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수 총선 시계는 째깍째깍…운동장 몰라 허둥지둥[판읽기]

전남CBS 최창민 기자 2023. 11. 2. 07: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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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 주
전남노컷의 '판읽기'는 전남CBS 기자들이 전남동부 지역의 이슈를 파고들어 가감 없이 풀어내는 공간입니다. 사안의 맥락을 짚어내고, 깊이 있게 해석해 드리겠습니다.
전남 여수 도심 일대에 게첨된 김회재 의원 현수막. 김회재 의원 제공

추석 명절을 한 달여 앞둔 지난 8월. 전남 여수 정치권에서는 의정 현수막을 놓고 볼썽사나운 모습이 연출됐습니다.

같은 당인 더불어민주당 여수갑 주철현 의원과 여수을 김회재 의원이 서로 자신의 선거구 경계를 넘나들며 의정 현수막을 게첨하면서 신경전이 벌어졌고, 급기야 여수시선거관리위원회가 조사에 나선 겁니다.

김회재 의원은 8월 18일 자신의 SNS를 통해 "주철현 의원측에서 KTX 전라선 고속화사업 현수막을 걸었다고 선거법 위반으로 신고했다"면서 "어떻게 해서든지 사업착공을 위해 노력하고 있고 대통령 공약사항이기도 한데 대체 뭐가 허위사실이고 뭐가 선거법 위반이냐"고 반발했습니다.

이에 주철현 의원측은 "선거법 위반 신고를 한 것이 아니라 사전 선거운동이 아니냐고 질의를 한 것"이라며 김 의원의 주장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습니다.

관련 내용의 신고를 접수한 여수시선거관리위원회는 김 의원의 경계를 넘어선 현수막에 대해 허위사실에 따른 선거법 위반이나 사전선거운동이 아니라고 판단했습니다.

선관위 관계자는 "해당 의정 현수막의 문구와 전후 맥락을 종합해 판단했을 때 위반이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예를 들어 갑 선거구 국회의원이 을 선거구에 나올 목적으로 을 선거구에 의정 현수막을 게첨하면 사실상 사전선거운동 효과를 누린다고 볼 수 있다"면서도 "선거구 경계를 넘었다고 해서 바로 법 위반이 성립하는 것은 아니고 게첨 전후 경위, 내용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요약하면 선거구 경계가 정해지지 않은 상황에서 경계를 넘는 의정 현수막을 사전선거운동으로 판단하긴 어렵다는 겁니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 회의장. 류영주 기자


선관위 조치를 떠나 의정 현수막 게첨을 놓고 이런 신경전이 벌어지는 것은 내년 총선 선거구 획정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2024년 4월 10일로 예정된 제22대 국회의원 총선거가 160일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5개월 가량 남은 건데 국회는 선거구 획정은 물론, 중대선거구 도입 여부와 연동형 비례대표제 등 선거제도도 확정하지 못했습니다. 축구로 비유하면 운동장을 알 수 없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경기 규칙도 정하지 못한 겁니다.

전남 동부권만 놓고 보면 지역 경계가 맞물려 있는 순천과 여수, 광양 3개 시 모두 인구수에 맞춰 조정이 필요한 상황입니다.

여수갑 선거구는 인구수 최소 조건에 9772명이 미달하는 것으로 나타나 합구가 필요한 선거구로 분류됐습니다. 반면 순천시의 경우 선거구 상한선을 넘긴데다 여수보다 인구가 많은 만큼 분구가 이뤄져야 합니다.

순천 정치권은 여야를 막론하고 순천갑·을 등 순천만의 온전한 분구를 주장하고 있습니다.

현재 여수시만 전남에서 유일하게 2개 선거구를 유지하고 있지만, 이제 순천시가 여수시 인구를 넘어선 만큼 순천시가 2개 선거구를 가져야 한다는 주장이 타당해 보입니다.

그러나 사정은 그렇게 호락호락하지 않습니다. 여수 정치권은 여수을 선거구에서 일부 지역을 떼어내 여수갑 선거구에 편입시켜 인구수 최소 조건을 맞추면 현재의 2개 선거구 유지가 가능하다는 주장도 나옵니다. 유권자가 8000명 가량인 둔덕동 등을 여수을 선거구에서 떼어내 여수갑 선거구에 편입시키는 이른바 게리맨더링입니다.

또 일각에서는 순천과 여수를 하나로 묶어 3개로 분구하는 순천·여수갑, 순천·여수을, 순천·여수병 시나리오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어떤 경우든 현재의 순천·광양·곡성·구례 갑·을 선거구도 조정이 불가피합니다.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헌법재판관들. 황진환 기자


이런 와중에 헌법재판소는 지난달 26일 지난 21대 총선 당시 순천시 선거구에서 해룡면을 떼어내 광양시에 통합한 선거구 획정이 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판단했습니다.

선거구 인구 상한인 27만을 넘은 순천시를 분구하지 않고 떼어내 인접 시군에 편입시킨 것이 자치구·시·군의 일부 분할을 금지하는 선거법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겁니다.

현재는 "해룡면과 통합된 광양 등이 순천시와 생활환경 등에서 다소 차이가 있더라도 그 차이가 하나의 선거구를 형성하지 못할 정도로 현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며 "국회가 위 지역 선거인의 정치참여 기회를 박탈하거나 특정 선거인을 차별하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있었다고까지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습니다.

차기 총선에서 순천시의 분구를 원하고 있는 순천 지역 정치권은 일제히 반발했습니다.

