쏘울픽쳐스 조재연 대표 "제작사 위기? 우리에겐 기회죠"[인터뷰S]
[스포티비뉴스=장진리 기자] 모두가 ‘위기’라고 할 때 ‘기회’라고 외치는 제작자가 있다. 회계사로 출발해 ‘검사내전’, ‘이 구역의 미친X’ 등 사람들이 사는 이야기를 들여다보는 콘텐츠 제작자가 된 쏘울픽쳐스 조재연 대표다.
조재연 대표는 대한민국 4대 회계법인이라 불리는 삼일회계법인 회계사 출신이다. 콘텐츠 제작자로는 꽤 이례적인 이력이다. 숫자의 세계에서 그를 창작의 세계로 불러낸 것은 ‘행복’에 대한 고민이었다.
조 대표는 “초등학교를 일본에서 다녔는데 한국인 학교를 다니다 보니 주변에 친구가 없어서 자연스럽게 TV를 많이 봤던 것 같다. 이후에 대학을 가고 회계사가 됐는데, 좋은 대학 가고, 좋은 회계법인을 가면 끝일 줄 알았는데 경쟁이 끝이 없더라. ‘이러다가는 진짜 행복하게 살 수 없겠다’ 싶어서 재밌는 일을 해봐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했다.
이어 “일을 하다 드라마 관련 회사 실사를 하게 됐는데 그 일이 너무 재밌었다. 회계사가 하는 일이 밸류에이션(기업가치평가)하고, 회사를 매각하는 일인데 콘텐츠 관련된 일이 정말 재밌었다. 그때 ‘이쪽이 내가 가야 하는 길이다’ 싶었다”라고 말했다.
확신은 우연한 기회를 가져다줬다. 당시 초록뱀미디어 대표가 그에게 입사를 제안한 것. 조 대표는 “당시 대표께서 한국의 디즈니를 만드시겠다는 생각을 하시고, 제게 ‘미디어그룹으로 가는 브레인이 돼 달라’는 제안을 하셨다. 당시 저는 미국으로 해외 파견이 결정돼 있었는데, 그렇게 미국에 가게 되면 회계사 일을 그만두는 게 어려워질 것 같았다”라고 당시의 고민을 털어놨다.
그러면서 “공교롭게도 송별회가 있던 날 아침, 축구를 했는데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부상을 입어 미국 출국이 6개월 미뤄졌다. 한 달을 누워 있으면서 ‘미국에 가는 게 맞나’ 생각을 했고, 비슷한 시기에 CFO(최고 재무 관리자) 제안을 받았다. 고민하다가 가겠다고 했는데 CFO는 다른 분이 오셨고, 기획팀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저는 재무를 담당하지 않는 조건으로 기획팀장으로 갔다”라고 제작에 발을 들이게 된 운명 같은 상황을 설명했다.
이후 조재연 대표는 초록뱀미디어 CFO까지 역임했고, 최대주주로 회사를 인수했다. ‘일지매’, ‘추노’ 등 한국 방송계에 한 획을 그은 작품이 그가 초록뱀미디어를 경영하던 시절 탄생했다. 이후 조재연 대표는 “내가 회사를 직접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에스피스라는 제작사를 설립, ‘마이 리틀 베이비’, ‘검사내전’, ‘이 구역의 미친 X’ 등 다양한 장르의 드라마를 제작해 히트시켰다.
최근 에스피스는 쏘울픽쳐스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새 출발했다. 회사 이름뿐만 아니라 기획 시스템까지 획기적으로 변혁한 진정한 ‘리론칭’이다.
조재연 대표는 “OTT가 여러 개 생겨났고 동시에 지상파 시스템이 무너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고, 수요가 확실히 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제는 기회가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원래는 1년에 1편 하는 회사였다면, 이제는 1년에 6편 하는 회사를 하자고 했다. 회사의 기획 시스템도 바꾸고, 내용도 바꾸면서 준비를 했다”라고 말했다.
‘피스 오브 쏘울(영혼의 조각)’이라는 의미였던 사명에서 ‘쏘울’을 뽑아 대대적으로 내세웠다. 이 ‘쏘울’이라는 말이 바로 쏘울픽쳐스와 조재연 대표가 작품으로 보여주고 싶은 가장 명징한 메시지이기도 하다.
사명을 설명하며 조 대표는 디즈니 영화 ‘소울’을 빗대 설명했다. ‘소울’은 태어나기 전 세상을 체험한 한 재즈 뮤지션의 일화를 통해 ‘진짜 나의 모습’을 제대로 바라보는 작품이다. 진정한 나와 내 삶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소울’처럼, 시청자들이 쏘울픽쳐스와 쏘울픽쳐스가 만든 작품을 통해 우리의 진정한 ‘본질’을 들여다보길 원한다는 것이다.
“저도 사실 계속 비교하면서 살았어요. 처음에는 히트 작가가 계속 히트만 하는 줄 알았죠. 그런데 보니까 됐다, 안됐다 이런 기복이 있는 거예요. 흥행의 비결이 뭘까 생각했더니, 취재를 제대로 하면 대박이 난다는 거였죠. 드라마틱하다는 건 곧 리얼리티랑 같은 말이더라고요. 취재를 하다 보니 사람들마다 다 드라마틱한 자신만의 스토리가 있었어요.
