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하고 ‘힙’한데···어쩐지 찜찜하네
일상적 장면 속 자조·풍자
12일까지 일민 미술관에서
이시 우드의 그림은 익숙하면서도 낯설다. 인스타그램 피드에 올라오는 사진처럼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은 일상적 사물이나 순간의 포착들, 옷·가방·신발 등 패션에 대한 관심, 이모티콘으로 사진을 장식하듯 그려넣은 그림 등은 MZ세대 특성을 반영한다. 하지만 중세 조각상, 고풍스러운 느낌을 풍기는 빈티지 물건들, 음울하고 기괴한 듯 비현실적인 분위기는 우드의 그림에 쉽게 다가가는 것을 막아선다.
1993년생 우드는 주목받는 런던의 신예 작가다. 영국왕립예술원 석사를 마친 후 런던, 파리, 뉴욕 등에서 개인전을 열며 차세대 작가로 각광받고 있다. 그림뿐 아니라 우드가 만든 음악과 뮤직비디오도 인기를 끌었다. 유명한 거고지언 갤러리와 음반사 소니에서 ‘러브콜’을 받고서도 이를 걷어차고 “나이 많은 남자가 내 머리 위로 돈을 쥐여주기를 바랐다면 아버지에게 다시 연락했을 거다”(뉴욕타임스 인터뷰)라고 말하는 우드는 MZ세대의 ‘쿨함’과 ‘힙함’의 결정체인 듯하다. 서울 세종로 일민미술관에서 열리고 있는 우드의 국내 첫 개인전 ‘I Like to Watch’에선 우드의 그림, 음악과 뮤직비디오, 일기 등을 통해 그의 작품세계를 엿볼 수 있다.
전시장 1층의 작은 그림들은 마치 작가의 인스타그램 피드를 보는 듯하다. 우연히 포착한 일상들, 중세 조각상, 빈티지한 사물을 그린 그림들이 전시됐다. 스마트폰의 작은 사각 틀 안에서 이미지 중심으로 소통하는 MZ세대 특징을 우드는 잘 보여준다. 사진을 확대해 잘라낸 듯한 그림들은 의미가 없어 보이면서도, 일상의 특정 부분만을 의도적으로 부각해 자신을 드러내는 듯하다
2층에는 큰 그림들이 전시돼 우드의 작품세계 특징을 더 잘 보여준다. 무겁고 둔탁한 느낌을 주는 벨벳 위에 옷과 함께 지구를 그려넣은 ‘COP26’이 가장 먼저 관람객을 만난다. 2층 마지막을 장식하는 작품은 쓰레기를 그린 그림이다. 옷·가방·하이힐 등 그림이 패션에 관한 우드의 관심을 드러낸다면, ‘COP26’과 같은 그림은 패션산업에 의한 환경오염 또한 의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소비문화에 익숙하고 화려한 패션을 동경하는 동시에 기후변화에 대한 불안을 갖고 있는 젊은 세대의 딜레마를 우드에게서도 엿볼 수 있다. 벨벳 위에 그려진 그림 중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교정기를 끼워넣은 입 안과 포르쉐 자동차의 앞부분을 나란히 배치한 ‘봐 엄마, 충치 없어’다. 우드의 아버지는 치과 의사인데, 교정기는 아버지 등 권위에 의한 구속과 통제를 의미하는 것처럼 보인다. 남성적 이미지의 포르쉐 자동차의 앞 부분은 마치 웃고 있는 입과 같은데, 두 이미지를 나란히 놓음으로써 가부장적 권력과 남성성의 통제를 냉소하는 듯한 인상을 풍긴다.
우드식 블랙 유머는 ‘자화상’에서도 배어난다. 얼굴 공개를 꺼리는 것으로 알려진 우드는 자화상에 담배회사 ‘엠버시(Embassy)’의 로고가 새겨진 옷을 입고 있는 상체를 부분적으로 그려넣었다. 엠버시가 마라톤 대회를 후원하며 만든 의상으로, 담배를 팔아 돈을 벌어 마라톤을 후원하는 담배회사의 이중성과, 흡연자인 스스로를 자조하는 듯하다. 대상과 거리를 둔 무심함과 냉소가 담긴 풍자가 우드 그림 곳곳에 묻어난다.
3층에선 우드가 그림을 그려넣은 옷과 뮤직비디오를 감상할 수 있다. 우드는 섭식장애가 있었는데, 입지 못하게 된 옷들을 버리는 대신 그림을 그려서 작품으로 만들었다. 아름답고 날씬한 외모에 대한 사회적 압박,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면서도 해방되려고 애쓰는 젊은 여성의 고통과 치유의 노력이 깃든 전시다. 전시장엔 우드가 블로그 등을 통해 공개한 일기를 엮어 출간한 <퀸 베이비>가 함께 비치돼 있어 우드의 일상과 작업과 예술에 대한 생각 등을 좀더 깊이 알 수 있다. <퀸 베이비>의 반응도 좋아 3쇄를 찍었다.
우드는 “중세회화에서 신고전주의 구상회화까지 역사적 유럽 회화를 폭넓게 참조했다” “초현실주의와 결합한 새로운 리얼리즘”이란 평을 받는다. 초현실주의 화가 달리의 시계가 녹아내리는 모습이었다면, 우드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시계는 직사각형의 모습이며 때론 명품 시계를 떠올리게 한다. 우드의 시계는 현실을 초월한 시간이라기보다는 우리의 일상과 의식을 꿰뚫고 개입하는 스마트폰 속 알고리즘과 디지털의 시간을 연상시킨다.
서양미술사의 주요 흐름을 유려하게 반영하며 변형한다는 점에서 우드가 제1세계 백인 아티스트의 면모를 보여준다면, 젊은 여성의 불안과 일상에 대한 감각, 기후변화에 관한 위기의식 등은 한국인도 쉽게 공감할 수 있는 동시대적 면모를 보여준다. 전시는 12일까지. 7000~9000원.
이영경 기자 samemind@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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