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임스웹, 9억광년 우주서 거대한 ‘중금속 제조공장’ 실체 확인

곽노필 기자 2023. 11. 2.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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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성자별 합병 포착…지구 300개 질량 텔루륨 생성 추정
쌍을 이루고 있는 2개의 중성자별이 합쳐지는 모습(상상도). 나사 고다드우주비행센터 제공

별은 뜨거운 중심부에서 핵융합을 일으키며 여러 원소를 만들어낸다. 우리 몸을 비롯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과 물체를 구성하는 탄소, 산소, 질소 등 다양한 원소들은 이렇게 생겨났다. 일생을 마친 별들이 우주 공간에 흩뿌린 이 원소들은 우주먼지가 되어 떠돌다 이곳까지 흘러와 지구와 생명을 만들었다.

하지만 철(원자번호 26)보다 무거운 원소(중원소) 또는 중금속은 핵융합 반응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이보다 무거운 원소가 만들어지려면 훨씬 더 강력한 에너지가 필요하다. 그런 에너지를 만들어내는 가장 격렬한 우주 현상 가운데 하나가 킬로노바다.

킬로노바란 쌍을 이루는 두개의 중성자별이 어떤 이유에서인가 서로 가까워지다 충돌하면서 폭발하는 현상을 말한다. 이때 가장 큰 에너지를 갖고 있는 전자기파인 감마선이 분출된다. 중성자별이란 말 그대로 중성자로만 이뤄진 별이다. 태양의 10배 이상 무거운 별이 마지막에 초신성(슈퍼노바) 폭발을 일으킨 후, 남은 핵이 중성자별이 된다. 초신성 폭발로 인한 중력 붕괴로 핵에 있는 양성자와 전자가 결합하면서 중성자별이 탄생하는 것이다.

미국 매사추세츠공대(MIT)를 비롯한 천문학 국제 공동연구진이 제임스웹우주망원경(JWST)의 감마선 폭발(GRB) 관측을 통해, 이것이 지구에서 9억광년 거리에 있는 한 쌍의 중성자별이 병합하면서 만들어낸 것임을 발견했다. ‘GRB 230307A’라는 이름의 이 감마선 폭발은 밝기가 보통 감마선 폭발의 약 1000배로, 지금까지 관측한 것 중 두번째로 밝다. 연구진은 특히 폭발의 여파로 무거운 원소가 생겨난 직접적인 증거를 처음으로 찾아냈다. 우주의 중원소 제조공장 실체를 확인한 셈이다.

연구진이 스펙트럼 분석을 통해 발견한 중원소는 약간의 독성이 있는 텔루륨(원자번호 52번)이다. 텔루륨은 지구에선 백금보다 드물지만 우주 전체에는 풍부하게 분포해 있는 물질이다. 주로 합금을 만드는 데 쓰인다.

연구진은 관측 결과 중성자별 충돌로 인해 생겨난 텔루륨의 양이 무려 지구 질량의 300배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됐다고 밝혔다. 또 이로 미뤄볼 때, 이곳에는 지구상 생명체의 대부분에 필요한 요오드 등 주기율표에서 텔루륨 근처에 있는 다른 원소들도 존재할 가능성도 크다고 덧붙였다.

이번 발견은 중성자별 합병이 중원소의 공급원임을 확인해준 의미가 있다. 분석을 이끈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앤드류 레반 교수(천체물리학)는 “멘델레예프가 원소 주기율표를 만든 지 150여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마침내 모든 것이 어디에서 만들어졌는지 이해하는 마지막 공백을 메우기 시작할 수 있는 자리에 섰다”고 말했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의 근적외선 기기로 촬영한 GRB 230307A 킬로노바와 12만광년 거리에 있는 모은하. 나사 제공

역대 두번째 밝은 감마선 폭발의 진원지

이번 발견에는 제임스웹망원경을 비롯해 테스우주망원경, 칠레의 초거대망원경(VLT) 등 우주와 지상의 여러 망원경이 동원됐다.

처음 폭발을 관측한 건 지난 3월7일 고도 550km의 궤도를 돌고 있는 나사의 페르미 감마선 우주망원경(약칭 페르미)을 통해서였다. 과학자들은 이 폭발이 이례적으로 밝은 감마선 폭발이라고 보고 이를 ‘GRB 230307A’라고 명명했다.

당시 MIT 연구원(현 텍사스공대 교수) 마이클 파우스너는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밝았다”며 “감마선 천문학에서는 보통 개별 광자를 세는 것이 일반적인데 너무 많은 광자가 들어와서 검출기가 개별 광자를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고 말했다.

중성자별의 병합 또는 충돌에서 일어나는 감마선 폭발의 지속시간은 보통 2초 미만이다. 한 번 깜박이는 정도다. 반면 이번 폭발은 그 100배인 200초 동안 지속됐다.

이례적인 현상에 세계 천문학자들이 다른 망원경들을 이용해 이를 집중 관측하기 시작했다. 천문학자들은 여러 곳의 관측 데이터를 종합한 결과 감마선 폭발의 위치가 남쪽 하늘의 테이블산자리라는 걸 알아냈다.

제임스웹우주망원경을 통해 발견한 텔루륨 스펙트럼(빨간색 막대). 나사 제공

12만광년 거리의 모은하에서 탈출한 듯

그렇다면 중성자별의 합병 자체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을까?

연구진은 우주망원경 가운데 가장 멀리 볼 수 있는 제임스웹의 적외선 관측력에 기대를 걸었다. 그 결과 이 중성자별 쌍에서 가장 가까운 은하가 약 12만광년 떨어진 곳에 있다는 걸 확인했다.

연구진은 이 은하가 중성자별의 모은하였으며, 중성자별은 이 은하에서 쫓겨난 것으로 추론했다. 쌍성계를 이루고 있던 거대한 한 쌍의 별이 생의 말미에 중성자별로 붕괴되는 과정에서 모은하에서 벗어난 뒤, 수억년에 걸쳐 서서히 합쳐졌다는 것이다.

제임스웹은 하나로 합쳐진 중성자별에서 방출하는 에너지에서 텔루륨의 명확한 신호도 감지했다. 이는 감마선 폭발이 중성자별 합병에 의한 것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해주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번 발견은 제임스웹망원경엔 시작에 불과하다”며 앞으로 몇년 안에 더 많은 중성자별 합병이 제임스웹을 통해 관측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논문 정보

https://doi.org/10.1038/s41586-023-06759-1

Heavy element production in a compact object merger observed by JWST. Nature(2023).

곽노필 선임기자 nopi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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