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의 정치사기] 고려 김위제·묘청의 눈으로 본 `김포 서울 편입론`
"고려의 땅에는 서울이 세 곳 있는데, 송악(현 개성)은 중경, 목멱양(남산 북쪽)은 남경, 평양은 서경이 됩니다. 왕께서 11월~2월은 중경, 3월~6월은 남경, 7~10월을 서경에서 지내면 주변 36개 나라가 조공을 바칠 것입니다. 또 <도선답산기>에는 '160여년 뒤 목멱양에 도읍을 정한다'고 나와있습니다. 개경이 쇠락한 뒤 목멱양으로 도읍을 옮기면 한강(漢江)의 어룡(魚龍)이 사해(四海)까지 오가며 태평성대를 이룰 것입니다."
고려 숙종 원년(1096년) 술사 김위제가 숙종에게 고한 내용이다. 땅을 보고 미래를 예언하는 풍수도참설을 근거로 수도를 개경에서 서울로 옮겨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다. 후삼국을 통합한 936년을 기점으로 하면, 개국 후 꼭 160여년이 되는 해였다. 우연이라 하기엔 너무 적절한 시점이다.
김위제가 도선의 예언을 빌려 제기한 수도천도론은 숙종의 욕망을 제대로 건드렸다. 쿠데타를 일으켜 조카(헌종)를 반 강제로 내쫓고 권좌를 차지한 숙종은 정통성 확보에 목이 말라 있었다. 할아버지인 현종을 기리는 사찰이 있는 남경은 왕실의 권위를 강화하기 위한 최적지였다. 개경 이남에 새로운 거점도시를 만들고, 자신에게 힘을 실어줄 배후 세력을 육성하기도 좋은 지역이었다. 결국 숙종은 남경개창도감을 설치한 뒤, 막대한 국가재정과 백성을 동원해 궁궐을 지었다.
"서경 임원역의 지세는 음양가들이 말하는 대화세(大華勢)에 해당합니다. 만약 그곳에 궁궐을 세우면 가히 천하를 아우르게 되니 금이 예물을 가지고 스스로 항복해 올 것이며 36국이 신하가 될 것입니다."
32년 뒤에도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고려 인종 6년(1128년), 왕실 고문인 승려 묘청도 숙종의 손자 인종에게 서경천도론을 건의했다. 풍수도참설을 활용한 것도 판박이다.
인종은 솔깃했다. 장인인 이자겸의 반란을 겪고, 대외적으로 금(여진)이 위협해오는 상황에서 분위기를 쇄신하고 싶었다. 앞서 1년 전 서경에 행차해 백성에 대한 세금 경감과 침탈 금지,구휼기관 정비, 교육과 관리선발제도 강화 등의 내용이 담긴 유신(維新)의 개혁교서를 발표한 터였다. 결국 인종도 묘청의 주장에 따라 서경에 궁궐을 신축했다. 엄동설한이라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는데도 그대로 강행했다.
숙종과 인종의 욕망을 꿰뚫고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킨 김위제와 묘청, 그들은 국민의힘이 제시한 '김포 서울편입론'을 어떻게 볼까. 시대는 다르지만 같은 맥락으로 볼 것이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지난달 31일 "선거용 전략이 아니다"라고 밝혔지만, 실제는 집값 상승 기대심리 등 유권자의 욕망을 건드렸다. 김포 부동산 시장은 벌써부터 들썩이기 시작했다. 서울 편입이 되면 고질적인 교통 문제가 해결되고, 집값도 따라 올라갈 것이라는 기대감이 반영되고 있는 셈이다.
김포 시민들도 싫지는 않은 분위기다. 취재를 해보면, 실현가능성에 '반신반의'를 할 뿐 무조건적으로 반대하진 않는다. 민주당 일각에서도 "사람들의 욕망과 가장 맞닿아 있는 부분을 제대로 공략했다"는 평가까지 나온다.
그러나 '김포 서울 편입론'은 유권자의 욕망만 겨냥한 총선용 정치 이벤트가 돼선 곤란하다. 다시 고려 숙종 인조 시기로 돌아가보자. 김위제가 제기한 남경천도는 지속되지 못했고, 묘청의 서경천도론은 사기극으로 끝이 났다. 당시 국가 재정과 백성이 져야하는 역의 부담, 대외 정세를 면밀하게 파악하지 않고 추진한 탓이다. '김포 서울 편입론' 역시 마찬가지다. 지금도 심각한 수준인 서울 집중 현상과 지방 불균형 문제, 교육의 동향, 교통·환경 등 따져볼 게 한둘이 아니다.
이 때문에 김포 편입을 통한 서울 확장전략은 장기적 관점에서 신중하게 이루져야 한다. 사회적 공론화 과정에서 여론을 폭넓게 수렴하고, 전문가 의견을 충분히 듣는 건 당연하다. 유권자들의 욕망에만 골몰해 즉흥적으로 추진한다면 후유증은 자명하다. 고려시대 '남경 천도론'과 '서경 천도론'은 반면교사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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