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탄소중립, 정부 정책도 중요하지만 생활 속 실천이 더 중요해요”
15개 동아리 성과 알리고 재활용 자원순환센터와 친환경 체험 부스도 운영
[서울&] [커버스토리] 주민들, 재활용·에너지절약·환경정화 활동 보며 ‘즐거움 속 의미’ 찾아
서울 자치구 첫 탄소중립 동아리 지원
자전거 발전기로 솜사탕 만들기 인기
“환경 중요성 다시 한번 느껴 좋았죠”
솜사탕을 만드는 부스 앞에서 어린이집 교사 2명이 열심히 자전거 페달을 돌리는 모습이 보였다. 바로 옆에 올망졸망 앉아 있는 아이들이 “선생님 힘내세요”라며 목청을 돋워 응원했다.
“숨이 너무 차요. 힘들었어요.” 자전거에서 내린 임다름(28) 낙성대어린이집 교사는 숨을 몰아쉬면서도 완성된 솜사탕을 보며 밝게 웃었다. “내가 만든 전기로 아이들에게 솜사탕을 만들어줄 수 있어 뿌듯해요. 이런 행사가 자주 있으면 좋겠습니다.” 임 교사는 “아이들에게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관심을 갖게 하고 싶어서 왔다”며 “어린이집에서는 체험할 수 없는 것을 가까운 곳에서 할 수 있어 너무 좋다”고 했다.
에너지 절약 동아리 ‘난곡동 에코 친구들'은 주민들이 자전거 발전기로 솜사탕 기계를 돌려 솜사탕을 만드는 체험부스를 마련했다. “전기를 만드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느낄 수 있잖아요. 어른들도 힘들어하니 아이들이 자기들은 못할 거라며 놀라는 거죠.” 최경숙 난곡동 에코 친구들 대표는 “이렇게 힘들게 만든 전기를 우리가 사용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전기를 아껴 쓸 수 있도록 하는 데 의미가 있다”고 설명했다.
다양한 환경 활동을 하는 난곡동 에코 친구들은 지역에 있는 학교를 찾아가 에너지 절약법과 환경 관련 교육, 자전거 발전기 체험 교육도 꾸준히 하고 있다. 자전거 발전기 아이디어를 낸 회원 김숙희씨는 “중학생과 고등학생들에게 인기가 많다”며 “자전거 발전기로 여름철 분수를 만드는 장치도 만들었다”고 했다.
관악구는 10월23일 관악구청 앞 광장에서 지역 주민들이 생활 속에서 탄소중립을 실천하는 문화를 확산하기 위해 ‘그린 리더 동아리 성과 공유회’를 열었다. 구는 앞서 지난 4월 환경·에너지 관련 동아리 15개를 선정해 탄소중립 활동을 지원했다. 이날 15개 동아리는 5월부터 10월까지 활동한 내용을 주민들에게 공개했다. 성과 공유회에는 참여 동아리 부스 외에도 재활용 자원순환센터와 친환경 관련 체험 부스도 함께 운영했다.
관악주민연대 ‘꿈마을 에코바람’은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를 계기로 에너지와 환경의 중요성을 알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2013년부터 에너지 절약 실천과 에너지 기본교육, 캠페인 등 다양한 활동으로 지역 주민에게 에너지와 환경에 대한 중요성을 알려왔다.
30~60대 회원이 활동하는 꿈마을 에코바람은 매월 22일 불끄기 행사를 시작으로 관악산에서 쓰레기를 줍는 ‘에너지 다락방’, 에너지 축제, 친환경 비누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꾸준히 하고 있다.
꿈마을 에코바람은 이날 자전거 발전기로 믹서기를 돌려 블루베리 주스를 만드는 체험 행사를 했다. “조금만 생각을 바꾸면 생활에 필요한 전기를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어요.” 김선희(52) 꿈마을 에코바람 대표는 “처음에는 열심히 활동해도 눈에 띄는 변화가 없어 달걀로 바위 치기라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도 우리가 할 수 있는 데까지 해보자는 생각으로 활동하다보니 확실히 정책이나 사회가 바뀌는 것을 알겠더라”고 했다.
청소년 환경 동아리 청그린은 폐현수막으로 앞치마를 만드는 활동을 펼쳤다. 폐현수막 50장을 준비해 행사장에 온 주민들이 앞치마를 직접 만들어 가져갈 수 있도록 했다. 관람객이 부스에 오면 동아리 회원들이 친절하게 앞치마 만드는 법을 알려줬다. 박진선(30) 청그린 대표는 “구청에서 수거한 폐현수막이 많다고 해서 어떻게 재활용할까 학생들과 고민했다”며 “곧 김장철이라 앞치마를 만들면 도움이 될 것 같아 앞치마로 정했다”고 했다.
