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히 떠난 ‘비운의 2인자’…리커창 전 중국 총리 영면

이종섭 기자 2023. 11. 2. 17: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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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때 시진핑 주석의 가장 큰 라이벌
시 주석 장기집권으로 2인자에 만족
“창장과 황허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
지난해 소신 발언 온라인상에서 회자
리커창 전 중국 국무원 총리가 화장된 2일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조기가 게양돼 있다. 신화연합뉴스

중국 수도 베이징의 심장부 톈안먼(天安門) 광장에 2일 조기가 내걸렸다. 리커창(李克强) 전 중국 국무원 총리의 마지막 가는 길에 애도를 표하는 의미였다.

지난달 27일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리 전 총리가 이날 베이징 바바오산(八寶山) 혁명공원 묘지에서 화장돼 영면에 들어갔다. 이날 톈안먼 광장과 인민대회당, 외교부 등 베이징 시내 주요 거점 뿐 아니라 각 성·시·자치구 당 위원회와 정부 소재지, 홍콩·마카오와 재외공관 등에서도 조기를 내걸고 리 전 총리의 마지막 길을 추모했다. 불과 7개월여 전까지 중국 내 서열 2위로 최고 지도부에 속했던 전직 총리의 마지막 가는 길이지만 리 전 총리의 장례절차는 조용하고 간소하게 치러졌다. 관례에 따라 2019년 사망한 리펑(李鵬) 전 총리 때와 비슷한 수준의 예우를 한 것으로 보인다.

이날 리 전 총리의 시신이 화장되기에 앞서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을 비롯한 7인의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등 주요 지도부는 바바오산 혁명공원 묘지를 찾아 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신화통신은 시 주석이 이날 오전 9시쯤 리창(李强) 총리 등 다른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과 함께 리 전 총리 시신 앞에서 묵념하고 세 번의 절을 올려 예를 갖춘 뒤 유족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위로를 전했다고 보도했다. 리 전 총리의 ‘정치적 스승’으로 불리는 후진타오(胡錦濤) 전 국가주석은 화환을 보내 애도했다고 신화통신은 전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2일 베이징 바바오산 혁명공원 묘지를 찾아 고 리커창 전 국무원 총리의 유족을 위로하고 있다. 신화연합뉴스

시 주석 집권 1∼2기 10년 동안 국무원 총리를 지내고 지난 3월 물러난 리 전 총리는 후 전 주석이 이끌었던 중국 공산당 내 주요 계파인 공산주의청년단 출신으로, 한때 ‘리틀 후진타오’로 불리며 시 주석의 가장 강력한 라이벌 중 한 명으로 인식됐었다. 그러나 결국 시 주석이 권력을 잡고 장기집권의 길로 들어서면서 2인자 자리에 만족해야 했다. 2013년 시진핑 국가주석·리커창 총리 체제가 처음 출범할 당시만해도 중국 지도부 내 손꼽히는 경제통인 그가 중국 경제를 총괄하며 실세 총리가 될 수 있을 거란 기대가 있었지만 시 주석의 1인 권력 강화로 뜻을 펴지 못한 ‘비운의 2인자’가 됐다는 평가가 많았다.

그의 사후 중국 인민들은 합리적이고 개혁적인 경제 전문가로 평가받았던 리 전 총리의 생전 모습을 회고하며 뜨거운 애도와 추모 열기를 보여줬다. 리 전 총리 부고가 전해진 직후 그의 고향인 안후이(安徽)성 허페이(合肥), 성장과 당 서기로 근무했던 허난(河南)성 정저우(鄭州)와 랴오닝(遼寧)성 선양(沈陽) 등의 거리에는 조화가 산더미처럼 쌓이고 추모객들의 발길이 줄을 이었다. 온라인 상에서도 “인민의 좋은 총리, 인민은 영원히 당신을 기억할 것입니다” “왜 위대한 사람이 일찍 가는가”라고 그의 죽음을 안타까워 하는 글들이 올라오며 추모 열기가 일었다.

중국 당국은 온라인을 검열하고 거리에는 질서 유지를 명분으로 파란 조끼를 입은 현장 요원들을 배치해 조화에 담긴 불편한 문구들을 제거하며 추모 열기를 억누르려 애썼다. 1989년 학생 시위에 미온적으로 대처하다 실각한 후야오방(胡耀邦) 전 공산당 총서기의 갑작스런 죽음이 톈안먼(天安門) 민주화 시위의 도화선이 됐던 것과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것을 염려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리 전 총리는 한 줌의 재가 돼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행적은 중국 인민들에게 오래 기억될 것으로 보인다. 그는 총리 재임 기간 시 주석에 집중된 권력 때문에 예상만큼 큰 존재감을 발휘하지는 못했지만 이따금 소신 있는 발언을 통해 인민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줬다. 시 주석이 임기 중 ‘샤오캉(小康·모두가 편안하고 풍족한 생활을 누림) 사회’ 달성을 성과로 내세우는 상황에서 “6억명은 월수입이 겨우 1000위안(약 18만원) 밖에 안 되고, 그걸로는 집세를 내기조차 힘들다”며 빈곤과 불평등 문제를 지적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2020년 11월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를 통해 발표한 글을 통해서도 “발전의 근본 목적은 민생 복지를 증진하는 데 있다”며 “인민대중이 교육과 의료, 주택, 소득 분배 등 방면에서 느끼는 불만은 여전히 많다”고 민생을 강조했다. 지난해 리 전 총리가 흔들림 없는 개혁·개방을 강조하며 “창장(長江·양쯔강)과 황허(黃河)는 거꾸로 흐를 수 없다”고한 발언도 그의 사후 온라인상에서 회자되고 있다. 외신들은 그에 대해 시진핑 체제 하에서 충성파가 아니었던 유일한 최고 관료였다는 등의 평가를 내놨다.

베이징 | 이종섭 특파원 noma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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