모두가 드라마틱한 인생인데, 그걸 주연으로 살 것이냐 조연처럼 살 것이냐의 느낌이라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저도 주연으로 살아야겠다, 그럼 주연으로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하는 행동처럼 해야겠다는 결론이 났어요. 그래야 드라마도 시청률이 높아지는 것처럼요.
검사가 어떻게 하면 좋은 검사가 되나, 검사를 하면서 어떻게 행복할 수 있는가, 검사 생활을 하면서 어떻게 재밌게 살 수 있나를 고민하고 취재하고 만든 게 ‘검사내전’이었어요. 이런 것처럼 사람들이 인생에서 주연이 되는 방법을 드라마로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에요. 그런 드라마를 만들다 보면 경쟁할 일이 없어요. 우리가 원작을 살 때도 있지만, 본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것만 사고, 발전시키거든요.”
쏘울픽쳐스는 2024년 새 작품으로 ‘검사내전’으로 호흡을 맞춘 이현 작가의 신작 ‘커넥션’을 준비 중이다. ‘커넥션’은 50억 보험금을 남기고 숨진 한 고등학교 친구의 죽음을 추적하며 드러나는 친구들의 변질된 우정을 그린 범죄 수사 스릴러로, 지성, 전미도 등 ‘믿고 보는 배우’들이 캐스팅 물망에 올랐다. ‘커넥션’ 외에도 리디에서 연재된 인기 웹툰이자 서울웹툰공모전 수상작으로, 호텔을 배경으로 한 삼각관계를 그린 ‘좋아질까 사랑일까’를 비롯해 시트콤, 재난물 등 다양한 작품 기획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코로나 팬데믹을 거친 방송계는 최대 위기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오고 있다. ‘오징어 게임’ 등 K-콘텐츠가 신드롬을 불러 일으키며 전 세계를 뒤흔들었으나, 제작사 등 방송계는 오히려 역성장하고 있는 추세다. 경기가 침체되며 광고 수입이 줄었고, 각 방송사에서는 거액의 제작비가 투입되는 드라마 편성 띠 줄이기에 나섰다. 스타 캐스팅에 성공한 작품마저 촬영을 마치고서도 플랫폼을 찾지 못해 표류하는가 하면, 캐스팅까지 공개된 후에도 제작이 무산된 작품이 부지기수다. 설상가상으로 OTT 역시 적자폭이 누적되고 있다.
반면 조재연 대표는 “위기가 곧 기회”라고 강조했다. 그는 “10년이 지나면 한 번씩 사이클이 온다. 2005년에도 이런 비슷한 위기와 기회가 똑같이 있었다. 예전에는 드라마 제작사가 어떻게 재원을 조달할까를 고민했었다면, 해외 OTT들이 들어오면서 그런 개념이 사라졌다. 제작사가 어느 순간 하청 같은 느낌이 된 거다. 제작자의 역할은 어떻게 하면 적은 예산에 더 좋은 작품을 만들지를 고민하는 것이다. 또 어떻게 좋은 작품을 널리 판매할지를 고민하는 것이 제작자인데, 이런 상황을 이미 우리는 준비를 한 거라고 볼 수 있다. 돈이 안 되는 기획을 했으니까 그런 것 같은데”라고 웃었다.
그러면서 “규모가 크다고 해서 다 재밌는 건 아니다. 잔잔한데 재미가 있는 드라마를 하는 것도 우리의 몫이다. 지금 만드는 드라마, 또 만들 준비를 하고 있는 드라마 역시 어떻게 살아가고, 사랑하고, 또 세상을 변화시키는지를 다루는 것이 핵심이다. 오히려 지금 저희한테는 기회가 왔다고 생각한다. 저희는 인기 있을 것 같은 얘기가 아니라, 사람들이 필요로 하는 얘기를 하는데 지금 딱 우리가 하는 얘기가 필요한 시기가 오지 않았을까. 호황일 때는 상관없지만, 지금처럼 단 한 편을 편성해야 한다면 무슨 얘기를 해야 할지 방송사나 플랫폼에서도 고민하시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조재연 대표는 쏘울픽쳐스를 통해 제작뿐만 아니라 배급이라는 큰 그림까지 그리며 뚜벅뚜벅 나아가고 있다.
“제작 일을 시작하면서 직접 플랫폼에서 우리가 배급도 하자는 게 목표였어요. 그때도 될듯말 듯 하면서도 쉽지가 않았거든요. 그리고 이제는 진짜 플랫폼의 대변화가 일어나고 있죠. 콘텐츠를 만들면서 배급할 수 있는 기회가 수년 안에 올 거라고 생각해서 시스템을 그때까지 만들어 놓자는 거예요. 10년 정도 뒤의 미래엔 무슨 형태든지 직접 배급하는 채널 사업을 하고 있을 것 같아요. 방송국이 제작사를 차리는 것처럼, 그런 시대가 곧 올 텐데 저희가 그런 사람 중 하나였으면 좋겠어요. 콘텐츠를 만든 사람이 직접 배급하는 건 방송계의 흐름이 될 텐데, 그게 저희가 될지는(웃음). 희망사항이지만 하고자 하는 것이 목표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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