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어는 오락가락, 근거는 발췌 편집”…방통위 보고서 살펴보니 [가짜뉴스]①

박효인 2023. 11. 2. 1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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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정부에서 임명된 첫 방송통신위원장인 이동관 위원장은 취임 3주 만에 가짜뉴스 근절 방안을 발표했습니다. 이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가짜뉴스 근절과 함께 인터넷 언론까지 심의를 확대하겠다고 전했습니다.

한낱 파동인 줄 알았던 '가짜뉴스 대책'은 한 달여 사이 광풍으로 변했습니다.
많은 언론학자가 법적 근거도 없이 개념도 정립하지 못한 '가짜뉴스'에 대응한다며 비판했지만, 방통위는 속도를 늦추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방통위는 '가짜뉴스 근절 추진 현황과 해외 사례'라는 자료를 만들어 국무회의에 보고했습니다.

KBS는 가짜뉴스의 개념부터 쟁점, 근절 계획까지 담긴 보고서 내용을 꼼꼼히 살펴봤습니다.
분석 결과는 3번에 걸쳐 정리합니다.

지난달 2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장.
과방위 소속 민형배 의원(더불어민주당)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설치된 '가짜뉴스[허위조작콘텐츠] 신속심의센터'에 대한 질의를 이어가다, 방심위에는 이른바 '가짜뉴스'를 심의할 권한이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질타 섞인 질의가 끝나자마자 이동관 방송통신위원장은 한마디만 하겠다며 발언권을 요청하고 나섰습니다.

"지금 자꾸 '가짜뉴스를 심의할 근거가 없다.' 이런 말씀을 하시기 때문에 사실은 지난주 국무회의에 제가 이런 보고를 했습니다. 법적 근거와 해외 사례 정식 안건으로 보고한 것이기 때문에 공식으로 다 국무회의 자료에 있는 거거든요. 그러니까 필요하시면 이 자료 보내 올리겠습니다."

지난달 26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


KBS 취재진은 이동관 방통위원장이 '심의 근거'로 자신 있게 제시한 보고서를 입수했습니다.
8쪽짜리 보고서에는 방통위가 정의한 '가짜뉴스'의 개념을 비롯해 심의 권한 및 법적 근거, 해외 사례 등이 담겨 있었는데요, 언론학자·변호사·언론법 전문가 등 관련 분야 전문가들과 함께 보고서 내용을 꼼꼼히 따져봤습니다.


■ 가짜뉴스(Fake News)? 허위조작정보? 오보?

방통위는 보고서에서 가짜뉴스의 개념을 이렇게 제시했습니다.

정치적·경제적 이익 등을 위해 사실이라고 믿을 만한 근거가 없거나 사실이 아닌 내용을 고의적·악의적으로 왜곡하여 퍼트리는 정보

그러면서 '가짜뉴스'는 사실이라고 믿었지만 추후 사실이 아니라고 밝혀진 '오보(misinformation)'와는 구분된다고 설명했습니다.

하지만 언론학계에선 방통위가 쓰고 있는 '가짜뉴스'라는 용어와 개념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언론학자들은 '가짜뉴스'(fake news)는 특정 의도(상업적, 정치적, 오락적 동기)로 허위정보를 만들어낸 주체가, 허위정보의 신뢰도를 높이려는 목적으로 언론 보도의 형식을 흉내 낸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언론 매체에서 생산한 기사가 아니라 언론 보도처럼 꾸며낸 거짓 정보를 '가짜뉴스'라고 부른다는 겁니다. 방통위가 주로 주요 언론 보도에 '가짜뉴스'라는 말을 사용하고 있는 것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언론학계에서 통용되어온 개념은 이렇지만, 언론매체의 기사를 가짜뉴스라고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공직자의 도덕성이나 업무처리의 정당성 등을 감시하는 언론 보도, 정부 정책을 비판하는 기사를 '가짜뉴스'라 부르는 경우가 있는데, 대표적인 사례가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입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CNN 등의 비판적 기사를 '가짜뉴스'라고 규정하고 기자회견에서 CNN 기자의 질문을 거절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방통위가 밝힌 개념에 맞는 용어는 무엇일까요? 언론학자들은 방통위가 용어와 개념 정의를 혼용하고 있다며, 제시한 개념대로라면 '허위조작정보'(disinformation)가 맞는 용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런 지적을 의식했을까요? 지난 9월 26일 내부 반발 속에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를 출범한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불과 한 달도 안 돼 슬그머니 간판을 갈아 끼웠습니다. 새 이름은 '가짜뉴스 [허위조작콘텐츠] 신속심의센터'입니다.

