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학 교수님이 세계적 테너로···다른 세계들을 잇는 ‘인문’의 노래

허진무 기자 2023. 11. 2. 16: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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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한공연 앞둔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 인터뷰
4~18일 ‘일뤼미나시옹’ 공연…브리튼 강의도
영국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 (c)Warner Classics.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영국 테너 이언 보스트리지(59)에게는 으레 ‘노래하는 인문학자’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케임브리지대에서 철학 석사,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옥스퍼드대에서 역사학을 가르치다 성악가로 전향했다. 슈베르트를 비롯한 독일 가곡의 전문가로 유명하지만 영국 작곡가 벤저민 브리튼(1913~1976)에 대한 해석도 탁월하기로 정평이 났다. 그가 오는 4일부터 18일까지 한국의 8개 도시를 찾아 브리튼의 연가곡 ‘일뤼미나시옹’을 부른다.

보스트리지는 2일 e메일 인터뷰에서 “인간이 역사와 사회를 이해하거나, 도덕적인 존재로서 거듭나고, 미래에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 알기 위해선 인문학뿐 아니라 음악에 대한 이해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음악은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면서 인간을 초월하는 무언가가 있습니다. 인간적인 세계와 인간적이지 않은 세계를 이어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학자였을 때 한 가지 주제에 집중해 분석했던 습관과 훈련이 음악가로서의 삶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시대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작품에 도전하는 이유는 언제, 어디서, 어떤 작품을 만나든 자유롭게 노래하기 위한 것이죠.”

브리튼 작품 중에서도 세계 최정상 교향악단인 베를린 필하모닉, 로열콘세르트헤바우(RCO)와 협연한 ‘일뤼미나시옹’은 보스트리지의 장기라고 할 만하다. 프랑스 시인 아르튀르 랭보의 시에 브리튼이 곡을 붙였다. 이번 무대는 한국 클래식 앙상블의 원조라 불리는 세종솔로이스츠와 처음 협연하는 것이다. 4일 김포아트홀, 5일 세종 예술의전당, 9일 대구 비원뮤직홀, 10일 여수 예울마루, 11일 목포 남도소리울림터, 12일 광주문화예술회관, 14일 서울 예술의전당, 18일 경기 하남문화예술회관 무대에 오른다.

“브리튼은 ‘일뤼미나시옹’에서 독특한 방식으로 랭보를 조명합니다. 한편으로는 (의미를 몰라도) 소리 그 자체로 즉각 마음을 끄는 소리의 세계를 창조했어요. 브리튼의 작품에서 언어가 만들어내는 소리는 언어의 의미만큼 중요합니다. 환각적 이미지로 가득한 작품이죠. 관능적이고, 재미있으면서, 어둡기도 합니다.”

보스트리지는 “오랜 시간 많은 단체와 ‘일뤼미나시옹’을 공연했는데 연주할 때마다 해석은 다르다”라며 “목소리가 예전보다 더 어두워지고 커졌는데 음악에도 변화가 생길 것 같다”고 말했다. “성악가가 나이를 먹어가면 사람들은 새로운 해석에 대해 많이 이야기해요. 하지만 뭐가 가능한지부터 생각해야 합니다. 감정의 변화는 물론 기본적 체력 조건의 변화를 생각해야 하죠. 성악가의 악기인 몸은 계속 변하기 때문입니다.”

보스트리지는 노래뿐 아니라 인문학자의 면모도 보여준다. 9일 서울 거암아트홀에서 ‘음악, 인문학으로의 초대’라는 제목의 강의를 연다. 보스트리지는 “브리튼과 전쟁의 연관성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며 “요즘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하마스)의 전쟁을 보면서 다양한 시각으로 그 현상을 바라보려는 노력을 한다”고 말했다. “브리튼은 20세기 후반을 대표하는 위대한 작곡가죠. 20세기 전체로 따져봐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히는 작곡가라고 생각해요. 제 강연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클래식 팬일 가능성이 높아요. 클래식이 가장 깊은 인간의 사유와 감정을 다룰 수 있는 매체임을 잘 아시는 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한국 클래식 앙상블의 원조로 물리는 세종솔로이스츠.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보스트리지는 옥스퍼드대 역사학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던 1993년 29세 때 영국 위그모어홀 무대에 공식 데뷔했다. 1995년부터는 강단에서 완전히 내려와 전문 성악가의 길을 걸었다. 뒤늦게 성악을 시작했지만 특유의 청아한 음색과 지적인 해석으로 세계적 테너 반열에 올랐다. 그래미상을 2차례 받고 대영제국훈장을 수훈했다. 보스트리지는 “오페라 무대에 서는 걸 좋아하는 마음이 이 길에 들어서게 만들었다”며 “선택을 후회한 적은 없다”고 말했다. “저는 어릴 때부터 음악을 좋아했어요. 직업 음악가가 될 줄은 몰랐지만요. 저는 30세 때까지 학문의 울타리 안에 있었어요. 하지만 남은 인생 동안 무엇을 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었죠. 양쪽 분야를 기웃거리다 정신을 차리고 나서야 잃어버린 듯한 세월을 채울 수 있는 것이 노래임을 알게 됐습니다.”

보스트리지는 올해 6회를 맞은 ‘힉엣눙크! 뮤직 페스티벌’의 초청을 받아 내한한다. 2018년 서울시립교향악단의 1호 상주음악가를 지내는 등 한국과 인연이 깊다. “한국 음악가들은 오케스트라 단원이든, 앙상블 멤버든, 독주자든 무대가 원하는 가장 높은 수준을 유지하죠. 한국인의 음악적 능력은 전 세계의 음악 무대에 막대하고 긍정적인 영향을 줍니다. 세계 어디에도 한국처럼 음악에 목말라하며 열광하는 젊은이들로 가득한 청중은 없어요. 한국은 정말 아름다운 나라입니다.”

세종솔로이스츠 제공

허진무 기자 imagine@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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