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날 때마다 마을이 줄어…” 이웃의 죽음 틈새로 겨울이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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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날 때마다 마을이 줄어들어."
지난 31일 저녁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 비닐하우스촌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 잿더미가 된 곳을 둘러보며 주민 권옥녀(59)씨가 한숨 쉬듯 말했다.
10년 전 100가구였던 마을도 현재는 50여가구로 줄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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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주택’ 거주자 정부 지원 없어…화재 그대로 노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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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이 날 때마다 마을이 줄어들어….”
지난 31일 저녁 서울 서초구 방배동 남태령 전원마을 비닐하우스촌에서 화재가 발생한 이튿날, 잿더미가 된 곳을 둘러보며 주민 권옥녀(59)씨가 한숨 쉬듯 말했다. 그날 저녁 화재로 3가구가 불에 타면서 그중 한 비닐하우스에 홀로 살던 임아무개(80)씨가 숨졌다. 권씨는 “이곳도 (불이 나기 전까지) 원래는 집이 있던 자리”라며 빈터를 가리켰다. 10년 전 100가구였던 마을도 현재는 50여가구로 줄었다고 했다.
불이 난 사실을 파악한 주민들이 부랴부랴 소화기를 들고 다가갔지만, 이미 걷잡을 수 없이 커진 뒤라 별 소용이 없었다. 집안에 있던 임씨가 숨진 사실도 소방당국이 사고 현장을 수습한 뒤에나 알 수 있었을 정도로 집이 모두 거멓게 그을렸다. 웬만한 가구는 형체를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내려앉았고, 도자기라 타지 않은 양변기는 그곳이 화장실이었다는 점을 드러냈다. 소방당국과 경찰은 정확한 화재 원인을 파악 중이다. 집안에선 난로가 발견되기도 했다.
“불이 났을 때는 정신 없어서 몰랐어. 소방이 들것을 가지고 가더라고. 그때 (죽은 줄) 알았지.” 주민 안성만(61)씨는 착잡한 마음에 담배를 입에 물었다. 다급한 상황을 보여주듯 그가 보여준 휴대전화 통화 목록엔 114(119로 착각)가 두번 찍혀 있었다.
남태령 호화 전원주택 마을 인근에 1980년대부터 조성된 이 마을은 서울 강남에 남은 몇 안 되는 판자촌 중 하나다. 대표적으로 강남 구룡마을, 송파 화훼마을 정도가 남아 있다. 그중에서도 전원마을 판자촌은 우물에서 쇳가루가 떠다니는 물을 길어 마시다가 2014년에 비로소 수도가 생겼다. 그러나 배수로가 확보되지 않아 주민들은 장마철엔 침수를 걱정하고, 건조한 가을철이 오면 화재를 겁낸다. 이날도 마을엔 타버린 연탄이 곳곳에 있었고, 사용한지 알 수 없는 가스통이 방치돼 있었다.
주민들은 고인인 임씨가 10여년 전 몸이 아프면서 그간 해오던 경비 일을 그만두고 마을에서 조용히 지내왔다고 했다. 이틀에 한번은 인근 병원으로 혈액투석을 다녔는데, 아픈 몸에도 병원에 갈 때면 정장 차림으로 깔끔하게 다녀왔다고 한다. 가족과는 교류가 없었는지, 예전 직장에서 만난 지인 외에는 늘 혼자 지냈다고 했다.
“여기 온 사람 중엔 사연 없는 사람이 없죠. 실패도 하고, 가족도 잃고. 돈도 없고. 그래도 다들 정은 많아요. 임씨 아저씨도 그랬죠.” 권씨는 말했다. 이웃이던 임씨와 가깝게 지냈던 박용수(78)씨는 임씨가 쉴 때 자주 앉았던 벤치를 물끄러미 쳐다봤다. 경찰은 임씨 부검을 마친 뒤 유가족과 장례 절차를 논의할 예정이다.
주민들은 안타까워할 틈도 없이 또 다른 걱정이 시작됐다. 애써 잊고 있던 곳곳의 화재 취약한 부분들이 눈에 들어왔기 때문이다. 주민 김영단(72)씨는 “엉킨 전선에선 가끔 스파크가 튄다. 구청도 관심은 없는 것 같다”며 “이제 겨울을 나면서 불도 때워야 하는데 걱정이다. 잠이나 제대로 잘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했다.
화재에 취약한 판잣집과 비닐하우스에 사는 ‘비주택’ 거주자만 전국에 1만5940명(2022년 기준 통계청 주택총조사)이지만,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임대주택 이전 등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움직임은 없다. 서초구청 관계자는 이날 “이달 중 서초소방서와 합동으로 화재감지기, 전기누전차단기 등 안전장치를 점검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곽진산 기자 kjs@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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