9월 26일, 가짜뉴스 심의전담센터 개소식


지난달 23일, 가짜뉴스[허위조작콘텐츠] 신속심의센터로 명칭 변경


■ 가짜뉴스 심의 근거는 '헌법재판소 판례'?

'가짜뉴스'와 관련한 또 다른 쟁점은 방심위가 가짜뉴스를 심의할 법적 근거나 권한이 있느냐는 겁니다.

방통위는 보고서를 통해, 가짜뉴스에 대한 법적 정의가 없어도 소관 법률에 따라 방심위에서 적법한 심의가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 보고서는 방통위 설치법 21조 4항을 근거로 들고 있습니다. 이 조항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직무 중 하나로 "전기통신회선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되어 유통되는 정보 중 건전한 통신윤리의 함양을 위하여 필요한 사항으로서 대통령령이 정하는 정보의 심의 및 시정요구"를 꼽고 있습니다.

방심위는 가짜뉴스가 이 조항에서 규정하고 있는 '건전한 통신윤리 함양에 필요한 사항'에 해당한다면서, 그 근거로 이 조항에 대한 헌법재판소 판례를 들고 있습니다.

지난 2009년 방심위가 인터넷 포털에 국내산 시멘트의 유독성에 대한 특정 게시글 삭제를 요구하자, 글 작성자가 '삭제 요구'의 근거가 된 방통위설치법 21조 4항의 위헌 여부를 헌법재판소에 심판해달라고 신청한 사건입니다.

방통위 보고서는 이 조항이 규정한 '건전한 통신윤리'라는 말이 너무 포괄적이어서 '명확하지 않다'는 취지의 의견에 대해서 헌재가 내놓은 결정문을 이렇게 인용했습니다.

(명확성 원칙) 방통위 설치법 제21조의 ‘건전한 통신윤리’라는 개념이 다소 추상적이나,
전기통신회선을 이용하여 정보를 전달함에 있어 우리 사회가 요구하는 최소한의 질서 또는 도덕률을 의미
- 정보통신영역의 광범위성과 빠른 변화속도, 다양하고 가변적인 표현 형태를 문자화하기에 어려운 점을 감안할 때, 위와 같은 함축적인 표현은 불가피하므로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 결정 (2011헌가13, 2012.2.23.)

→ 정보통신 영역의 빠른 변화속도 등을 감안하여 '건전한 통신윤리'라는 포괄적 개념으로 통신심의 범의를 규정할 수 있다고 판시

이에 대해 김보라미 변호사(법무법인 디케)는 "당시 해당조항은 합헌 결정이 나왔지만, 그렇다고 헌재 결정이 '건전한 통신윤리 함양에 필요한 사항'에 대해 아무런 제한 없이 심의가 허용된다는 뜻은 아니다. 당연히 정보통신망법을 근거로 심의할 것을 예상한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면서 "방심위가 정보통신망법 조항에서 근거를 찾을 수 없어, 이를 벗어나는 범위까지 심의를 찾기 위해 방통위 설치법까지 끌어오는 것은 해당 사건에 대해 헌법재판소가 합헌 판단을 내린 취지에 반하는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최우정 한국언론법학회 부회장도 "방심위의 심의 근거인 '건전한 통신윤리'를 확대·유추 해석하는 것은 '범죄와 형벌은 법률로 정해져야 한다'는 죄형법정주의 원칙에 위반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이어 "개인의 신체, 재산에 대해 불이익을 줄 경우, 법률에 따라 처벌하는 행위가 무엇인지, 어떤 처벌을 받는지를 예측할 수 있고, 그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결정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즉 '명확성의 원칙'에 의해 부과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 헌재 결정문 중 '소수의견'만 발췌

방통위는 해당 보고서에서 또 다른 헌법재판소 판례를 인용했는데, 일명 '미네르바 사건'으로 유명한 판례입니다.

