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이 배 만드는 그 곳…다시 쓰는 옥포만의 기적 [르포]

2023. 11. 2. 1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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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오션 거제사업장 르포

[비즈니스 포커스]

한화오션 거제사업장 전경 사진=한화오션 제공



한화오션 조선소(거제사업장)가 위치한 경남 거제시 아주동은 임진왜란 당시 이순신 장군이 첫 승전보를 울린 옥포만을 끼고 있다. 1970년대 초까지만 해도 황량한 어촌마을이었지만, 옥포조선소가 들어선 이래 대한민국 수출의 한 축을 담당하는 옥포만의 기적을 만들어냈다.

지난 5월 한화그룹에 인수된 한화오션은 제2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최근 유상증자로 2조원을 확보, 친환경 스마트십 개발 및 스마트 야드 구축에만 9000억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다. 이를 통해 2040년까지 ‘매출 30조원, 영업이익 5조원’을 달성해 미래 해양 산업의 패러다임을 주도하는 ‘글로벌 오션 솔루션 프로바이더(Global Ocean Solution Provider)’로 도약하겠다는 전략이다.

지난 10월 27일 방문한 거제사업장에선 협력사 직원을 포함해 2만여 명의 임직원이 근무하는 곳인데도 작업하는 직원들을 보기 어려웠다. ‘전통 굴뚝산업’인 만큼 작업자가 두드리는 쇠망치 소리와 뜨거운 용접 불꽃이 튀는 조선소의 풍경을 기대했다. 하지만 예상은 빗나갔다.

생산 현장의 자동화가 이미 상당수 이뤄져 있어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이 예전만큼 많이 필요하지 않게 된 것이다. 로봇 기반의 디지털·자동화 방식으로 돌아가는 미래의 조선소에 온 느낌이었다. 

 

 ‘첨단 관제탑’이 조선소 곳곳 실시간 모니터링

디지털 생산센터는 한화오션이 추구하는 스마트 야드의 전진기지 역할을 한다. 2021년 업계 최초로 설립됐다. 거제사업장은 총면적 490만㎡로, 여의도 면적(290만㎡·150만 평)의 1.67배다. 대형 스크린을 통해 거대한 조선소 곳곳에서 건조 중인 블록 위치와 생산 공정 상황을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첨단 관제탑’이다.

권순도 스마트야드 연구팀장은 “최신 정보통신기술(ICT)을 접목해 모든 조직을 유기적으로 연결했다.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이 가능하고 사업장을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는 스마트한 체계”라고 설명했다.

디지털 생산센터는 크게 두 곳으로 나뉜다. 건조 중인 블록 위치와 생산 공정 정보 현황을 드론과 사물인터넷(IoT) 센서 등으로 실시간 확인할 수 있는 ‘스마트 생산관리센터’와 바다 위에서 시운전 중인 선박의 상태를 실시간으로 육지에서 확인하는 ‘스마트 시운전센터’다.

과거에는 시운전 중인 선박에 문제가 발생하면 기술 인력이 예인선이나 헬기를 타고 해상에 있는 배로 직접 가서 문제를 해결해야만 했다. 지금은 직접 갈 필요가 없다. 스마트 시운전센터에서 엔지니어가 원격으로 문제를 진단하고 해결하기 때문이다. 조선소의 디지털·자동화로 공기 단축과 안전성 확보는 물론 원가 절감과 생산성 향상 효과까지 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탑재 론지 용접로봇이 철판을 이어 붙이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제공



 

