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은 나의 영양제” “아빠는 한국의 엘비스”
톱가수 아빠 DNA 물려받아 다재다능
빌보드 입성한 작곡가이자 메인보컬
가수 된 뒤 이해하게 된 ‘아빠의 삶’
이젠 ‘음악적 동료’...“듀엣도 꿈꿔”
“우리 아빠, 심신이에요.”
당대 톱스타였던 가수 아빠의 위상은 어디서나 확인할 수 있었다. 식당에서의 ‘반찬 서비스’는 기본. “어릴 땐 어딜 가나 ‘우리 아빠 심신’이라고 이야기하더라고요. (웃음)” 이젠 달라졌다. 데뷔 100일을 갓 넘긴 ‘신생아 그룹’이지만, 벌써 국내외에서 팬덤이 쌓였다. 그룹 키스 오브 라이프(KISS OF LIFE)의 메인 보컬이 된 딸의 인기는 아빠가 먼저 체감한다.
“최근 한 축제에 갔는데, 초등학생 아이가 당연히 전 모르고 키스 오브 라이프 벨은 알더라고요. ‘내가 벨 아빠’라고 신나서 이야기했죠.” (심신)
K-팝 그룹이 된 딸과 90년대 톱스타 아빠. 카카오톡 대화명은 마치 타인처럼 ‘심신’, ‘심혜원’으로 저장된 사이다. “연습생 시절부터 숙소생활을 하고 있어”(벨) 오랜만의 만남이 조금은 어색하지만, 아빠와 딸에겐 서로를 향한 견고한 지지가 쌓였다. 무심함을 가장한 ‘깊은 관심’이 곳곳에 묻어난다. 최근 서울 후암동 헤럴드경제를 찾은 심신(56)과 벨(19·본명 심혜원) 부녀는 “멀리 있지만, 애틋한 마음을 가진 부녀 사이”라며 웃었다.
▶음악 DNA 몰아주기...대를 이어 ‘같은 직업’=심신은 늦게 터진 ‘괴물 신인’이었다. 데뷔 앨범을 낸 건 1990년. 당시 발매한 1집 ‘그대 슬픔까지도 사랑해’는 1년간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그러다 1991년이 되자, 세상을 뒤흔들었다. 앨범은 100만 장 이상 팔렸고, 9주 연속 음악방송 1위에 올랐다. 이후 나온 ‘오직 하나뿐인 그대’, ‘욕심쟁이’가 연타석 홈런을 치며 톱스타 반열에 올랐다. 심신 2집 앨범의 프로듀싱과 음악감독으로 참여한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의 리더 최희선(기타리스트)은 “심신은 1990년대의 BTS만큼 인기가 많았다”며 “훤칠한 키와 외모, 밴드 음악에 바탕을 둬 라이브에도 흔들림이 없는 보기 드문 노래 실력과 무대 매너를 갖춘 당대의 아이돌이었다”고 회상했다.
아빠의 DNA는 고스란히 딸에게 향했다. 초등학교 때부터 피아노와 바이올린을 배웠고, “악보만 보고 빌 에반스를 꽤나 근사하게 연주”(심신)하며 음악적 재능을 보였다. 중학교 땐 작곡을 시작했다. 벨이 ‘음악의 길’을 걷게 된 건 날 때부터 음악과 함께였기 때문이다.
“집에선 언제나 음악을 들었어요. 제 취미가 오디오 수집이에요. 하루에 10시간씩 클래식, 재즈, 퓨전, 팝 등 여러 장르의 음악을 틀어뒀고, 잠든 벨을 안고 엉덩이를 ‘툭툭툭툭’ 두드려주며 리듬을 탔어요.” (심신)
딸에겐 어린시절 아빠의 공연을 따라다니던 기억이 생생하다. 벨의 ‘여행’은 전국 팔도의 무대에 오르는 아빠의 공연에 ‘동행’하는 것이었다. 벨은 “공연을 가는 길엔 쳇 베이커의 ‘마이 퍼니 밸런타인’, 엘비스 프레슬리, 마이클 잭슨, 빌 에반스의 음악을 듣곤 했다”며 웃었다.
아빠의 삶은 ‘딸의 세계’를 차곡차곡 다지는 기반이 됐다. 심신은 “악보를 눈으로 보는 것은 지도일 뿐, 영혼을 담지는 못한다”며 “꾸준히 많이 듣는 것이야말로 진짜 공부가 된다”고 했다. 벨 역시 “자연스럽게 음악에 노출된 환경이다 보니, 그 때부터 음악하는 사람으로의 꿈을 키웠다”고 했다.
사실 딸이 같은 길을 가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다. 어린 벨은 “공부도 잘하고, 말도 잘해 변호사가 되면 좋겠다”는 바람도 있었다고 한다. 재능은 다른 곳에서 발현됐다. “초등학교 땐 전교에서 노래를 가장 잘하는 아이”였다고 한다. ‘딸 바보’ 아빠는 딸 칭찬에 여념이 없었다.
