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시장 넓혀 위기를 기회로”[2023 코라시아포럼]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는 투자가의 교훈은 외교와 경제 관계에도 적용된다. 외교 다변화, 경제 다변화다.”
서정인 전 주아세안 대사
최근 우리 수출이 깊은 부진의 늪에서 빠져나오려 하고 있지만, 대외 여건은 녹록지 않다. ‘탈동조화(디커플링)’에서 '탈위험화(디리스킹)’로 간판만 바뀌었을 뿐 미국과 중국 간 갈등은 여전히 깊다. 이스라엘・하마스 전쟁 발발로 중동 내 긴장이 고조되면서, 최악으로 번질 땐 국제유가가 배럴당 157달러까지 치솟을 수 있다는 세계은행(WB) 경고까지 나왔다.
2일 한국일보가 개최한 ‘2023 코라시아포럼’에 참석한 전문가들도 대외 불확실성이 한국 경제와 주력 산업에 미칠 부정적 파급 효과를 우려하며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미중 갈등은 단기간 내 해소되기 어려운 ‘상수’로 자리 잡은 만큼, 인도와 중동, 아세안 시장으로 눈을 돌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는 지혜를 발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이날 패널 토론은 허윤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의 사회로 서정인 전 주아세안 대사와 김정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 인도남아시아팀장, 김수완 한국외대 중동이슬람전략모듈 교수가 머리를 맞댔다.
"전략적 가치 커진 인도, G3 반열 오를 것"
먼저 인도 시장에 대해 김정곤 팀장은 △세계 최대의 인구 △높은 성장률 △젊은 인구 △정부의 일관된 시장친화적 정책으로 볼 때 2030년 이전 미국과 중국에 이어 ‘G3’ 반열에 오를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럼에도 중국을 추월하기는 힘들다고 지적했다. 국내총생산과 무역 규모 등에서 양국 격차가 크기 때문이다. 인도가 중국을 대체할 순 없지만, 중국에 이은 또 하나의 중요한 시장이자 생산기지로 부상할 것이란 게 김 팀장의 분석이다.
격화하는 미중 갈등은 인도의 전략적 가치를 한층 끌어올렸다. “주요국이 인도에서 반도체 관련 투자와 기술 협력을 늘리는 건 명백히 중국을 의식한 움직임”이라는 것이다. 경제의 상당 부분을 중국에 의존해왔던 인도가 디지털, 첨단 분야에서 부쩍 중국과 거리를 두는 건 우리 기업에 더할 나위 없는 기회라고 짚었다. 김 팀장은 “한국과 인도의 무역은 두 나라의 잠재력 대비 부족한 편”이라며 “기업에만 맡겨둘 게 아니라 정부 차원에서 인도의 정책 기조를 유심히 보며 집중적으로 지원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중동 협력 활발... 유가 변동이 변수"
중동 전문가인 김수완 교수는 가장 주목해야 할 시장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를 꼽았다. 그러면서 지난달 한국-UAE 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CEPA)이 타결되고, 윤석열 대통령의 사우디 국빈 방문을 계기로 양국 관계가 미래지향적 전략 동반자 관계로 격상되는 등 협력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고 평가했다. K팝 등 한류 콘텐츠 수요 역시 성장세고, 안보 불안이 발생할 때마다 국산 무기 수출이 느는 등 최대 방산시장으로도 자리매김했다고 김 교수는 덧붙였다.
변수는 ‘유가’다. 김 교수는 “아랍 산유국에서 투자 유치와 합작, 무역을 결정하는 주체는 재정을 담당하는 공공부문인데, 이 재정의 상당 부분을 유가가 좌우한다”며 “팬데믹 이후 유가가 하락했을 때 각종 프로젝트가 연기 또는 취소됐던 전적이 있는 만큼 유가 변동을 민감하게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란이나 미국의 개입으로 번지지 않는 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우리나라 경제에 미치는 영향은 제한적일 것으로 봤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산유국이 아닌 데다,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크지 않다는 점에서다.
"효자시장 아세안, '베트남+알파' 찾아야"
서정인 전 대사는 아세안 국가야말로 한국에 없어서는 안 될 ‘효자 시장’이라고 강조했다. 지난해 기준 교역 규모가 2,000억 달러에 달하는 2위 교역국이자, 흑자 규모로는 1위라면서다. 특히 중국 일변도의 경제 리스크를 보완하는 다변화 대상 국가로 중요성이 높다고 했다. 서 전 대사는 “아세안은 그간 중국과 동반 성장해 왔지만, 최근 의문을 품고 새 파트너를 찾고 있다”며 “한국과 아세안 분업 구조가 만들어지면 새로운 성장 동력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현재는 아세안의 다양성을 감안한 양자, 소다자 및 지역 정책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우리나라의 대아세안 투자 중 40% 이상이 베트남에 집중됐는데, ‘플러스 알파’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수출품도 기존 자본재(설비)와 중간재(부품 및 원자재) 위주에서 소비재, 디지털 서비스 등으로 넓혀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서 전 대사는 “숲과 나무, 군락을 보는 입체적 전략으로 가도록 정부와 민・관・학계가 총체적으로 지혜를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강유빈 기자 yubin@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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