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장님 아닌 기업 위해 일할 거버넌스 구성을

한겨레 2023. 11. 2. 07: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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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게티이미지뱅크

[기고] 김경식 |  ‘착한 자본의 탄생’ 저자·ESG네트워크 대표

지난 30일, 카카오 창업자 김범수 미래이니셔티브센터장은 “더 강화된 준법경영 통제시스템을 마련하는 것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했다. 이에 언론은 카카오가 삼성의 준법감시위원회 사례를 참고하고 있다고 한다.

비슷한 시기 삼성 이재용 회장은 ‘선임 사외이사제’ 도입을 선언했다. 이사회 의장이 사내이사인 경우 사외이사 중 선임자가 사외이사회를 소집·주재하고 경영진에게 주요 현안 관련 보고를 요구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취지다. 삼성이 기존 준법감시위원회가 있음에도 선임 사외이사제를 ‘스스로’ 도입한 것은 오늘날 기업경영 환경이 준법의 문제를 넘어 생존의 문제라는 절박한 심정을 반영한 것이다.

준법감시위원회든 선임 사외이사제든 이러한 것을 통칭해서 표현하자면 이에스지(ESG: 환경·사회·거버넌스) 경영의 거버넌스 문제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은 기존 경영진이 있고 이들의 경영을 감시·견제하기 위해 사외이사들이 있다. 최근에는 거의 모든 그룹(기업)들이 ‘이에스지 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그럼에도 대기업집단에서 불법 논란과 경영 실패가 일어나는 이유는 뭔가?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기업 내·외부 거버넌스 인적 구성 문제가 가장 크다고 할 수 있다. 우선 내부적으로 대기업의 경우 대표이사는 여러가지 검증을 통과하고 그간의 실적이 미래의 성과를 담보할 것이라는 믿음을 준 사람이 임명된다. 문제는 그룹 기조실(미전실, 구조본 등) 참모와 계열사 낙하산 참모들이다. ‘회장님’은 믿고 인사를 하지만 현실은 학연·지연·직연으로 얽혀서 경영 의사 결정과 성과 평가에서 굴절이 일어난다. 계열사에 내려온 낙하산 참모들은 자신이 속한 회사 대표이사보다 자신을 배려해준 기조실 참모의 말을 따르게 된다. 이들은 늘 “회장님”으로 말을 시작하니 따를 수밖에 없다.

회장님 접견(보고?) 기회가 많은 참모가 실세다. 그래서 회장님은 각 인맥들이 서로 견제·감시하도록 의도적으로 내부 경쟁을 유도하기도 한다. 이에 기조실 참모들도 계열사 낙하산 참모들을 동원해 충성경쟁을 벌인다. 그렇게 얽히고설키다가 책임질 문제가 생기면서 조직에 균열이 일어난다. 계열사 대표는 소신껏 일하기 어렵고, 회장님은 수사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에스지 경영의 핵심은 해당 기업 생태계의 가치사슬과 조화를 이루는 것이다. 그런데 낙하산 임원은 개별 기업의 생태계보다 ‘그룹의 기준’을 강요한다. 이는 경영 의사 결정에 매우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판단 기준이 그 기업의 지속가능성이 아니라 그룹 기여도에 있기 때문이다. 이 과정에서 여러가지 무리한 경영 간섭이 일어나고 뒷날 사법 문제의 씨가 뿌려진다. 그리고 누적된 간섭으로 인한 경영 실패는 직원들의 고통, 심하면 공적 자금 투입으로 연결되기도 한다. 물론 모든 낙하산이 나쁜 것은 아니다. 그룹 명운이 걸린 프로젝트일수록 낙하산이 큰 역할을 하기도 하고, 낙하산 참모 열명 중 한두명은 정말 훌륭한 역할을 하기도 한다.

다음으로 각종 위원회의 인적 구성도 중요하다. 많은 경우 사외이사, 이에스지 위원, 준법감시위원 등은 전문가라기보다 사실상 대외 로비스트들로 구성된다. 이들의 판단 기준도 회사가 아니라 회장님 보호다.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2020년 2월 출범한 1기 삼성준법감시위원회가 대표적이다. 출범 전 많은 우려가 있었지만 상당한 성과를 냈다. 지배구조 개선은 미흡했으나 대국민 사과, 무노조 경영 철폐, 4세 승계 포기를 공개적으로 약속하도록 했다. 이러한 성과를 낸 배경에는 세가지 요인이 있다. 삼성의 절박함, 위원장의 리더십, 위원 구성의 다양성이다. 위원들이 로비스트가 아니라 사회적 가치를 대변하는 사람들이었다.

필자가 몸담았던 현대제철에서도 그런 경험을 했다. 2019년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해 ‘안전환경보건자문위원회’를 발족시켰는데, 다른 목적(?) 없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과 관련해 제 목소리를 낼 분들을 위원으로 위촉했다. 노동법 전문가로 전향적·진보적 판결을 많이 한 김지형 전 대법관(위원장)을 비롯해 안전 관련 전문성을 확보하고 있는 학회장·협회장 및 관련 기관장, 전공 교수, 진보매체 기자 출신 등을 위원으로 위촉했고, 나름 성과를 냈다.

이에스지 경영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다. 내부 출신이든 외부 인사든 회장님보다 기업의 사회적 가치를 실현하고 대변하려는 자세와 능력을 가진 이들로 관련 위원회를 꾸리는 게 성공의 열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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