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정상회담에 온도차 확연…'팔 걷어붙인 美 vs 미지근한 中'
美, 미중 관계 관리 원하면서도 '패권 도전국' 中 견제 원칙 견지
(서울=연합뉴스) 인교준 기자 = 1년 만에 미중 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됐으나, 양국 간 온도 차가 확연하다. 팔을 걷어붙이고 나선 미국과는 달리 중국은 미지근하다.
미국은 이달 11∼17일 샌프란시스코 아태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기간에 조 바이든 대통령과 시진핑 국가주석 간 회담을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나, 중국은 시 주석의 참석을 공식 확인조차 하지 않는 게 단적인 사례다.
이참에 중국은 미국의 각종 경제·안보 이슈 압박을 풀려 하고 있으나, 미국이 호응하지 않아 생긴 풍경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APEC 계기 정상회담 코앞, 일정도 확정 못해…中, 시진핑 카드로 '밀당'
카린 장 피에르 미 백악관 대변인은 지난 31일(이하 현지시간) 언론 브리핑에서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 간의 '건설적 회담'을 목표로 하고 있다고 밝혔다. 중국의 '난색'에도 미국은 둘의 회동 성사를 의심하지 않는다는 기색이다.
그럼에도 중국은 시 주석 미국행을 여전히 확인하지 않고 있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과 왕이 중국 공산당 정치국 위원 겸 외교부장이 정상회담 사전 조율을 위해 분주한 모습이지만, 아직 일정조차 잡지 못한 점이 눈길을 끈다.
외교가에선 중국이 이번 회담에서 '성과'를 얻을 목적으로 시 주석의 참석 여부를 밀고당기기 카드로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미국이 '바이든-시진핑' 정상회담 성사를 위해 애를 쓰는 점을 이용한 중국의 전술이라는 얘기다.
사실 미국은 각종 경제·안보 이슈로 대립해온 중국과의 우발적인 충돌을 우려하고 있다. 대만 문제와 남중국해 문제는 물론 우크라이나전에 이어 작금의 이스라엘-하마스(팔레스타인 무장 정파) 전쟁 등과 관련해서도 대척점에 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어서다.
특히 작년 11월 인도네시아 발리 APEC 계기 미중 정상회담 이후 지난 2월 중국 정찰 풍선(중국은 과학연구용 비행선이라고 주장)의 미국 영공 침입 사건 이후에는 미중 간 일촉즉발의 상황이 여러 차례 발생하기도 했다.
이 때문에 미국은 지난 5월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보내 왕이 외교부장과 접촉해 대화 물꼬를 텄다. 이어 블링컨 국무장관, 재닛 옐런 재무장관, 지나 러몬도 상무장관 등을 줄줄이 중국에 보내 미중 관계를 '관리'했다.
미국은 이제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 계기 미중 정상회담에 주목하고 있다. 이로써 안정적인 미중 관계를 재설정하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중국과 협력해 국제문제에 대처하고, 내년 중간선거에서 바이든 대통령의 재선에 유리한 입지를 다지려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은 사전 조율 과정에서 '정상회담 비용 청구서'를 내민 모양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 시절 개시된 무역 제재와 바이든 행정부의 각종 경제·안보 이슈 압박으로 중국 경제가 초유의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미국 요구에 대가를 받겠다는 심산으로 보인다.
中, 디리스킹 등 완화 요구한 듯…美에 핵군축 회담 수용 '선심'도
사실 중국의 최대 관심사는 미국의 디리스킹(de-risking·위험 제거) 제재 해제 또는 완화 여부다. 디리스킹이 중국의 미래 핵심 산업인 반도체·인공지능(AI)·양자컴퓨팅·바이오 분야를 꽁꽁 옥죄고 있어서다.
미국은 작년 10월 중국에 첨단반도체 등의 기술 이전을 금지한 데 이어 지난 8월 9일 첨단반도체·양자컴퓨팅·AI 등 3개 분야와 관련된 사모펀드와 벤처캐피털 등 자본 투자도 규제한 바 있다. 첨단 기술은 물론 돈 줄까지 틀어막겠다는 의지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 유럽연합(EU)도 대중국 디리스킹에 가세하면서, 중국으로선 사면초가 입장이다.
