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원 7명인 지방의회까지 교섭단체?…예산낭비 통로 되나
전국 광역·기초의회에서 ‘교섭단체 조례 제정’ 열풍이 불고 있다.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지방의회에 교섭단체를 둘 수 있다’는 조항이 신설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섭단체 인원에 대한 기준도 제멋대로인데다 특정 정당이 의석을 싹쓸이해 교섭할 다른 정당이 없는 곳에서도 조례를 만들어 예산 낭비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지난 3월 개정된 ‘지방자치법’ 63조의2에는 ‘조례로 정하는 수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은 하나의 교섭단체가 된다’는 조항이 신설됐다. 국회에서나 볼 수 있었던 교섭단체를 지방의회에서도 꾸릴 수 있도록 길을 터준 셈이다. 교섭단체는 의사진행에 관한 중요한 안건을 협의하기 위해 일정한 수 이상의 의원들로 구성된 의원 단체를 말한다. 국회에선 20명 이상의 소속 의원을 가진 정당이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
그러나 지방자치법의 교섭단체 신설 조항에서는 교섭단체 인원 기준도 정해져 있지 않아 논란이다. 국회의 교섭단체 구성 요건은 정수 300명에 20명으로 6.7% 수준이다.
하지만 춘천시의회가 ‘자치법규 정보시스템’을 통해 조사한 자료를 보면, 의원 정수 7명에 3명(42.8%)을 기준으로 삼은 부산 중구부터 34명에 9명(26.4%)인 성남시의회, 32명에 5명(15.6%)인 대구시의회, 47명에 5명(10.6%)인 부산시의회, 32명에 3명(9.3%)인 용인시 등 제각각이다. 대부분 국회에 견줘 인원 기준이 엄격하다. 이 탓에 지방의회에서 소수정당과 무소속 의원 등의 다양한 목소리가 반영되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한 기초의회 관계자는 “관련 법에는 ‘조례로 정하는 수 이상’으로만 돼 있을 뿐 상한·하한이라는 별도의 기준조차 없다. 선거가 끝날 때마다 다수당을 차지한 정당이 조례를 개정해 상대 당이 교섭단체를 꾸리지 못하게 인원 기준을 바꾸려는 정당 간 다툼이 생길 수도 있다”고 우려했다.
실제 춘천시의회에서는 지난 10월10일, 인원 기준을 3명으로 하는 ‘교섭단체 구성 및 운영 등에 관한 조례안’이 회부돼 논란이 일었다. 정의당 소속인 윤민섭 춘천시의원은 “소수 의견 배제, 불필요한 예산 낭비 우려가 있다. 양당 체제가 굳어진 한국에서 지방의회까지 교섭단체를 두는 것을 반대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시민사회단체인 춘천시민사회단체네트워크의 오동철 운영위원장도 “그동안 지방의회는 교섭단체 제도가 없었지만, 의회운영위원회나 원내대표 간담회 등을 통해 원활하게 의회 운영을 협의해왔다. 전체 의원 모아봐야 몇명 되지 않는 지방의회에서 무슨 교섭단체냐. 행정력과 예산만 낭비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결국, 이 조례안은 의원들 간의 첨예한 의견 대립으로 지난 10월18일 열린 임시회에서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
예산 낭비 논란도 있다. 교섭단체는 의정운영공통경비의 10%를 추가로 지원받을 수 있다. 대전시의회의 경우, 연간 2200만원을 지원받고 있다. 기초의회인 춘천시의회도 1600만원 수준으로, 이 예산은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는 거대 양당에만 추가로 지급된다. 설재균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 의정감시팀장은 “교섭단체에 지원되는 예산이 얼마나 투명하게 집행되고 공개되는지 지켜볼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국민의힘 의원이 절대다수로 교섭 대상 단체조차 없는 대구시의회에서는 지난 10월 교섭단체 관련 조례를 개정해 경비 지원 근거를 신설해 눈총을 받고 있다. 대구시의회는 정원 33명 가운데 31명이 국민의힘이고, 나머지는 더불어민주당 1명, 무소속 1명이다.
강금수 대구참여연대 사무처장은 “대구시의회 교섭단체는 국민의힘밖에 없고, 교섭 대상 단체가 없기 때문에 이 경비가 편성돼야 할 이유가 없고, 편성된다면 결국 국민의힘 의원들의 ‘쌈짓돈’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는 이어 “사실 복수의 교섭단체가 있다고 해도 굳이 교섭단체 운영경비를 따로 편성할 이유는 없다. 의장단과 각 위원회 업무추진비와 기존에 편성된 의정운영공통경비를 활용하면 된다”고 덧붙였다.
박수혁 기자 ps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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