취지가 퇴색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미 영국 경쟁당국 요청에 따라 아시아나가 보유한 런던 히스로 공항의 7개 슬롯을 영국 버진애틀랜틱에 넘겼고, 중국에서도 46개 슬롯을 반납하기로 하는 등 출혈이 컸다. 양사의 글로벌 네트워크 결합을 통해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을 높이는 것이 목표였지만 '차'와 '포'를 다 떼면 합병 시너지가 사라지고 경쟁력이 되레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게다가 양사 합병 추진 이후 항공권을 구하기 어렵고, 마일리지 서비스가 불편해졌다는 지적도 나온다. 대한항공은 통합이 이뤄져도 가격 인상이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경쟁이 사라진 상황에서 약속이 지켜질지는 미지수다. 이런 우려를 불식하려면 합병 당사자뿐 아니라 KDB산업은행, 합병을 승인해준 공정거래위원회 등이 머리를 맞대고 합병 작업에 속도를 내야 한다. 그렇지 못하면 국내 항공산업 경쟁력은 뒷걸음질 치고, 국민이 기대했던 메가 항공사의 수준 높은 서비스도 물 건너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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