 자동화·지능화로 생산성 끌어올려…인력난 대응

조선업체들은 최근 수주 호황에도 배를 만들 사람을 구하기 힘들어 일손 부족을 호소한다. 2015년 조선업 불황기에 대규모 구조조정을 단행하면서 떠나간 인력이 돌아오지 않고 있다. 또 저임금, 장시간 노동, 젊은층의 3D 업종 기피 현상과 맞물려 고령화가 가속화된 탓이다. 극심한 인력난이 세계 최고 수준인 K-조선의 경쟁력을 위협하고 있는 만큼 조선업계는 외국인력 활용을 확대하면서 첨단기술 도입 등 초격차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한화오션은 과거와는 다른 길을 찾는다. 조선업 패러다임 전환에 대응해 조선업에 인공지능(AI), 가상현실(VR), IoT 등 디지털 기술을 적극 도입했다. 스마트 첨단조선소 구축에 속도를 내는 것이다. 기존 사람과 경험 중심으로 돌아가던 생산 현장을 로봇과 데이터 기반의 디지털·자동화로 전환하는 스마트 야드 구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첨단 디지털 기술이 접목된 자동화 설비들이 사람의 육체노동을 도와 생산성을 끌어올린다. 지능화 기술로 작업자의 행동을 분석해 안전한 사업장 구현에도 기여한다. 한화오션은 생산 현장 자동화율을 70%까지 높여 누구나 쉽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는 ‘데이터로 일하는 조선소’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현장의 문제점을 AI가 찾아내고 로봇이 문제점을 해결하며 사람은 안전한 장소에서 부가가치가 높은 작업만 수행한다. 스마트 조선소가 한화오션이 그리는 미래 조선업의 청사진이다.

한화오션은 수요가 많은 용접공·도장공 부족 문제 해결을 위해 생산 현장에 로봇 등 첨단 디지털 기술을 적극 활용한다. 위험도가 높은 작업 분야인 선행 전처리 및 도장 분야를 중심으로 자동·무인화 연구를 하고 있다. 후행 공정 분야에도 조선업 최초로 무레일 용접시스템을 개발하고 전선 포설 자동화 장비도 개발하는 등 안전성과 생산성을 동시에 끌어올린다.

한화오션 직원이 무레일 EGW 용접 장치를 시연하고 있다. 사진=한화오션 제공



 

 고위험 작업에는 사람 대신 로봇 투입

이날 찾은 생산혁신연구센터에서는 스마트 야드 지능화의 핵심인 로봇기술 연구가 한창이었다. 한화오션이 개발한 용접로봇이 사람이 직접 작업하기 어려운 밀폐된 공간에서 스스로 철판을 이어붙이는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무게가 17kg인 소형 경량 로봇이었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용접로봇이 3년 차 용접공 정도의 실력을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

올 초 한화오션은 선박 내부 강관을 용접하는 공정에 협동로봇을 도입했다. 그동안은 30kg이 넘는 토치 작업대를 작업자가 수차례 옮겨가며 수동으로 직접 위치를 조정해야 해서 작업을 준비하는 시간이 오래 걸렸다. 지금은 작업자가 버튼 하나만 누르면 로봇이 용접작업을 금세 끝낸다.

별도의 안전펜스 설치 없이 직원이 근거리에서 로봇을 이용해 미세한 용접까지 할 수 있고 작업 준비 시간도 약 60% 줄여 생산성을 높였다. 박종민 용접기술연구팀장은 “여성 및 저기량 용접사를 현장에 투입할 수 있어 고기량 용접사 인력난 해소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무레일 EWG 용접 장치와 오비탈 GTAW 용접 장치도 생산성 향상에 기여하고 있다. 한화오션이 지능형 생산혁신 기술로 개발에 성공해 생산 현장에서 용접 및 가공 등 주요 공정에서 활용하고 있는 로봇은 협동로봇을 포함해 총 80여 개에 이른다.

그동안 순수 손기술로 여겨졌던 도장 직무에도 디지털을 접목해 가상현실을 기반으로 선박 도장 훈련이 가능한 VR 도장 교육센터를 운영 중이다. 실제 선박에 오르지 않고도 선박 내부를 그대로 옮겨온 가상공간에서 시각·청각·촉각 효과가 포함된 몰입감으로 도장 훈련을 할 수 있다. 조선소에서 도장 작업은 오직 손으로 노하우가 전수되기 때문에 숙련인력 양성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기존 훈련 방법은 고가의 도료 사용에 따른 비용 문제, 유기용제 사용에 따른 환경 문제 등으로 제약이 많이 따랐지만, VR 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도장분야 숙련 인력 양성과 도막품질, 비용, 환경 문제를 한 번에 해결할 수 있게 됐다. 한화오션 관계자는 “외국 인력도 쉽게 VR 도장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영어·중국어·베트남어·인도네시아어 등 다양한 언어를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래픽=정다운 기자



거제=안옥희 기자 ahnoh0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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