지난 2008년 인터넷 논객 '미네르바'는 "외환보유고 부족으로 정부가 외환예산 환전업무를 중단" 한다는 글을 올렸다가, 공익을 해칠 목적으로 인터넷에 허위사실을 퍼뜨렸다는 이유로 구속기소 됐습니다. 미네르바 박 모 씨는 검찰이 적용한 전기통신기본법 조항을 두고 헌법소원을 제기했는데, 이 판례 인용에도 문제점이 지적됐습니다.

당시 헌재는 박 씨 구속기소의 근거가 된 전기통신기본법 제47조 1항에 대해 재판관 7대 2의 의견으로 위헌 결정을 내렸습니다.

재판관 가운데 7명은 위헌이라고 판단했고 2명은 합헌 의견을 냈는데, 방통위가 주목한 건 해당 조항을 위헌으로 결정한 '다수' 재판관의 의견이 아니라 '소수의견'이었습니다.

방통위는 보고서에서 소수의견을 낸 이동흡, 목영준 재판관의 합헌 판단 중 일부를 발췌했습니다. 당시 헌재 결정의전체 취지가 아닌, 규제 필요성에 무게를 두는 내용만 보고서에 담긴 셈입니다.

(표현의 자유) 미네르바 사건 당시에도 일정한 범위의 명백한 허위통신에 대하여는 통상의 표현행위보다 엄격한 규제를 할 필요가 있어, 과잉금지원칙에 반하여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는 볼 수 없다 판시 (2008헌바157, 2010.12.28.)

→ '명백한 허위통신'에 대하여는 통상의 표현 행위보다 엄격한 규제 필요성이 있어 표현의 자유 침해가 아니라고 판시

방통위가 국무회의에 제출한 자료에는 당시 헌재의 위헌 결정 사유와 위헌이라고 판단한 재판관 7명의 의견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이에 대해 김 변호사는 "그 판결에서 재판관 2명의 의견만 갖고 오는 것은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방통위는 판결 취지와 반대되는 의견을 가져와 인터넷 뉴스에 대한 심의를 정당화할 수 있다는 것으로 오독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이어 "이처럼 그 의견을 헌재의 결론으로 소개하는 것은 오해를 불러 올 여지가 크다"고 지적했습니다.

방통위 보고서에 담기지 않은 판례의 취지는 어땠는지, 당시 헌재 결정 이유의 요지를 찾아봤습니다.

'허위'를 사유로 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때, 어떤 원칙이나 요건을 지켜야 할 지 당시 헌재의 판단은 이렇습니다.

결정 이유의 요지

이 사건 법률조항은 표현의 자유에 대한 제한입법이며, 동시에 형벌조항에 해당하므로, 엄격한 의미의 명확성 원칙이 적용된다. 그런데 이 사건 법률조항은 “공익을 해할 목적”의 허위의 통신을 금지하는바, 여기서의 “공익”은 형벌조항의 구성요건으로서 구체적인 표지를 정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헌법상 기본권 제한에 필요한 최소한의 요건 또는 헌법상 언론ㆍ출판의 자유의 한계를 그대로 법률에 옮겨 놓은 것에 불과할 정도로 그 의미가 불명확하고 추상적이다. 따라서 어떠한 표현행위가 “공익”을 해하는 것인지, 아닌지에 관한 판단은 사람마다의 가치관, 윤리관에 따라 크게 달라질 수밖에 없으며, 이는 판단주체가 법전문가라 하여도 마찬가지이고, 법집행자의 통상적 해석을 통하여 그 의미내용이 객관적으로 확정될 수 있다고 보기 어렵다. 나아가 현재의 다원적이고 가치 상대적인 사회구조 하에서 구체적으로 어떤 행위상황이 문제되었을 때에 문제되는 공익은 하나로 수렴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인바, 공익을 해할 목적이 있는지 여부를 판단하기 위한 공익 간 형량의 결과가 언제나 객관적으로 명백한 것도 아니다. 결국, 이 사건 법률조항은 수범자인 국민에 대하여 일반적으로 허용되는 ‘허위의 통신’ 가운데 어떤 목적의 통신이 금지되는 것인지 고지하여 주지 못하고 있으므로 표현의 자유에서 요구하는 명확성의 요청 및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배하여 헌법에 위반된다. (2008헌바157, 2010.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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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인 기자 (izzana@k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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