청그린은 환경 문제에 관심 있는 미성동구립신림청소년독서실에 다니는 청소년들이 2019년 만든 동아리다. 박 대표는 “처음 시작할 때는 단순한 플로깅 등 환경미화 활동에 그쳤지만, 요즘에는 뜻이 맞는 친구들끼리 기획해 활동 범위를 넓히고 있다”고 했다.
청그린 회원들은 다른 환경 단체를 방문해 업사이클링 활동과 환경 교육도 받았다. 박 대표는 “무엇이 탄소중립이고, 어떤 사례가 있는지 교육을 통해 배우고 있다”며 “커피박으로 키링 만들기, 계란곽으로 재생종이 만들기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고 했다.
올해 4월부터 청그린 회원으로 활동하는 조수미(21)씨는 지구 온난화로 해수면이 상승해 바닷가 주민들이 무척 불안해한다는 뉴스를 본 뒤 환경 활동에 관심을 갖게 됐다. “플라스틱과 휴지를 많이 사용하면 환경 문제를 일으킨다는 것을 알죠. 일반 수세미는 미세플라스틱이 많이 나온다고 해 최대한 안 쓰려고 노력해도 잘 안 되더라고요.” 조씨는 “플라스틱이나 종이 사용 줄이기, 메일(전자우편) 쌓지 않기, 개인 컵 들고 다니기, 천연수세미 사용하기 등 작은 것 하나하나를 실천하는 게 매우 중요하다”며 “앞으로 습관화해 생활 속에서 실천해가겠다”고 다짐했다.
“즐겁고 기쁘고 체험 자체가 의미 있잖아요.” 신림동에 사는 유선희씨는 청그린 동아리 부스에서 폐현수막으로 앞치마를 만들어 입고 무척 좋아했다. 유씨는 “지구 환경이 점점 나빠지는데 환경을 지키고 보존하는 일이 중요하다”며 “앞으로 이런 기회가 있으면 자주 참여하고 싶다”고 했다.
‘달리는 여우들’은 리사이클 공예 체험 부스를 운영했다. 사용한 캡슐커피를 활용해 냉장고 등에 붙일 수 있는 작은 공예품을 만들 수 있게 했다. 부스를 찾은 주민들은 알루미늄통과 커피 가루를 분리해 알루미늄통을 깨끗이 씻은 다음 냉장고에 부착할 수 있는 작은 공예품을 만들었다. 완성한 공예품은 잡지책을 활용해 만든 포장 용기에 담아 가져갔다. 공예품을 만들어 손에 든 최수정(28)씨는 “환경에 관심이 많아 텀블러, 장바구니를 항상 들고 다녀 일회용품은 잘 사용하지 않는다”며 “재활용 체험을 하면서 환경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느낄 수 있어 좋았다”고 했다.
이 외 ‘일곱 빛깔 무지개’는 금역구역에 떨어져 있는 담배꽁초를 모아 전시했고, ‘지구가 좋아서’는 양말목을 활용해 만든 제품을 주민들에게 나눠줬다. ‘도림천 연두콩’은 재활용 비누 만들기 체험 부스 등 다양한 탄소중립 활동 성과를 전시했다.
“탄소중립은 어느새 지구에서 살아가는 인류의 과제가 됐습니다. 동아리 활동 성과를 지역 주민과 공유하면서 탄소중립 실천의지를 생활 속으로 확산시켜야 합니다.”
우리나라도 세계 추세에 발맞춰 올해 4월 환경부에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수립했다. 관악구는 이보다 빠른 2022년 자치구 차원에서 탄소중립 녹색성장 기본계획을 세워 10개 분야 81개 사업을 실행하고 있다. 최선희 관악구 녹색환경과 환경정책팀장은 “지역 주민으로 구성된 탄소중립 동아리 활동은 협치 의제 중 하나로, 서울시 자치구 중에서 관악구가 처음 시도했다”며 “탄소중립은 정부나 지방자치단체가 정책을 만들고 시행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주민이 직접 생활 속에서 실천하는 게 더 중요하다”고 했다.
이날 행사에 참석한 박준희 관악구청장은 “지구온난화로 전세계에서 기후 재난을 겪고 있어 생활 속 탄소중립 실천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며 “일상 속에서 작은 것부터 꾸준히 실천하는 탄소중립 실천 문화가 확산될 때까지 구에서도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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