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년전 책이 갑자기 베스트셀러?…연예인도 TV의 힘도 아니라는데
1998년작 양귀자 소설 ‘모순’
10월 교보문고 소설부문 4위
핵심내용 10분만에 요약해줘
책 안 보던 대중도 서점으로
2013년 국내 출간된 게리 켈러의 ‘원씽’이 10월 셋째 주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자기계발 부문 5위에 올라왔다. 무려 25년전에 나온 양귀자의 소설 ‘모순’(1998년)은 10월 셋째 주 교보문고 종합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3위, 2015년 출간된 최진영의 ‘구의 증명’은 4위였다. 출간된 지 최소 수년이 지난 책들이 베스트셀러 상위권을 오르내리는 것이다.
역주행하고 있는 이 책들의 공통점은 최근 다수의 북튜버 채널에서 소개됐다는 것이다. ‘원씽’은 소리내어읽다, 다독다독, 북토크 등의 추천을 받았다. ‘모순’은 시한책방, 편집자K, 해죽이북카페, ‘구의 증명’은 오늘책방, 불 켜진 밤 등에서 다뤘다. 오래전에 나온 책도 베스트셀러로 만들 만큼 출판 시장에서 북튜버의 영향력이 커진 것이다. 많게는 수십만 명의 구독자를 보유한 이들 인플루언서들이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오랜 침체에 빠진 출판 시장을 쥐락펴락하고 있다.
북튜버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책을 추천한다. 책그림(구독자 51만명)은 책의 핵심 내용을 10분 이내 영상으로 간략히 설명하고, 책추남TV(36만명)는 책의 일부 구절을 들려주는 팟캐스트를 올리며 책 관련 뉴스레터를 제공한다.
겨울서점(26만명)은 책 소개 영상과 배우·가수·다른 유튜버와의 대담, 독서와 관련된 브이로그 영상 등을 올린다. 책의 제목과 함께 그 책의 이미지와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음악을 들려주는 메르헨(24만명)도 인기다. 인기 강사 김미경의 유튜브 채널 ‘MKTV 김미경TV’(172만명)는 ‘20분 책 한 권’ 코너에서 저자 인터뷰와 함께 책을 소개한다.
전문가들은 북튜버들이 영상 플랫폼인 유튜브의 특성과 인플루언서로의 영향력을 이용해 독자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고 분석한다. 김성수 대중문화평론가는 “대중은 자신에게 반드시 필요한 것이 아니어도 타인이 추천하는 물건을 소비하면서 가치를 느끼는 경우가 많고 이런 현상은 출판 시장에도 나타난다”며 “잘 짜여진 영상과 소리는 책에 대한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대중은 자신이 정서적으로 몰입하는 인플루언서의 추천에 신뢰를 갖게 된다”고 설명했다.
책을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는 일반 유튜버들이 출판 시장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사례도 관찰되고 있다. 교보문고 10월 넷째 주 온라인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42위인 존 윌리엄스의 소설 ‘스토너’(2015년 출간)는 지난 6월 방송인 홍진경이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하자 예스24 판매량이 전주 대비 30배 이상 늘었다.
온라인 베스트셀러 경제·경영 부문 51위인 피터 나바로의 ‘브라질에 비가 내리면 스타벅스 주식을 사라’(2022년 출간) 역시 강영현 유진투자증권 이사가 지난 3월 한 유튜브 채널에서 소개한 뒤 교보문고 종합베스트 순위에서 전주보다 186계단 폭등하며 6위를 차지했다. 온라인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25위인 다자이 오사무의 ‘인간 실격’(2012년 출간)도 음악 플레이리스트(플리)를 제공하는 유튜버 때껄룩이 2021년 책의 문장과 함께 플리를 올리자 그 해 종합 연간 베스트셀러 소설 부문 7위를 차지했다.
일부 도서들의 역주행을 북튜버들의 영향으로 단정할 수 없다는 견해도 존재한다. 대중이 특정 책을 찾는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을 수 있다는 주장이다. ‘모순’의 역주행에 대해 일각에서는 양귀자 소설가가 페미니즘의 유행 속에서 최근 여성주의 작가로 떠오른 것을 원인으로 지목한다. ‘구의 증명’의 인기 역시 등장인물이 인기 드라마 ‘나의 해방일지’의 등장인물을 떠오르게 하는 것, 최진영 소설가가 올해 이상문학상을 받으며 주목받은 것 때문이라는 의견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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