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 만에 1심 판결...상도유치원 붕괴, 수사·재판 왜 이렇게 오래 걸렸나
주임검사 이동·재배당 등 문제로 처리 늦어져
일부 피고인 건강 위독...회사는 휘청
“유죄가 나왔나요? 애 키우는 데 바빠서...”
2018년 9월 6일 발생한 서울 동작구 상도유치원 붕괴사고의 1심 판결이 5년 만인 지난 10월 30일 나왔다. 피고인 11명에게 전원 유죄가 선고됐다. 당시 유치원에 자녀를 보냈던 이모씨는 사고를 잊고 살았다고 했다. 7살이었던 이씨의 아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됐다. 붕괴 후 경찰, 검찰, 법원까지 가는 동안 너무 오랜 시간이 흘러서다.
법조계에서는 경찰이 기소의견으로 송치한 2019년 1월로부터 거의 3년이 지난 2021년 11월 30일에야 검찰이 기소한 것을 두고 인명 피해가 발생한 다른 사건과 비교해도 지나치게 지연됐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검찰은 대형 참사에 준하는 사건은 붕괴 원인을 따지는 데 오랜 시간이 소요되고 혐의 다툼도 있어 길어졌다는 입장이다. 여기에 주임검사가 바뀌고 처리 우선 순위에서 밀리는 등 수사 이외의 요인도 영향을 줬다.
수사와 재판이 장기화되면서 일부 피고인은 건강이 매우 위독해져 재판을 연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됐고, 일부 건설회사는 문을 닫을 지경에 이른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을 대리한 변호인은 “수사기관의 압수수색과 소환 등으로 회사를 제대로 운영할 수 없었다”고 말했다.
◇ 주임검사 2번 바뀌고 다른 사건에 중요도 밀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위치한 상도유치원은 4층 규모였고, 원아는 120여명이었다. 당시 유치원 인근에선 사고 5개월여 전부터 다세대주택 공사가 이어졌다. 이 공사장 흙막이가 무너지며 유치원 2개 동 가운데 하나가 10도 이상 기울어졌다. 다만 밤 11시 23분쯤 발생하면서 다행히 인명 피해는 없었다.
경찰은 동작구청 공무원과 다세대주택 공사 관계자들 총 60여명과 시공사 등 8개 업체를 압수수색하는 등 수사에 나섰다. 4개월여 만인 2019년 1월 흙막이 공사를 진행한 업체들의 총체적인 안전관리 부실이라고 판단했다. 이에 A시공사 대표 B씨 등 11명을 건축법, 산업안전보건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서울중앙지검 형사8부가 수사에 착수했지만 검찰의 중간간부 인사가 세 차례나 진행되면서 부장검사가 3번 바뀌고 주임검사도 두 차례 이상 바뀌었던 것으로 나타났다. 2020년 중순 이 사건의 주임검사였던 C씨가 사직했고, 사건을 재배당받은 다른 주임검사에게 배당됐다. 이 검사도 몇 달 뒤 인사 이동 했다.
주임검사들은 기소하기까지 전체 수사기록을 검토하며 기소 대상을 구분하고, 어떤 법리를 적용해야 할지 검토한다. 처음부터 사건을 수사한 검사가 가장 이해도가 높다. 하지만 재배당되면 기존 사건들에 더해 또 모르던 사건이 추가되는 것이므로 검토 자체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 당시 담당 부서의 부장검사였던 D씨는 “재배당되면 제로베이스에서 사건을 다시 검토하기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그 사이 인명 피해가 생긴 다른 붕괴 사고에 대한 수사도 진행되면서 중요 순위에서 밀리기도 했다. 당시 형사8부에는 서울 서초구에서 신혼부부 등 6명의 사상자를 낸 서울 서초구 잠원동 철거 건물 붕괴 사고도 있었다. 상도유치원 사건과 주임검사가 달랐지만, 인명 피해가 있었던 사건인 만큼 중요도가 높았다. 잠원동 사고는 2019년 7월 4일 오후 서초구 잠원동 지하 1층·지상 5층짜리 건물이 철거 도중 붕괴하며 발생한 사건이다.
전국 형사사건을 관할하는 대검찰청 형사과에서도 상도유치원 사건이 다른 인명 피해가 발생한 사건으로 인해 우선순위에서 밀렸던 것으로 전해졌다. 검찰에서는 중요 사건일 경우 처리 여부를 대검에 보고한다. 다만 상도유치원 사건은 기소됐다는 내용의 보고만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 피고인, 건강 위독해지고 회사는 휘청
검찰은 잠원동 붕괴 사고의 경우 철거업체 대표 등 4명을 사고 발생 3개월여 만인 2019년 10월 재판에 넘겼다. 담당 공무원 등에 대해서는 2년여 수사한 끝에 불기소 처분하며 마무리됐다. 한 변호사는 “광주 학동 사건도 현장소장과 브로커까지 재판에 넘기는데 1년도 안 걸렸다”며 “이 사건(상도유치원 붕괴)은 인명 피해도 없었던 사건”이라고 말했다.
상도유치원의 경우 개인의 과실이 아닌, 여러 사람의 과실이 한데 묶이면서 사고가 발생하며 수사가 어려웠다는 분석도 있다. 차장검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대형 참사에 준하는 사건은 쉽게 규명하기 어렵다”며 “사상자 여부에 상관 없이 붕괴 원인을 구조적으로 따져야 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어 “안전 기관의 진단을 복수로 받아야 하는데, 그 진단에서도 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는다”며 “그 결과를 기다리고, 자체 수사 결과를 놓고 또 검토해야 하는 여러 절차들이 있다”고 설명했다.
기소 후 1심이 끝나기까지도 2년10개월이 걸렸는데 총 피고인 11명 중 9명이 혐의를 부인한 영향이다. 공판은 선고까지 총 10차례 진행됐으며 증인 신문도 4차례나 이뤄졌다. 혐의를 인정한 현장 책임자 E씨를 대리한 박상옥 변호사는 “(다세대주택 공사 관련) 당시 계약서대로 공사했다”면서도 “다만 여러 측면을 고려해 수사 단계부터 혐의를 인정하고 양형으로만 다투기로 했다”고 설명했다.
수사와 재판이 오랜 시간 이어지면서 E씨의 건강 상태는 매우 위독해진 것으로 전해졌다. 3년에 걸쳐 검찰 수사를 받으면서 수차례 조사, 압수수색에 응하는 과정에서 체력적, 심리적으로 적지 않은 타격을 받았다고 한다. E씨가 몸담고 있는 회사의 경영 상황 역시 악화된 것으로 알려졌다. 수사가 장기화 되면서 피고인들 사이에서 “못 버티겠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였다고 한다.
지난달 30일 피고인 11명에게 전원 유죄가 선고됐다. 현장 감리단장이던 F씨만 유일하게 징역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았다. F씨는 수사 단계부터 재판까지 혐의를 계속 부인해온 바 있다. 그 외 다른 다세대주택 공사 하도급 업체 대표가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 최초 공사를 수주한 시공사 등의 각 임직원들 7명은 500만원~2000만원의 벌금형을 받았다. 수사부터 재판까지 모두 혐의를 인정한 B사는 벌금 2000만원을 선고받았고, E씨의 경우, 현재 위독한 건강상태로 인해 본 재판에서 분리되면서 오는 20일 그의 선고기일이 열릴 예정이다.
재판부는 “동작구청에 신고하거나 재차 심의를 거쳐야 함에도 불구하고 자의적으로 판단해 공사를 강행했다”며 “그 결과 상도 유치원이 붕괴되는 등 큰 인명피해를 초래할 뻔했다”고 판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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