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 청년들의 세상 나들이…‘니트컴퍼니’ 직원들의 하루[현장에서]
청년들이 사회와 단절된 이유는 다양하다. 우울증, 어린 시절 학대, 대인 관계에 대한 두려움, 취업난…. 원인을 하나로 특정할 수 없는 것처럼 고립의 모습도 갖가지다.
지난달 20일 서울 강남구 세텍(SETEC) 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굿즈 박람회에 참가한 ‘니트컴퍼니’ 청년들도 마찬가지였다. 손재주 좋게 코바늘로 키링을 만든 제작자, 물건을 설명하는 판매자, 전시에 힘을 보태러 온 구매자, 온라인에서 메시지로 응원을 보내는 조력자.
비영리단체 니트생활자가 만든 니트컴퍼니는 사회에서 고립되거나 관계망이 부족한 청년들이 입사해 일하는 가상의 회사다. ‘자신만의 경로를 찾기 위해 전환의 기간’을 보내는 이들을 뽑는다. 회사 이름에도 포함된 ‘니트’(Not in Education, Employment, or Training)는 교육이나 고용 등을 모두 거부하고 일하지 않으며 일할 의지도 없는 청년들을 뜻하는 말이다.
가상의 회사이지만 입사 후 일과는 직장인들의 시간과 비슷하게 흘러간다. 오전 9시까지 지점별 팀장에게 메신저로 보고를 한다.
“출근합니다.” 이후 메신저에 업무 리스트를 등록한다. 자격증 공부, 이력서 작성, 양치하기, 환기하기, 물 한 잔 마시기….
각자 목표로 한 일을 마치면 사진·영상을 첨부한 업무 일지 작성하고 오후 6시 퇴근한다. 온라인 재택근무가 기본이나 주 1회 실제 사무실로 출근해야 한다. 이날 굿즈 박람회와 같이 외부 활동이 있는 날은 밖으로 나와 현장으로 출근한다. 사람과 사회와 관계를 맺는 연습을 하는 것이다.
지난 1월 서울시 발표에 따르면 서울에 사는 만 19~39세 청년 약 13만명이 고립·은둔 상태다. 서울 청년 인구의 4.5%로 5년 이상 장기화된 경우도 41.5%나 된다. 고립은 물리적으로 타인과 관계망이 단절됐거나 외로움 등으로 내부적 고립상태, 은둔은 집 안에서만 지내며 6개월 이상 교류를 차단된 상태다.
박은미 니트생활자 공동대표는 “프리랜서로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것도 고립도를 높이는 큰 요인”이라고 설명했다. 취업난에 1인 창업으로 생계를 꾸리는 청년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사회·문화적 자본이 부족한 상태에서 혼자 일하다 보니 사회적 교류의 기회가 더 줄어 고립이 심화되는 악순환을 겪는 것이다.
박 대표는 “시작이 두려워 고립됐던 청년들이 니트컴퍼니에서 연대할 동료를 만나며 사회와 연결고리를 찾아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다”며 “느슨하게 관계를 이어가고 출퇴근하는 일상이 쌓이며 지지를 받은 경험을 하다보면 사람마다 걸리는 시간이 다를 뿐 변화한다”고 말했다.
이날 굿즈 박람회는 그 변화의 결실로 만든 외부 행사다. 니트컴퍼니를 거쳐 사회 속에서 자신만의 일을 만들어 낸 청년들이 물건을 제작하고 부스를 운영하며 ‘완판’을 목표로 고객들을 만나 판매하는 경험을 한 것이다.
소속 직원들을 인솔해 박람회를 찾은 ‘쟌쟌’과 ‘토리’도 2년 전에는 프로그램 참여자였다. 두 사람은 영등포구가 니트생활자와 계약을 맺어 지난 9월 지역 고립 청년 28명을 채용한 니트컴퍼니 영등포점을 운영하고 있다. 만 39세 이하 무직 기간 1개월 이상이면 누구나 신청을 받았다.
청년들은 온·오프라인을 통해 11주간 출퇴근하며 교류를 이어간다. 이날 현장 방문도 각자 자율에 맡겼지만 대부분 부스로 출근해 박람회에 참여했다. 쟌쟌은 “참여할 때는 느끼지 못한 운영자로서 책임감이 크다”며 “입사자들이 관계를 조금씩 넓히고, 경험을 확장하면 어렵게 생각했던 것들에 길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을 느낄 수 있도록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이곳에서 만난 동료들과 플리마켓을 기획하고, 지자체 등의 지원 사업에 도전하면서 최근 자신의 가게를 창업을 했다. 소속감과 유대감을 바탕으로 사회적 경험을 쌓는 기회가 청년들에게 가장 필요하다는 점을 직접 체험한 셈이다.
토리는 “친구 아닌 동료를 만나 완성한 결과물들이 신기했다”며 “관계망이 지속되는 것이 고립을 벗어나는 데 가장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김보미 기자 bomi83@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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