“아리아나 그란데와 같은 음악”을 만들고 싶었던 벨은 중학교 시절부터 독학으로 곡을 썼다. “중3 때였나, 고1 때였나. 자기 방에서 크리스마스 인테리어를 하고 크리스마스 곡을 써서 카카오톡을 보내왔어요. 노래도 직접 부르고요. 굉장히 잘하더라고요. 말은 안했지만, 속으로 대단하다 생각했어요.” (심신) 아빠의 이야기에 벨은 “엄마 생일에 곡을 선물하기도 했고, 어릴 때부터 생활 곳곳에 음악이 있었다”고 돌아봤다. 남다른 딸의 면모를 알아차린 아빠는 그날로 맥북에 작곡 프로그램 로직을 받아 딸에게 줬다. “그 때 아빠가 깔아준 프로그램을 아직도 쓰고 있어요.(웃음)”(벨)
▶빌보드 작곡가이자 새싹 걸그룹...“가수가 돼 이해한 아빠의 삶”=이쯤하면 ‘음악 영재’가 아닐까 싶을 정도다. 벨이 작곡가로 데뷔한 것은 2년 전이었던 열일곱 살 때였다. 걸그룹 퍼플키스 ‘파인드 유’가 벨의 데뷔곡이다. 히트곡이 제법 있다. 키드 밀리의 ‘키티’, (여자)아이들 미연의 솔로곡 ‘소프틀리’를 비롯해 미국 빌보드 차트에 오른 르세라핌의 ‘언포기븐’도 썼다. ‘언포기븐’은 연습생 시절 쓴 곡이다.
심신은 “혜원이가 쓴 곡들을 들으면서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걸 알았다”며 “잘한다, 잘한다, 칭찬만 해주고 있다”고 했다.
“어릴 때부터 아빠에게선 단 한 번도 부정적인 모습을 본 적이 없고, 음악을 사랑하지 않는 모습도 본 적이 없어요. 음악을 향한 그 순수한 마음이 제겐 너무나 투명하게 보였고, 매사에 긍정적인 모습에서 많이 배웠어요.” (벨)
벨은 사실 K-팝 그룹을 꿈꾼 적은 없다. 작곡가로 몸 담았던 기획사가 지금의 소속사(S2엔터테인먼트)로 인수합병하며, 연습생 생활을 하게 됐다. 그 기간이 1년 6개월. 간절함을 가지고 덤벼도 만만치 않은 연습생 시절이 예기치 않게 주어지고, 그룹으로 데뷔까지 하게 되며 벨은 아빠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됐다.
열일곱 살에 음악을 시작한 심신은 “음악이 아닌 다른 일은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가수로서 평생을 산다는 것은 축복”이지만, 오랜 시간 부침도 있었다. 무수히 많은 비가 내려 단단히 굳어진 땅 위에서 그는 지금도 노래를 하고, 곡을 쓴다.
아빠의 삶을 조금 더 이해하게 된 건 같은 일을 하게 되면서다. 2~3시간 쪽잠을 자면서도, 무대 위에선 “10시간을 잔 사람의 모습”을 보여야 하고, 노래부터 퍼포먼스까지 실수 없이 완벽한 무대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상당했다. 메인 보컬로서 “예측 불가능한 상황에 대처할 만한 강한 보컬 기본기를 키우는 것”(벨)도 어려움이었다. 벨은 “작곡가의 삶과 아이돌의 삶은 생활 패턴 자체가 정반대라, 지금의 모습은 인간승리”라며 웃는다.
▶이젠 ‘음악적 동료’...“아빠는 한국의 엘비스, 딸은 나의 영양제”=아빠와 딸은 이제 음악적 동료가 됐다. 심신은 딸을 한 사람의 작곡가이자 프로듀서, 후배 가수로 지켜본다. 키스 오브 라이프의 곡엔 조언도 많이 해준다. 벨은 “훅(Hook·귀에 걸리는 구절)에서 록스타처럼 들리도록 강하게 불러 보라거나, 이곳에선 기타 리프가 더 튀어나와야 할 것 같다는 피드백을 준다”고 귀띔했다. 오는 8일 컴백을 앞둔 딸의 새로운 콘셉트 사진도 시시각각 확인한다. “여자 엘비스 프레슬리 같지 않냐”며 칭찬이 마르질 않는다.
어느 밤에 작곡한 노래엔 도무지 가사가 떠오르지 않아, 딸에게 SOS를 보냈다. 미발표곡 ‘이밤’이다. 아빠가 곡을 쓴 노래에 딸이 가사를 쓰고, 녹음까지 해서 보컬의 방향도 일러줬다. 심신은 “혜원이의 나이대에만 느낄 수 있는 감성이 담겨 너무나 좋았다”고 했다. 벨은 그 누구보다 가수 심신을 잘 아는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다.
“사실 어릴 땐 아빠 음악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어요. 노래를 들어도 새침하게 ‘이게 뭔데?’ 그랬죠. 활동을 하면서 아빠 음악을 하나씩 찾아 듣게 되더라고요. 제가 생각하는 아빠의 최고 명곡은 ‘그대 슬픔까지 사랑해’예요. 재지(jazzy)한 분위기의 소울풀(soulful)한 음악은 아빠의 큰 장점이자 누구도 흉내낼 수 없는 부분이에요.” (벨)
같은 길을 걷게 된 부녀는 언젠가 듀엣 활동도 꿈꾼다. 딸은 “조금 더 어른이 되면 아빠와 듀엣을 해보고 싶다”고 했다. 딸의 이야기에 심신은 “빠른 곡을 써서 아빠를 소울 싱어로 만들어 달라”며 웃었다.
“아빠는 한국의 엘비스 프레슬리처럼 자유로운 음악가예요. 모두가 자유로운 영혼이라고 하지만, 저는 지금껏 심신만큼 자유로운 예술가는 본 적이 없어요. 진정한 자유는 내면으로부터의 자유라고 생각하는데, 아빠는 오래 전부터 그걸 이뤄낸 사람인 것 같아요. 그런 아빠를 존경해요.” (벨)
“혜원이는 저의 ‘정신적인 영양제’예요. 태어나 존재한다는 것만으로 효도는 이미 다했죠. 혜원이한텐 아직 자신도 발견하지 못한 잠재력이 무한대로 있어요. 그것들을 한꺼번에 꺼내려 하지 말고 천천히 꾸준히, 그리고 행복하고 기쁘게 음악을 했으면 좋겠어요.” (심신)
고승희 기자
sh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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