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도 스포츠? 과학적 근거 충분합니다"
"e스포츠, 눈·손 협응 중요"…스포츠과학 중요성 강조
(서울=뉴스1) 박소은 기자 = e스포츠는 게임일까, 스포츠일까. 최근 폐막한 항저우 아시안게임에 e스포츠가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며 e스포츠 및 스포츠 관계자, 팬 사이에서 갑론을박이 오갔다.
운동 선수가 각 종목에 맞게 몸을 쓰는 것은 '뇌' 덕분이다. 몸을 어떻게 움직여야 한다는 정보가 뇌에서 우선 처리된 후에 신체 반응으로 이어지는 것이다. 이를 근거로 'e스포츠도 스포츠'라고 강조하는 이가 있다.
최근 서울시 노원구 태릉선수촌에서 만난 장태석 스포츠정책과학원 연구위원은 "e스포츠의 경우 (뇌에서) 그 반응이 더 빠르게 나온다"며 "뇌에서 명령을 내려 움직임을 나타내는 '소근 활동(손 운동)'도 뇌 명령에 따른 움직임이라 보기 때문에 통상의 운동 선수와 다를 바 없다"고 말했다.
장 연구위원은 특히 움직임이 많은 종목만이 스포츠로 꼽히는 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간 e스포츠가 스포츠 영역에서 배제된 이유 중 하나도 신체 활동이 부족하다는 점이었다.
그는 "e스포츠가 움직임이 없다고 하는데, 사격도 큰 움직임을 필요로 하는 종목은 아니다"라며 "신체 움직임 여부보다는 뇌 조절 자체가 더욱 중요한 요소"라고 설명했다.
장 연구위원은 사격·양궁 국가대표팀의 훈련 프로그램을 다수 설계한 베테랑이다. 스포츠과학 밀착지원 시스템 구축, 경기력 향상을 위한 스포츠과학 지원 매뉴얼 제작을 비롯해 e스포츠 국가대표를 위한 과학지원 연구도 진행했다.
이번 항저우 아시안게임 준비 과정에서도 4개 종목(FC온라인·스트리트 파이터 V·리그 오브 레전드·배틀그라운드 모바일) 대표팀을 대상으로 기술·영상·심리·체력(컨디셔닝) 프로그램을 설계하고 지원했다. 아이트래커(시선 추적 장치)·fNIRS(뇌 활성화 상태 측정 장비)·타이밍 기기 등 다양한 기술이 동원됐다.
장 연구위원은 "실제 선수들이 긴장하거나 불안을 느끼면 뇌의 특정 영역에서 활성도가 평소와 다르게 나타난다"며 "그런 현상을 포착하면 상담을 통해 불안 정도를 조절할 수 있다"고 말했다.
e스포츠협회와의 협업도 두드러졌다. 대회 개최 약 4개월 전 e스포츠협회는 항저우 e스포츠 경기장에 직접 방문해 현장 점검을 진행했다.
장 연구위원은 "VR 및 액션카메라로 경기장 영상을 찍어달라고 부탁드렸다"며 "이를 활용해 입장부터 경기까지 체험할 수 있는 영상을 만들었고, 선수들은 VR기기를 통해 시뮬레이션 훈련을 진행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연습 때 기량 이상을 실제 경기에서 기대하는 건 과욕이라고 단언했다. 스포츠정책과학원의 훈련 프로그램 초점도 여기에 뒀다. 그는 "평소와 같은 실력을 내기 위해 방해 요소들을 제거하는 데 방점을 찍었다"고 설명했다.
장 연구위원은 "선수 개별적으로 불안감이 크면 왜 그런지, 경기 때 어떻게 조절할 것인지를 중점적으로 봤다. 자신감이 너무 높아도 낮출 필요도 있었다"고 했다.
이어 "팀 스포츠의 경우 특정 선수의 제스처가 과도하거나 굳이 안해도 될 플레이를 하면 팀원 간 불신이 생긴다"며 "팀의 목표 달성에 주안점을 뒀다"고 덧붙였다.
e스포츠가 항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전 종목 메달을 석권한 만큼 업계가 자리 잡는 계기로 이어졌으면 하는 게 그의 바람이다. 특히 스포츠정책과학원을 비롯해 선수·지도자·e스포츠 협회가 하나의 팀으로 움직인 경험이 큰 밑거름이 될 것이라 봤다.
장 연구위원은 "e스포츠는 눈과 손의 협응이 매우 중요하고 빠른 판단을 해야 하는 종목"이라며 "선수들이 실제로 보는 것과 반응하는 것 사이의 차이를 규명해 협응 관련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e스포츠 선수들이 최상의 경기력을 내기 위해선 스포츠과학이 필요하다"며 "선수 개개인에 맞춰 체력·심리·영상 분석을 지원한 경험이 앞으로도 이어지길 바란다"고 했다.
soso@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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