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르신들 식사 대접, 제가 더 행복해요”
[서울&] [사람&]
를 운영해왔다. 정용일 선임기자 yongil@hani.co.kr'>
여러 직업 전전, 힘겹게 채소가게 열어
세월호 참사 추모 리본 달기 행사 진행
2014년부터 홀몸노인 식사 대접해와
“욕심 버리고 힘닿는 데까지 봉사할 것”
“어르신들 식사하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참 흐뭇해요. 감사하다고 인사하고 가시는 모습이 보기 좋죠. 내년에도 또 할 테니 건강하시라고 말씀드립니다. 제가 더 행복해요.” 금천구 시흥동 은행나무시장 령현야채 가게 주인 김재우(62)씨를 10월25일 은행나무시장 근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김씨는 지난 10월5일 홀몸노인 50명에게 점심을 대접하고 양말과 떡을 나눠줬다. 2014년 11월 배추 500포기로 김장을 해 어려운 이웃에게 나눠준 이후 10년째 꾸준히 봉사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밭을 사서 직접 배추를 심어 김치를 담갔어요. 자원봉사자가 30명이나 와서 20만원짜리 문어를 삶아서 먹였죠.” 김씨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비용이 많이 드는 것 같아 규모를 조금 줄여서 지속적으로 하면 어떨까 고민했다.
“김장은 두 번만 하고 매년 어르신들 초청해서 설렁탕, 만둣국, 자장면을 대접했습니다.” 김씨는 매년 정기적으로 하는 식사대접 외에도 각종 후원금을 내고, 시장에서 종이 상자를 줍는 노인들에게도 쌀과 김치를 나눠준다.
김씨는 영등포구 신광동(신길2동)에 살다가 물난리를 겪고 1966년께 금천구 시흥동으로 이사 왔다. “당시에는 여기가 허허벌판이고 산이었어요. 판잣집에서 등잔불 켜고 살았죠.” 김씨는 6살 되던 해 호롱불이 옮겨붙어 머리 뒷부분에 큰 상처를 입었다.
“공부하거나 사회생활 하는 데 지장이 많았어요. 힘들었죠. 상처를 가리기 위해 1년 내내 모자를 쓰고 다니니, 취직도 힘들었어요.” 화상으로 머리숱이 없던 김씨는 학교에서 친구들한테 자주 놀림을 받았다. 김씨는 “상처를 숨기기 위해 항상 모자를 쓰고 다녔는데, ‘모자를 벗어라’라는 선생님들의 말은 큰 수치심을 불러일으켰다”고 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김씨는 용접을 배웠다. “나이가 어린데도 용접을 잘해 기술자 밑에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김씨는 용접을 그만두고 리어카를 끌며 ‘만물상’을 했다. “재밌어 보이더라고요. 그래서 플라스틱 그릇, 연탄집게 등 온갖 것을 팔았죠.” 그러다 다시 직업을 바꿨다.
“밀가루 장사를 해보고 싶더라고요. 호떡장사요. 10년 정도 했습니다.” 그 이후 김씨는 천막 장사, 슈퍼, 당구장 등 여러 직업을 전전했다. “이것저것 안 해본 게 없어요.” 당구장을 할 당시에는 볼링장과 피시(PC)방이 성행하던 때라 손님이 많지 않았다. 그래서 당구장을 접고 시흥동 은행나무시장에서 채소 장사를 시작했다. “아들 이름을 따서 령현야채라고 상호를 정했어요.” 김씨는 이후 20년 넘게 채소를 팔고 있다.
“남들한테 이곳에서 오래 살았다고 자랑만 할 게 아니라 뭔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씨가 봉사활동을 시작한 건 당구장을 하면서다. “그래서 카운터에 돼지저금통을 놓고 돈이 모이면 ‘함께하는 사랑밭’에 기부했습니다. 김치도 담가 가져갔죠.” 하지만 어느 날 아침 당구장에 갔더니 돼지저금통이 사라져, 1년 정도 봉사활동을 못했다.
“은행나무시장이고 몇백년 된 은행나무가 세 그루나 있는데, 안타깝더라고요. 은행나무 당산제를 우리가 지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김씨는 2013년 10월30일 직접 돈을 내고 지인들에게 협찬도 받아 은행나무 당산제를 지냈다. 김씨는 “강남구 도곡동에도 은행나무 큰 게 있는데 당산제를 지내더라”며 “거기 가서 많이 배웠다”고 했다.
“어린 학생들이 목숨을 잃은 게 너무 안타깝더라고요. 그래서 뭔가 해야겠다 싶었죠.” 김씨의 봉사활동은 세월호 참사 추모로 이어졌다. 김씨는 2014년 4월16일 세월호 참사가 터지자 큰 도로인 은행나무로의 200m 구간 보도에서 20일 동안 ‘세월호 참사 추모 리본 달기’ 행사를 했다. “남들은 직접 팽목항까지 내려가는데 장사하는 몸이라 그럴 수 없었어요.” 김씨는 “많은 주민이 참여해 당시 노란 추모 리본이 가로수를 따라 길 위에 가득 찼다”고 설명했다.
“가게에 저금통으로 사용하는 생수통이 있어요. 첫 손님과 마지막 손님에게 판매한 돈을 생수통에 넣어요.” 김씨가 이렇게 돈을 모으는 데는 이유가 있다. “첫 손님과 마지막 손님은 많은 걸 사지 않아요. 무 한 개, 콩나물 1천~2천원어치 이런 식이죠. 주머니에 있어도 되고 없어도 그만인 액수라 부담이 없어요.” 김씨는 “하루 1천~3천원 정도면 충분하다”며 “하루 몇만원씩 모으겠다고 했으면 지금까지 못했을 것”이라고 했다.
김씨는 술값을 아껴 생수통에 넣는다고 했다. “지인들과 만나 술 한잔하고 지인이 술값을 내면 그만큼 술값 낸 셈 치고 생수통에 넣죠.” 김씨는 가게뿐만 아니라 집에도 작은 저금통이 세 개나 있다고 했다. “한번 해보면 마음이 편해요. 어르신 식사 대접을 한 번만 하고 그만하려고 했는데, 그다음날 또 돈을 넣게 되더라고요.” 김씨는 “그냥 마음에서 우러나와서 하는 것이라 어쩔 수 없더라”고 했다.
“이제 장사가 잘될 나이는 지났잖아요. 여태껏 경조사 빚진 게 있으니 갚아야 할 의무가 있어서 가게를 하는 거죠.” 김씨는 “그런 것 갚고 봉사도 해야 하니 장사를 계속한다”며 “욕심 안 부리고 그냥 힘닿는 데까지 꾸준히 하겠다”고 다짐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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