더불어민주당 소병철 의원(전남 순천·광양·곡성·구례갑)은 "현저하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표현은 법률가로서 보기에도 말장난처럼 느껴진다"고 비판했고, 국민의힘 천하람 순천갑 당협위원장도 "헌재가 해룡면 게리맨더링이 정치적으로 올바르거나 타당하다고 판단한 것이 전혀 아니다"고 확대 해석을 경계했습니다.

이 같은 순천 정치권의 입장에도 불구하고 이번 헌재의 판결은 선거구 획정시 입법기관인 국회의 재량권을 폭넓게 해석했다는 점에서, 앞으로 선거구 조정 과정에서 각 정당의 입장이나 계파간 견해차, 개별 정치인들의 정치적 입지 등이 반영된 '정치적 결정'의 여지가 확대된 건 분명해 보입니다.

한 총선 출마 예정자가 전남 순천 아랫장 사거리에 천막을 치고 유권자들과 만나고 있다. 최창민 기자


앞서 소개해드렸던 여수 정치권의 현수막을 둘러싼 신경전은 어찌보면 한가로운 다툼입니다. 두 의원 모두 현직이다보니 인지도 걱정은 없기 때문입니다. 문제는 정치 신인들입니다. 인지도와 권리당원 확보 등을 위해서는 선거구 획정이 우선되어야 하는데 운동장을 모르니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수의 한 총선 예비후보는 갑과 을 선거구를 가리지 않고 권리당원을 확보하느라 애를 먹었다고 합니다. 운동장이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합구 가능성을 염두해둔 것이란 후문입니다.

순천 지역 출마를 준비 중인 한 총선 예비후보는 해룡면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해룡면 인구가 5만이 넘는데 신대지구는 비교적 젊은 층이 많이 사는만큼 지역 여론을 좌지우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해룡면이 순천에서 분리되어 있지만 조정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다른 총선 후보들도 신대지구에 인지도 현수막을 많이 걸어두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뛰면서도 출마 지역에 포함될지 확신이 없기 때문에 찜찜한 건 어쩔 수 없습니다.

순천에서 재선 의원을 지낸 국민의힘 소속 이정현 지방시대위원회 부위원장은 내년 총선에서 어디로 뛸지 관심입니다.

차기 총선에서 선거구 조정이 없다면 이 부위원장은 순천·광양·곡성·구례을 선거구에 출마할 것이란 전망입니다. 후배인 국민의힘 천하람 순천지역위원장이 뛰고 있는만큼 자신은 고향인 곡성이 속한 을선거구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겁니다.

전신인 새누리당의 대표까지 지낸 이 부위원장이 높은 인지도와 여당임을 내세워 영남 인구비율이 높은 광양에서 출마하게 되는 건데, 광양에서 총선을 준비하는 현직인 서동용 의원은 물론 다른 예비후보들 입장에서는 긴장할 수밖에 없는 대목입니다.

이 부위원장이 아예 동부권을 떠나 광주 서구을에 출마할 수 있다는 관측도 있지만, 호남이 텃밭인 민주당 입장에서는 선거전략 자체를 새로 짜야 하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겁니다.

김진표 국회의장이 의장집무실에서 열린 '선거제 개편 협의체' 발족식에서 참석자들과 기념촬영을 마치고 자리를 안내하고 있다.(왼쪽부터 더불어민주당 김영배 정개특위 간사, 송기헌 원내수석부대표, 김 의장, 국민의힘 이양수 원내수석부대표, 김상훈 정개택위 간사). 윤창원 기자


선거일 120일 전인 다음달 12일부터는 예비후보자등록 신청이 이뤄집니다. 이때부터 예비후보자는 선거사무소를 설치하고 어깨띠를 착용한 채로 명함을 배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때까지 선거구가 획정될지 미지숩니다.

20대 총선에서는 선거 42일 전, 21대 총선에서는 선거 39일 전에 선거구가 획정됐습니다. 전례를 볼 때 22대 총선 선거구 조정도 선거일에 임박해 이뤄질 것이란 우려가 나옵니다.

운동장이 정해져 있지 않으니 선수들에 대한 유권자의 관심이 떨어지는 것도 문젭니다. '우리 지역에 누가 나온다더라', '누구는 어떻다더라', '요새 판세는 이렇다더라' 등 정치 고관여층의 관전평도 의미가 없기 때문입니다. 국민들의 정치 혐오만 키우고 있는 겁니다.

국회는 지난 화요일 본회의에서 정치개혁특별위원회의 활동기한 연장 안건을 통과시켰습니다. 차기 총선을 위한 정개특위는 당초 지난해 7월 구성돼 올해 4월까지 활동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합의를 보지 못했고 올해 10월까지 한차례 연장하더니 이번에는 아예 21대 국회가 끝나는 내년 5월 29일까지 연장됐습니다.

총선에 임박해서 선거구를 획정하는 것은 거대 양당의 기득권 지키기에는 유리할지 모르나 입·후보 예정자의 피선거권뿐만 아니라 유권자의 알권리를 침해한다는 점에서 반드시 바뀌어야 할 관행입니다.

그동안 극한으로 대치하던 여야가 요새 점차 협치로 기우는 모습이 연출되고 있습니다. 서울 강서구청장 선거에서 나타난 표심에 적잖이 놀란 모양입니다. 어렵게 형성된 이 분위기가 선거제도와 선거구 획정까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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