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 엄포 안 먹히네… 전화로 문자로 SNS로 더 활개치는 불법 투자 권유

전준범 기자 2023. 11. 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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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당국 ‘불공정 거래와 전쟁’ 선포 이후
불법 투자 권유 잠시 잦아드는 듯하더니
전화·문자 유혹에 SNS 유명인 사칭까지
연말 향할수록 다시 기승 “스스로 지켜야”

‘불공정 거래와 전쟁’을 선포한 윤석열 정부의 감시 의지를 비웃기라도 하듯 최근 불법 투자 권유 행위가 여러 루트를 통해 빗발치고 있다. 이들은 증시 부진에 마음 둘 곳 없는 개인 투자자에게 전화나 문자로 접근하거나 유명인을 사칭한 광고를 만들어 소셜미디어(SNS)에 노출하고 있다. 정부는 단속을 강화한다는 방침이지만, 불법 행위가 온라인을 중심으로 워낙 빠르게 퍼져 피해를 막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조선 DB

2일 금융당국 등에 따르면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지난달 17일 국회 정무위원회의 금감원 국정감사에 참석해 “자본시장 불공정·불건전 영업 행위에 신속하게 대응하고자 검사 조직 체계를 전면 개편했다”며 “불법 사금융, 보이스피싱, 보험사기, 불법 리딩방 등 취약계층을 상대로 하는 민생 침해 금융범죄에 대해서는 관계기관과 공조해 총력 대응하겠다”고 했다.

실제로 금감원은 지난 6월 자산운용검사국 내에 설치한 불법행위 단속반을 중심으로 단속을 강화해 왔다. 또 연말까지 유사투자자문업자를 암행 점검할 계획이다. 시장 감시와 현장 검사 과정에서 문제점이 확인되면 경찰청과 합동으로 현장 단속도 한다. 이 원장뿐 아니라 김주현 금융위원장과 한기정 공정거래위원장 등도 올해 공개 석상에서 여러 차례 “불공정 거래의 뿌리를 뽑겠다”고 다짐했다.

이런 노력 덕에 한동안은 불법 투자 권유가 줄어드는 듯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힘없는 개미를 유혹하는 검은 유혹의 손길이 다시 늘어나는 분위기다. 직장인 김지욱(34) 씨는 최근 출근 준비를 하다가 특정 종목의 주가 상승을 예고하는 내용이 담긴 문자 메시지를 받았다. 문자에는 ‘흥구석유. 11월 재료 공개. 선착순 30명 무료. 답변 7번’이라고 적혀 있었다.

저장되지 않은 번호지만 어딘가 낯이 익어 통화 기록을 찾아보니 전날 오후 김 씨에게 전화했던 번호였다. 통화 당시 휴대폰 너머 남성은 김 씨에게 “앞으로 좋은 투자 정보를 알려주겠다”고 제안했다. 김 씨는 괜찮다며 사양했지만, 남성은 아랑곳없이 다음날 문자를 보낸 것이다. 김 씨는 “낯선 이의 투자 권유 연락이 최근 들어 잦아졌다”고 했다.

개인 사업자 문보경(가명·38) 씨도 “종목 추천을 해주겠다는 전화를 거의 이틀에 한 번꼴로 받는다”고 했다. 문 씨는 “개인 사업을 하다 보니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와도 안 받을 수 없다”며 “녹록지 않은 경기에 돈 벌기가 힘들어 가끔은 속는 셈 치고 (투자 권유에) 응해볼까 하는 마음도 든다”고 했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을 사칭한 투자 권유 광고가 페이스북에 게시돼 있다. / 페이스북 화면 캡처

자칭 주식 전문가라는 이들은 문자나 전화로 개인 투자자를 유혹한 다음 텔레그램·카카오톡 등을 통해 투자 정보를 제공한다. 리딩방으로 불리는 이 공간은 종목 추천자의 전문성을 확인하기 어렵고, 불법 행위가 자주 발생해서 문제다. 불특정 다수에게 광고성 메시지를 발송해 투자자를 끌어모은 다음 리딩방 규모가 커지면 수급을 통제해 종목 시세를 직접 건드리는 행위가 대표적이다.

문제는 유혹의 손길이 전화와 문자를 넘어 카카오·페이스북·인스타그램 등 SNS로 퍼져 나가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SNS에서는 유명인을 사칭한 투자 권유 광고가 우후죽순 쏟아졌다. 장하준 런던대 경제학과 교수, 주진형 전 한화투자증권 대표 같은 경제계 유명 인사뿐 아니라 이영애·김희애·홍진경 등 인기 연예인까지 허위 광고의 희생양이 됐다. 피해자들이 페이스북 운영사인 메타에 신고해도 사칭 광고는 계속 등장하고 있다.

논란이 커지자 개인정보보호위원회는 SNS 사칭·피싱 통제 장치와 개인 정보 보호 강화 조치를 긴급 요청했다. 방송통신심의위원회도 경찰 수사를 의뢰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칭 계정을 적발하더라도 뚜렷한 법적 처벌 근거나 조항이 없는 게 현실이다. 방송통신위원회가 지난달 29일 카카오·구글·메타 등 국내외 주요 플랫폼 사업자에 ‘유력 인사 명의도용 관련 자율 규제를 강화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낸 게 전부다.

전문가들은 투자자 스스로 자신을 지키는 수밖에 없다고 당부한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정보기술(IT)의 발달로 개인에게 접근할 수 있는 루트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해졌다”며 “익명 속 투자 권유는 신뢰성과 피해 보호 여부를 기대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은 만큼 투자자의 각별한 주의가 요구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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