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생닭 벌레’에도 그저 브랜드 홍보…그날 하림이 간과한 것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lee.sanghyun@mkinternet.com) 2023. 11. 2. 1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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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이 지난 1일 서울 청담씨네시티에서 진행된 기자간담회에서 신규 브랜드 ‘푸디버디’를 소개하며 발언하고 있다. [이상현 기자]
“친환경이라 그렇다.”

사진을 보는 사람마다 구역질했다고 할 정도로 심각한 식품 위생 논란이 일어났는데도 사과는 형식적이었다. 재발 방지 이야기는 마지못해 한 수준이었고, 그마저도 수일이 늦었다. 국내 육계 사업 1위 기업, 하림의 이야기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은 지난 1일 서울 청담씨네시티에서 열린 신규 어린이식 브랜드 ‘푸디버디’ 기자간담회에서 취재진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생닭 제품에서 딱정벌레 유충이 한주먹이나 발견된 것으로 알려진 지난달 27일 이후 5일 만이었다.

이 자리에서 김 회장은 ‘네 아이의 아버지’임을 공개하는 한편, 자사 제품이 믿고 먹을 수 있는 먹거리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 이하 임직원들이 부모의 마음으로 신규 브랜드 푸디버디를 만들어 냈다는 게 그의 설명이었다.

간담회에서는 김 회장 자녀들의 어린 시절 모습을 담은 영상이 공개됐고, 푸디버디 브랜드 매니저들의 자녀들까지 등장했다. 엄마·아빠의 손을 꼭 잡고 열심히 외웠을 문구를 떠듬떠듬 풀어낸 아이들의 귀여움과 별개로 하림의 진정성은 느껴지지 않았다.

간담회 후 백프리핑이 이뤄지기 전까지 위생 논란에 대한 언급은 일절 없었다. 논란이 불거진 뒤 그간 공식 사과를 담은 보도자료나 설명자료도 일절 없었다. “친환경 농장”, “인체에 해가 없다”, “앞으로 잘하겠다”는 김 회장의 이날 말이 전부였다.

김홍국 하림그룹 회장(가운데)이 지난 1일 오전 서울 강남구 청담씨네시티에서 열린 ‘푸디버디’ 브랜드 론칭 행사에서 직원들과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 출처 = 연합뉴스]
신규 브랜드 출시를 앞둔 상황에서 논란이 불거지는 게 하림에 부담이 됐을 수는 있다. 제품이 제대로 공개되기 전부터 브랜드 이미지가 실추되는 게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최소 몇 달, 길게는 몇 년을 준비했을 푸디버디가 초기부터 위축되는 건 누구도 원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하림이 간과한 사실이 있다. 식음료 사업에서 위생 논란은 ‘역린’이란 점이다. 백번 양보해 제조·공정 과정에서 벌어질 수 있는 일이라고 해도 신규 브랜드 출시 전에 사과하는 게 맞았다. 벌레가 나온 건 실수였어도 모른 척 귀 닫고 눈 감은 태도가 잘못이란 이야기다.

익명의 한 하림 공장 관계자는 “문제가 심각하다. 누구 하나 날아갈 것(해고될 것) 같다”며 “(하림이 논란을) 막을 수 없어 수습을 포기한 것 같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밖에서는 애써 소극적인 척해도 사내에서는 그 심각성을 십분 인지하고 있다는 것이다.

오죽하면 식품의약품안전처까지 나섰겠는가. 식약처는 지난달 말 하림에 경고 조치를 내리는 동시에 재발방지책 수립을 요구했다. 친기업 정책을 표방 중인 현 정권에서 공공부처가 대기업을 향해 이렇게까지 나서는 것도 참 드문 일이다.

최근 ‘오줌 맥주’로 논란이 된 칭따오맥주 사태를 잠시 떠올려본다. 중국 공장에서 작업자로 추정되는 이가 원료에 소변을 보는 듯한 영상이 공개되자 브랜드에 직격탄이 됐다. 지난달 23일 상하이 증시가 개장하자 칭따오맥주 시가총액은 67억위안(약 1.2조원)이 증발했다.

중국 이야기, 남의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네 먹거리, 국산 닭 이야기다. 어른들도 믿고 먹지 못할 기업이 어린이식 브랜드를 냈다면 그걸 제 자식에 쉽사리 먹일 부모가 있겠나. 그 옛날 ‘용가리 치킨’을 먹고 자란 세대로서 하림의 책임감 있는 경영을 기대해본다.

이상현 매경닷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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