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군부와 갈등한 名정치기자…김동익 전 장관 별세

이충원 2023. 11. 2. 1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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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1970년대 정치부 기자로 필명을 날린 김동익(金東益) 전 중앙일보 부사장(전 정무제1장관)이 1일 오후 11시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1988년 중앙일보로 복귀해 주필, 대표이사 부사장을 역임했고, 노태우 정부 말기 '중립내각' 시절인 1992∼1993년 정무제1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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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이충원 기자 = 1960∼1970년대 정치부 기자로 필명을 날린 김동익(金東益) 전 중앙일보 부사장(전 정무제1장관)이 1일 오후 11시께 노환으로 세상을 떠났다고 유족이 전했다. 향년 90세.

서울에서 태어난 고인은 서울고,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뒤 1961년 조선일보 기자로 언론계에 투신했다. 1967년 중앙일보로 옮긴 뒤 정치부장, 편집국장을 지냈다. 박정희 대통령 때 정무제1수석비서관을 지낸 류혁인(1934∼1999)씨 등 여야 정치인과 폭넓게 교류하면서도 치우치지 않아 '중도의 길을 가는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신군부와는 갈등을 빚어 1980년 6월25일 편집국장에서 물러난 뒤 조사실 자료담당, 삼성그룹 비서실 고문을 지냈다. 1988년 중앙일보로 복귀해 주필, 대표이사 부사장을 역임했고, 노태우 정부 말기 '중립내각' 시절인 1992∼1993년 정무제1장관으로 일하기도 했다. 2005∼2009년 용인송담대학 총장으로도 활약했다.

고인의 중앙일보 후배인 성병욱 한국신문방송편집인협회 고문은 "후배 기자들보다 정보도 더 많고, 기사도 잘 썼지만, 후배 기사도 잘 고치는 분이었다"고 했고, 고흥길 전 의원도 "두뇌 회전이 빠르고 후배들 기사를 참 깔끔하게 고치는 분이었다"며 "후배들 기사를 늘 관심있게 보셨다가 화장실에서 만나면 꼭 코멘트를 해주셨던 게 기억이 난다"고 말했다.

'정오의 기자'(1987)를 시작으로 '권력과 저널리즘'(1997), '20년 후에 보아라:어린 손녀에게 남기는 세상 이야기'(2006), '대학교수 그 허상과 실상'(2009) 등을 썼고, '태평양의 바람'(2010), '안단테 안단테'(2011), '이상한 전쟁'(2012), '서른 살 공화국'(2013), '어느 날 갑자기'(2014), '크루즈와 나비'(2015) 등 소설도 남겼다. '서른 살 공화국'은 장성택(1946∼2013)의 실각을 예측했다고 해서 화제가 되기도 했다.

유족은 부인 이혜경씨와 사이에 2남1녀로 딸 김성연씨, 아들 김정현(애플 동남아 기술매니저)·김상현(이노비드 부사장)씨, 며느리 조은주·이경미씨, 사위 이현재(개인사업)씨 등이 있다. 빈소는 삼성서울병원 장례식장 5호실(3일 오후 5시부터 15호실), 발인 4일 오전 6시, 장지 이천에덴낙원. ☎ 02-3410-3151

chungwon@yna.co.kr

※ 부고 게재 문의는 팩스 02-398-3111, 카톡 okjebo, 이메일 jebo@yna.co.kr(확인용 유족 연락처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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