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진영과 방시혁은 왜 K팝의 위기를 말했을까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지난달 23일 미니 11집 'SEVENTEENTH HEAVEN'을 발매한 그룹 세븐틴은 초동판매량 509만 1887장을 기록하며 K팝 역사상 최초의 '초동 500만 장'을 기록했다. 대한민국 가수 초동 판매량 기록을 갈아치운 건 당연하다. 종전 기록은 지난 6월 '★★★★★ (5-STAR)'로 460만 장의 판매량을 기록한 스트레이키즈가 가지고 있었다. 오는 10일 컴백을 앞둔 스트레이키즈 역시 자체 최고기록을 경신할 것으로 예상된다. 방탄소년단을 필두로 다양한 그룹이 성장하며 K-팝의 성장은 멈출 기세를 모르고 있다. 그러나 하이브와 JYP를 이끄는 방시혁 의장과 박진영 프로듀서는 'K팝의 위기'라는 화두를 던졌다. 영세한 기획사도 아니고 K-팝을 대표하는 두 소속사의 수장은 왜 K팝의 위기를 논했을까.
두 사람은 지난 1일 방송된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출연해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다. 오랜 기간 인연을 이어온 두 사람의 추억과 히트곡은 많은 이들을 향수에 젖게 했다. 이제는 명실상부 K-팝을 이끌어가는 두 사람은 방송 종료를 앞두고 'K-팝의 위기'라는 화두를 던졌다.
방시혁 의장은 "당장 망할 것처럼 말할 순 없고 실제로 그렇지도 않다. 다만 주요 시장의 지표 하락이 눈에 보인다"고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방 의장이 주목한 건 K팝 팬덤의 형태였다. K-팝이 이토록 빠른 시간내에 성장할 수 있던 건 이를 지지하는 강렬한 팬덤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가벼운 마음으로 음악을 소비하는 라이트한 팬덤의 성장은 그만큼 더뎠다. 방 의장은 "주변부에 라이트 팬덤도 많이 붙을 수 있는 구조로 가야 한다. 니치에서 시작해 흥했던 장르들이 일정 팬덤을 못 넘고 없어진 경우가 많다"고 강조했다. 박진영 프로듀서 역시 "가장 큰 고민은 근본적으로 팬덤을 넓히는 것이다"라고 동의했다.
분명히 짚어야 할 부분이다. K-팝이 전문화·산업화 되고 음원 스트리밍 시대로 넘어오며 앨범 판매량은 대중성보다는 팬덤의 규모, 소위 '화력'을 가늠하는 지표로 사용되기 시작했다. 음반을 산다는 행위가 음악을 듣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게 된 것이다. 포토카드 수집, 팬사인회 응모 등을 위해 한 사람이 수십, 수백 장의 앨범을 구매하는 모습도 흔해졌다. 반대로 단순히 음악만 감상하는 팬들에게는 굳이 앨범까지 구매할 의미가 없어졌다. 100만 명의 사람들이 한 장씩 앨범을 구매했다면 이제는 10만 명의 사람이 각자 50장을 구매하는 것이다.
이는 대중성이라는 가치와 연결된다. '누가 앨범을 몇백만 장 팔았다는데 나는 들어본 적이 없다'는 반응은 세대·성별을 가리지 않고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음악을 중심으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K-팝에서 성장은 곧 확장을 의미한다. 음방, 팬사인회를 응모하고 앨범을 수십장 씩 구매하는 열성팬은 아닐지라도 신곡이 나오면 찾아 듣고 한번쯤은 관심을 가지는 라이트 팬의 존재는 확장의 가능성을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상당히 중요하다. 어느 순간 벽에 막혀 확장하지 못한다면 산업은 정체될 것이고 이는 곧 도태를 의미한다.
음악뿐만 아니라 모든 콘텐츠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많은 콘텐츠들이 개인화·파편화 되고 알고리즘이 등장한 순간부터 더 이상 내 취향이 아니면 눈에 보이지도 않기 때문이다. 기획사 차원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손을 놓을 수도 없는 노릇이다. 방 의장과 박 대표 프로듀서는 또다시 새로운 길을 개척하며 활로를 모색하고 있다. K-팝의 시스템을 채용해 현지에서 탄생한 그룹이 현지 언어로 된 노래를 부르는 것이다.
JYP는 이미 일본에서 니지 프로젝트를 통해 걸그룹 니쥬를 데뷔시켰다. 일본에서는 니지 프로젝트의 걸그룹 버전인 '니지 프로젝트' 시즌2가 진행 중이고 미국에서는 글로벌 오디션 프로그램 A2K 프로젝트를 진행 VCHA가 프리 데뷔를 마쳤다. 하이브 역시 글로벌 오디션 드림 아카데미를 통해 걸그룹을 준비 중이다.
기회는 위기의 탈을 쓰고 온다는 말이 있다. K-팝의 위상이 날로 높아지는 시점에서 자아도취하지 않고 발전해 나갈 방향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다. 이들의 고민이 기우인지, 실제로 닥쳐올 위기에 대한 예측인지는 지금으로서는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K-팝의 중심에 있는 두 대표의 치열한 고민이 있는 이상 K-팝은 위기에도 쉽게 무너지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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