중국으로선 11월 미중 정상회담을 통해 적어도 디리스킹에 대한 '돌파구'를 찾겠다는 의지를 다지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가운데 미국이 버락 오바마 대통령 시절 이후 처음으로 중국과 핵 군축 회담을 준비하고 있다고 미국 일간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보도한 점도 눈길을 끈다.
지난 5월 말 기준 중국의 운용 핵탄두가 500기를 넘어섰으며 2030년에는 1천기에 이를 것으로 미 국방부가 예상하는 가운데 미국 내에선 중국과의 핵 군축 회담 필요성이 제기돼왔다.
이런 상황에서 중국이 핵 군축 회담에 응한 것 또한 미중 정상회담에서 대가를 얻어내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이런 중국의 바람이 현실화하기엔 여건이 녹록지는 않아 보인다.
바이든 행정부의 디리스킹은 패권 도전국인 중국의 도전을 차단하려는 목적에서 이뤄지는 '대전략'이라는 점에서 양보가 불가능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지적이다.
이외에 중국은 트럼프 행정부 이후 지속돼온 미국의 대중국 고율관세 문제 해결에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지만, 이에 대한 바이든 행정부의 반응도 미지근하다.
내년 1월 13일 총통선거가 치러질 대만 문제와 관련해서도 미중 양국이 접점을 찾기는 쉽지 않다. 중국은 독립 성향의 집권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재집권 저지에 나섰지만, 미국은 친중 성향의 국민당 집권이 달가울 리 없어서다.
남중국해 문제와 관련해서도 근래 미국 동맹인 필리핀이 중국의 영유권 야욕에 맞서 갈등이 빚어지는 상황에선 미중 양국의 이해가 충돌할 수밖에 없다.
우크라이나 전쟁 역시 러시아 편에 선 중국은 미국과 대립하고 있으며,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에서도 미중은 접근법이 다르다.
정상회담에서 미국이 우크라이나 전쟁과 관련해서는 러시아에 대해, 이스라엘-하마스 전쟁과 관련해서는 하마스 지원 국가인 이란 등에 압력을 가하기 위해 중국의 협조를 요구할 것으로 보이지만 중국 호응을 얻는 건 기대하기 어렵다.
홉킨스-난징 중국·미국 연구 센터의 데이비드 아라세 국제정치학 교수는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미중 정상회담에서 광범위한 문제가 논의될 수 있으나, "그런 노력은 거의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中 신중론 속 왕이의 '미중 정상회담, 자율주행 없다'…"대미 압박 카드"
미국의 입장 변화가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 속에서도 중국 내에서 양국 정상회담이 '당연히 열린다고 보지 말라'는 투의 신중한 언급들이 잇달아 나오는 걸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특히 사전 조율을 주도하는 왕이 외교부장의 언행이 눈길을 끈다.
그의 미국 방문으로 미중 외교장관 회담이 치러진 직후인 지난달 27일 AP통신은 샌프란시스코 APEC 정상회의 계기로 미중 정상회담 개최가 합의됐다고 전했다.
그러나 같은 달 29일 중국 외교부에 따르면 왕이 부장은 "(중국과 미국) 양측은 (다음 달) 샌프란시스코 정상회의를 실현하기 위해 함께 노력하는 데 합의했다"면서도 "'샌프란시스코로 가는 길'은 순탄하지 않을 것이고, '자율주행'에 맡겨둘 수는 없다"고 밝혔다.
SCMP는 31일 분석가들을 인용해 현재 미중 간에 신뢰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정상회담을 앞두고 미국 내에서 시 주석이 당황할 사건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점을 중국 당국이 우려하고 있다고 전했다.
실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시 주석이 미국을 방문해 가진 2017년 4월 6∼7일 정상회담 기간에 미군의 시리아 공격을 명령해 시 주석을 당황스럽게 만들었던 이전 사례를 상기시키기도 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는 1일 논평을 통해 바이든 대통령과 시 주석 간의 회담이 확정되지 않았다면서도, "지금 세계는 (100년 동안 볼 수 없었던) 엄청난 변화를 겪고 있으며 국제 지형도 큰 변화에 직면했다. 그 어느 때보다 안정적인 중미 관계가 필요하다"고 전했다.
중국 당국은 물론 관영·관변언론의 이런 제스처는 바이든 대통령을 포함해 미 행정부를 애태워 미국의 양보를 얻어내려는 시도라는 지적이 많다.
익명의 외교 당국자는 일종의 대미 압박 카드로 볼 수 있다고 짚었다.
kjihn@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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